아주 오래전의 기억 하나를 더듬어 봅니다.  이곳 학교에서 본의 아니게 한국을 알리기 위한 역할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재생하는 글입니다. ^^

저의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담임 선생님인 Mrs. Frost 로부터 아들의 학교에서 한국에 관한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International Week 을 맞아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행사들을 학교에서 진행하는데 저의 아들 반 학생중에 한국 학생이 늘어남에 따라 (전체 20명 중 4명) 금년에는 한국에 대하여 알고 싶다는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제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백인 학생들이 위주가 된 기독교계 학교이나 최근 조기 유학의 증가로 인하여 한국 학생들의 수가 아주 서서히 늘고 있습니다.  특히 제 아들이 있는 3학년 학급에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20% 나 되는 비중을 차지해 가장 많으며 간간히 각 학년마다 한국 학생들이 있습니다 (필자주: 지금 2010년에는 한두명 정도로 줄었습니다)

특별히 저의 아들이 있는 반에 한국 학생들이 몰려 있는 이유중의 하나는 한국에서 바로 오는 학생들이 처음에 영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지라 영어/한국어가 가능한 아이가 있으면 적응에 어려움이 덜 하기 때문에 교장 선생님께서 그렇게 배려하고 계시다는 후문입니다.  마침 아들 녀석을 제외한 다른 3명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입학을 하는 바람에 갑자기 한국 학생 수가 늘었습니다.  덕분에 아들 아이의 학기말 성적표에는 한국 학생들 통역을 해줘서 감사하다는 담임 선생님의 메시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영어 유치원을 다닌 학생이 둘이나 되지만 역시 미국에서 바로 학업을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나 봅니다. 백인계 학교인 만큼 흑인 학생이 거의 없으며 미국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그 다음이 한국 학생 그리고 아주 소수의 중국계 학생들이 눈에 뜨입니다. 

한국 학생들이 늘고 있는 이유는 이 학교가 사립학교이며 (미국에서는 현재 한국 조기 유학생들의 공립학교 입학이 봉쇄되어 있습니다. 설사 공립학교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사립학교 수준에 달하는 수업료를 따로 내야만 하는게 원칙입니다. 미국에서 공립학교는 무료니까요. 최근에 한국 조기 유학생의 증가로 정책이 바뀌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제법 엄격한 교육으로 인하여 학풍이 좋기 때문입니다.  이 학교는 학칙이 매우 엄격하여 매년 여기에 적응 못하는 많은 수의 학생들이 타 학교로 전학을 가거나 홈스쿨링(집에서 가정교육으로 학교 수업을 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까요.

또한 이 학교는 흔히 얘기하는 K-12 학교입니다. 여기서 K-12 라 함은 미국의 전형적인 대학 이전의 교육을 전담하는 학교를 말하며 Kindergarten (유치원) 에서 12학년 (고등학교 3학년)까지 있다는 뜻의 약자입니다. 미국의 초중고 시스템을 K-12 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래서입니다.

결국 아들 녀석에게도 아빠가 학교에서 강연을 한다는게 자랑스러운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영어로 강연을 해야한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쾌히 승낙을 하였습니다.  다만 애초의 선생님의 요청은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모두 모인 강당에서의 강연이었으나 너무 많은 수의 학생이 부담스럽고 여러가지 강연시 가지고 갈 소품들의 시연 역시 곤란할 것 같아 3학년만(그래봐야 두 학급 40명)을 대상으로 하는 걸로 제한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1시간동안 하는 강연인지라 아내와 저는 재미있는 소품들을 많이 준비하기로 하였습니다.  일단 인터넷을 뒤져서 많은 관련 사진들을 찾아 인쇄하였습니다.  자그마한 사진은 찾기가 쉬웠으나 막상 손에 들고 보여줄만한 크기로 인쇄할 수 있는 품질의 사진들이 적어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한국의 자연 환경 및 거리 풍경, 전통 가옥, 그리고 선생님의 요청에 의하여 대한민국 교회들에 대한 정보와 사진도 추가하였습니다 (기독교계 학교인지라).  이를 통해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성도수가 76만 3천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후와..

그리고 한국에서 제일 대중적인 스낵으로서 쵸코파이를 40명 전원에게 여유있게 돌아갈 수 있는 분량으로 한국 슈퍼에서 구입을 하고 전통 방식으로 만든 유과와 약과도 추가로 준비하였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는 분께 전통 한복 및 개량 한복도 빌려서 아내와 딸아이는 미리 한복을 입고 학교에 가고 추가로 준비한 한복으로 아이들이 직접 입어 볼 수 있는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전통 놀이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윷과 말판도 나름대로 챙겨 넣었습니다.

 처음 강연을 하면서 걱정했던 것은 과연 한시간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3학년 두학급 학생들이 쏟아내는 질문이 어찌나 많던지 중간에 말려가면서 진행을 해야 했습니다.  적어도 한국의 문화와 기독교 역사에 대한 설명을 해야했고 북한과 남한의 관계에 관하여서도 설명해 달라는 선생님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빼고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쓸만한 김정일/김일성 부자의 사진을 구하기 위하여 북한의 웹싸이트에까지 접속해야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저의 영어를 잘 이해해 주었고 (아들의 얘기로는 한반도를 설명하기 위하여 Rabbit 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액센트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다양한 질문으로 저를 즐겁게 하여 주었습니다.  한글이 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특정시기에 학자들의 노력으로 일시에 만들어진 자모를 갖춘 과학적인 글이라는 설명을 할 때에는 저도 기분이 으쓱하였고 선생님께서는 세종대왕의 이름을 칠판에 써달라고 하여 일부 아이들이 King Sejong 의 이름을 노트에 적어 넣을 때에는 왠지 모를 뿌듯함도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쓰는 알파벳이 Hangul 임도 알려 주었지요).

쵸코파이와 유과 그리고 약과를 나누어주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아이들은 쵸코파이와 유과를 정말 좋아하였고 강연을 마친 후에 가져간 남자 아이용과 여자 아이용 한복을 직접 착용해 보는 시간에는 저의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학생들이 호응을 보였고 강연에 참가한 거의 모든 학생들이 줄을 서서 이를 입어보기도 하였습니다. 마침 제가 가져간 디지털 카메라로 일일이 사진을 찍어 주었더니 너무나 좋아하더군요.  진작에 이렇게 좀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말입니다.  어설프게 한복을 입은 그들의 모습이 우습긴 했지만 그 아이들은 너무나 진지했었습니다.

1시간의 강연은 1시간을 넘겨서까지 계속되었고 정말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두분 선생님께서는 진심으로 감사해 하셨고 강연 후가 하교 시간이었던 것 만큼 강연 말미에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들 역시 교실에 들어왔다가 한복의 아름다음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마침 이날 아내와 딸 수빈이가 입고간 한복이 궁중 스타일이라 무척 곱고 아름다웠었거든요.  강연을 시작하기전 교실 밖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쪽에서 오던 남자아이 하나가 아내와 딸의 한복을 보고 제 자리에 서서 입을 크게 벌리며 'oh my gosh!' 하던 표정이 아직도 선합니다. ^^

사진속의 귀여운 한국소년은 저의 아들이 아닙니다 ^^

이 특강 이후에 아내가 학교에 가면 평소에 잘 몰랐던 3학년 학생들이 더욱 친근하게 'Mrs. Kim' 하고 부르며 인사를 해오더라는 아내의 얘기를 들으니 역시 강연을 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3학년 학생 40명과 선생님 두분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조금이나마 소개한 것 같아 저에게도 보람된 경험이었습니다.  의외로 한국을 모르는 분들이 이땅 미국에는 너무나 많으니까요.  다음에도 또 다른 기회로 다른 학생들에게 한국을 널리 소개할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며 어쩌면 저 말고도 많은 한국 학부형 분들이 미국 이곳 저곳에서 한국을 전하고 있을 것 같아 기분이 뿌듯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전하는 민간 외교관 여러분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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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방문해 주시는 분들 중에도 스포츠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박지성이나 김연아 같은 선수들은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아낌없이 좋아하는 그야말로 국민 스타라고 할 수 있으며 스포츠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각자마다 자신만의 스포츠 스타가 있을 것입니다.  저도 앞서 언급한 박지성이나 김연아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지만 저만의 정말 좋아하는 한국인 스포츠 스타가 두명 있습니다.  둘다 LPGA 골프 선수인데요, 한 명은 슈퍼 꿀땅콩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웠던 지금은 유도선수 이원희 선수와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김미현 선수이구요, 또 한분은 한때는 걸어다니는 필드위의 패션모델로도 불리웠던 Grace Park 박지은 선수입니다.  김미현 선수와도 재미난 사연이 있으나 이 이야기는 차후에 이곳에 소개하기로 하구요, 오늘은 박지은 선수와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예전부터 음악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 관람을 좋아해서 많은 행사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데 그 중 미국 여자 프로골프인 LPGA 의 경우 다른 어떤 이벤트보다도 제가 직접 관람하기를 좋아하는 스포츠입니다.  다른 어떤 스포츠도 LPGA 경기처럼 선수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스포츠가 드뭅니다.  경기 내내 내가 좋아하는 선수를 불과 1-2 미터 앞에서 쳐다보면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으며 경기 전전날의 프랙티스 라운드나 경기 직후에는 선수들과 직접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며 LPGA 선수들은 매우 친절해서 어떤 팬의 싸인도 거절하지 않는 편입니다 (단 그날 경기가 잘 안풀린 경우는 싸인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  이와 반대로 인기가 좋은 PGA 의 경우는 팬이 너무 많아 LPGA 와 같은 접근성은 매우 떨어지는 편입니다.


제가 LPGA 경기를 열심히 보러 다니던 때는 우리나라 LPGA 태극낭자 1세대 트로이카 박세리/김미현/박지은이 활약하던 시대인데요, 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응원하는 재미는 대단히 쏠쏠했습니다.  제가 좀 낯이 두껍고 넉살이 좋은 편이라 몇번 경기 후에는 이들 선수들 그리고 캐디들과 눈인사를 나눌 정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때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소수였던 LPGA 팬들끼리 LPGA 협회에서 마련해 놓은 포럼에 모여서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들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는데 저는 한국의 선수들에게 외국 팬들이 많은게 너무 좋아서 그곳에서 열심히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 포럼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던 한국팬이 거의 없었는데 (아무래도 영어로만 이야기를 나누던 포럼이다 보니 한국분이 드물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한국 미디어에서 볼 수 있었던 선수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외국 팬들에게 전해주기도 하고 다른 회원들이 한국 스포츠 신문 링크를 보여주면 번역도 해주면서 나름 인지도가 있기도 했었습니다 (요즘은 자주 들어가지 않는데 매년 제 생일에는 제가 없음에도 다른 회원들이 제 생일을 계속 축하해 주는 것을 보고 놀란 적도 있습니다.  작년에도 축하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저는 제가 당시 제일 좋아했던 김미현 선수의 포럼에서 활동을 하고 박지은 선수 포럼은 그곳의 팬들이 좋아서 자주 놀러가곤 했었습니다 (각 선수의 포럼은 여기 게시판처럼 나누어져 있는 형태였습니다).  그러다가 박지은 선수 포럼에서 우리 LPGA 포럼 회원들 모두가 인정하는 박지은 선수의 세계 최고의 팬이라는 Sly 라는 친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박지은 선수의 대단한 팬이어서 각종 경기에 빠짐없이 참석을 하고 글도 열심히 쓰는 탓에 우리 회원들끼리 네가 박지은 선수 최고의 팬이라고 인정을 해주었고 가끔 포럼에 들려 박지은 선수가 글도 읽고 직접 메시지도 남겨주는 탓에 박지은 선수도 이 팬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Sly 라는 친구가 저랑 동갑인 것을 알게 되었고 그가 살고 있는 캐나다 몬트리얼에 제가 일이 있어 들리게 되면서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 친구는 불어를 쓰는 전형적인 프렌치 캐나다인이었고 박지은 선수를 좋아하는 탓에 한국 음식마져도 너무나 사랑하던 그런 친구였습니다.  몬트리얼에 있던 날 F-1 그랑프리 경기가 있어 함께 미카엘 슈마허가 있던 호텔에 가서 문 앞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정말 기억에 남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날이 바로 앞서 소개했던 글, 한 자리에서 가장 많은 페라리를 본 날 그 날입니다).

이 친구는 박지은 선수의 대단한 팬이었기 때문에 캐나다 몬트리얼에 살면서도 미국에서 열리는 박지은 선수의 경기를 비행기를 타고 와서 보곤 했었는데 어느날 제가 사는 일리노이 주에서 열리는 State Farm Classic 을 함께 보고 싶다는 제안을 저에게 해왔습니다.  저야 당연히 OK 를 했었고 함께 박지은 선수와 김미현 선수를 만날 생각에 저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기 시작 일주일전 다른 일로 인하여 이 친구가 못오게 되는 일이 발생을 했습니다.  결국 저는 아들 녀석과 둘이만 LPGA 경기에 가게 되었습니다.  보통 LPGA 경기가 있기 전 연습을 하는 프랙티스 라운드에는 입장료가 없어 아들 녀석과 매년 빠짐없이 가곤 했었는데 프랙티스 라운드에서 연습하고 있는 박지은 선수를 보자 번뜩하고 아이디어가 한가지 떠올랐습니다.

'이 세상에서 박지은 선수를 제일 좋아하는 Sly 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 하나를 하면 어떨까?'

그것은 바로 박지은 선수에게 경기에 참석하지 못한 Sly 를 위해 아쉽다는 메시지를 직접 영상으로 받아서 선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눈팅으로 알고 지내던 박지은 선수가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부탁을 했습니다. 

박지은 선수도 아다시피 Grace Park 의 월드 베스트 팬인 Sly 가 이번 경기에 참석하기로 했는데 함께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에게 아쉬움을 담은 박지은 선수의 메시지 하나를 깜짝 선물로 안겨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박지은 선수는 저의 계획에 쾌히 승낙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급하게 떠오른 생각이라 이날 캠코더를 가져 가지 못했습니다.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것이 당시에는 최신인 2백만 화소의 캐논 익서스 V2 라는 모델인데 이게 동영상이 15초까지 밖에 찍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15초라도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는 영상 메시지라면 부족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TV 카메라 앞에 많이 섰을 박지은 선수도 이렇게 엉뚱한 개인적인 촬영에는 많이 쑥스러워 하더군요 (보시면 압니다 ^^).  그래서 담아낸게 바로 다음의 영상입니다.


캐나다인 친구를 위한 것이었기에 영어로 이야기를 했는데 내용은 간단합니다.  간단히 영어로 얘기한 부분만 번역해 보자면,

"안녕 Sly, 왜 이곳에 못온거야?  어떻게 지내? 모든 것이 다 잘되기를 빌고 내년에 캐나다에서 꼭 보았으면 좋겠어"

아쉽게도 15초 제한으로 이렇게 짧은 이야기를 하고 끊어졌지만 어떤 이야기가 이어졌을지 여러분께서 짐작이 가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중에 이 비디오를 받아본 Sly 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제가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여러분께서 충분히 짐작을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이 세상에 몇명의 스포츠 팬이 자기 한사람을 위한 특별한 영상 메시지를 자기의 스포츠 스타에게 받아 보았겠습니까?  ^^

한명의 팬을 위하여 또 다른 팬의 부탁을 들어준 박지은 선수, 당신은 내 마음속의 영원한 스타입니다.

One more thing :

박세리/김미현 선수와 달리 박지은 선수는 미국에서의 커리어가 화려합니다.  아리조나 주립대학 시절에 거의 모든 아마츄어 대회를 석권했으며 (이때 남자는 스탠포드의 타이거 우즈가 날릴 때죠) 인디애나 폴리스에 있는 전미 대학 스포츠 연맹 명예의 전당 (NCAA Sports Hall of Fame) 에 사진이 걸려있는 유일한 한국인입니다.  제가 인디애나 폴리스에 갔을 때 직접 찍어왔던 명예의 전당에 있는 박지은 선수의 사진입니다.


우측밑에 자그만하게 박지은 선수가 나와있는데요, 이를 다시 크게 찍어본 것입니다. 이때 카메라가 좋지 않은거라 사진이 썩 좋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그리고, 박지은 선수는 저의 아들과 사진을 찍어준 것은 물론 그 사진위에 아들을 위한 특별한 메시지도 남겨주었습니다.  그게 아래의 사진입니다.  이때는 위의 비디오를 찍었던 해와 다른 해였습니다.  지금 이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박지은 선수의 당부를 받들어 공부를 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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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을 향하여 달려가는 나이에 이성친구의 이름을 버젓이 글제목으로 걸어놓고 보니 좀 쑥스럽긴 하지만 얘기를 꺼내볼랍니다.

저의 아내는 이성간에 우정이 존재하는 것을 믿지 않지만 저에게는 정말 좋은 이성친구가 여럿 있습니다 (물론 당연히 이성간에도 동성 이상의 우정이 존재함을 저는 믿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알아왔고 이렇게 외국에 와서 살고 있음에도 아직도 연락하며 한국에 가면 누구보다도 먼저 뛰어나와 반겨주는 이성친구가 몇명 있습니다.  그 중에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라 해야겠지만 저는 국민학교를 졸업했습니다 ^^) 동창 정확히는 이 친구의 존재를 인식하게된게 4학년때인 1976년 정도이니 33년을 알고 지내는 이성친구가 바로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미선이라는 친구입니다. 

저의 중고등학교 시절이야 남녀가 유별한 시대였기에 따로 만날 기회가 있을 수 없었지만 (그때는 중고등학생이 이성교제를 하던 친구로 만나던 밖에서 만나면 불량 청소년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 다행히 같은 교회를 다니는 통에 그것도 청년부에서 함께 활동하는 바람에 미선이와는 참 잘 알고 지냈었습니다.  더구나 집안끼리도 가까워서 사실 대화는 몇마디 못 나누었어도 (남녀유별하다고 했잖아요 ^^) 끈끈하게 정을 이어가는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무용가였습니다.  국민학교 다닐 때 자기는 이대 무용과를 들어가서 무용가가 되겠다는 얘기를 했었고 결국 이대 무용과를 들어가서 무용가의 길을 걷고 있는 제 주변에 보기 드문, 초지일관 꿈을 이룬 친구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 친구와의 만남은 단둘의 만남은 단 한번도 없었고 (남녀가 유별했다니까요? ^^) 언제나 한 무리의 고향 친구들과 함께였습니다.  이 한무리의 친구들은 아직까지 함께 만나고 있으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2004년 한국에 갔을 때, 그 후 4년 반이 지나서 2008년 12월에 한국에 갔을 때에도 여러 일정을 마다하고 두번 다 나와줘서 앞서 언급한 한무리의 친구들과 함께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던 것은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더구나 집이 일산에서도 더 들어가는 파주 근처임에도 차를 놓고 가는 무리를 감행하면서까지 타국에서 친구가 왔다고 함께 술잔을 기울여주니 참 감사하더군요.

또한 이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미장원과 유명 미용학원을 제 고향에서 하셨었는데 예전에 아내가 한국에 갔을 때 이 친구의 어머니에게 단기 속성코스로 커트와 파마를 배워와서 지금까지 저의 가족은 모두 아내의 손에 의하여 저는 깔끔한 헤어 스타일을, 아들은 2PM 의 박재범 헤어 스타일을, 딸아이는 예쁘고 귀여운 헤어 스타일을 돈 안들이고 지금까지 할 수 있게 된 것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이곳 미국에서 미장원에 가는 것도 만만치 않게 돈이 드는 일인데 그게 절약이 되서 더 감사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러다 오늘 제가 자주 들리는 웹싸이트의 시사/정치 게시판에서 글을 읽다가 글중에 링크된 딴지일보의 기사 하나를 읽게 되었습니다.  참 가슴아픈 일에 관한 기사였고 2개로 나누어진 글 속에서 갑자기 제 친구 미선이의 사진이 튀어나왔습니다.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친구의 모습에서 잠시 가슴 아픈 것을 잊고 반가움에 환한 미소를 짓고 말았습니다.  참 미선이 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오랜만의 한국 방문이라 참 기뻤었던 2008년 12월의 한국행에서 만났던, 남미 공연을 비행기를 이틀 넘게 타고 다니면서 힘들다고, 지방으로 외국 노동자들을 위한 행사를 다니면서 춤을 추느라 힘들다고 하면서도 저를 보기 위해서 나왔다는 국민학교 동창 미선이가 그 기사속에서는 죽은이의 넋을 위로하는 고귀한 무용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다 보니 이렇게 불현듯 내 친구 미선이를 자랑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이렇게 장황하고 두서없는 글을 쓰게 되었네요.

어렸을 때부터 한 길을 꿈꾸면서 이를 끝내 이루어 내고 지금도 소외받은 사람의 곁에서 춤을 추고 있는 내 친구 미선이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합니다.

딴지일보

딴지일보 기사 캡춰화면, 모든 저작권은 딴지일보에 있습니다


딴지일보 원문 기사 링크

P.S. : 저는 개인적으로 글솜씨가 뛰어난 소위 논객이라고 하는 분들의 글읽기를 매우 즐깁니다.  이는 제 블로그에 들려주시는 대부분의 블로거들도 마찬가지시겠지요.  그 중에 소위 이름이 알려진 유명 논객분중에 제가 참 좋아하는 분이 한 분이 있습니다.  사상적으로 저랑 지향하는 바가 같지 않지만 그의 글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으며 대한민국과 같이 경직된 사회에서 자신이 B급좌파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그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민주적인 육아방법이 참 좋아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글을 읽었으며 그가 나와 고향이 같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반갑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년전까지 그의 글 속에서 자주 등장하던 '단이엄마'가 내 친구 미선이었음은 꿈에도 짐작지 못했었습니다.  저는 미선이를 수십년을 알아왔지만 그의 남편을 책을 출판하는 사람으로만 알아왔었지 제가 좋아하던 논객이 내 절친의 남편이었음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며 그녀의 아이 단이 그 글속에 종종 등장하던 단이였음을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일년전에 친구들과 함께 미선이를 한국에서 만났을때야 비로서 그 얘기를 나누면서 미선이와 박장대소를 할 수 있었고 ("네가 바로 그 단이엄마였던거야?" 라구요 ^^) 친구의 남편이라는 것을 악용하여 그 논객을 좋아하는 어떤 분에게 그 분의 저서에 받는 분의 닉네임을 담은 싸인을 받아서 깜짝 선물로 안겨주었던 것은 저에게 있어 좋은 기억의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름 유명인이고 제가 팬인 그 분과 한번 만나기를 본인에게 직접 약속받을 수 있었습니다.  친구 잘 둔 덕이지요.

세상은 가끔씩 이렇게 예기치 않은 놀람으로 저를 깨우쳐 줍니다.  때로는 이렇게 기쁘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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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음악에 관해서는 소시적에 팝송을 좀 들었다 뿐이지 이렇다하게 내세울 경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살아오면서 음악하는 분들과 참 인연이 많았습니다.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분들 중에 프로페셔널 뮤지션들도 있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입한 취미 그룹에 음악, 그것도 연주를 전문으로 하는 모임들이 참 많았습니다.  음악을 모르면서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사히 끼어 있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능력이라면 능력이랄 수 있을까요?  저와 참 좋은 관계를 가지고 계시는 블로거 빨간내복님 역시도 멋진 통기타 연주와 음악으로 유명하신 블로거이실 정도이니 말입니다.

제가 요즘은 시간이 많지 않아 블로그 포스팅도 뜸하고 제가 자주 가는 사이트들 방문도 절제하는 온라인 금욕생활 (^^) 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수를 찍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음악과는 관련이 없는 DVD 쪽에 관련된 사이트인데 그 속에서 또 음악이 좋아 만나는 모임이 생겼습니다.  Band of brothers 라고 저희끼리 약자로 BOB 라고 부르는 그런 곳입니다. 이곳에는 정말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아마츄어 분들이 많으셔서 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나밖에 모르는 지상 최고의 연주다라며 혼자 좋아하곤 하는 그런 곳입니다.  사람들도 따뜻하셔서 (음악하는 분들이 그렇습니다.  자신의 음악연주에는 까칠하고 완벽주의자들인데 인간관계에서는 참 좋은 분들이 많습니다) 왠만한 한국의 친척들보다 더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


그런데 이번에 크리스마스를 맞아 각자 자신의 독립된 연주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이벤트를 펼쳐 이미 많은 분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고 그 피날레로 가능한 많은 멤버들이 모여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를 함께 하는 이벤트가 기획되었습니다.  평소에 BOB 라는 그룹내에서 '관객' 역할을 맡아오던 저도 참여율이 생각보다 낮다는 얘기에 과감히 참여를 결심했습니다.  못 부르는 노래지만 어차피 떼창 (다 함께 부르기^^) 에 묻혀서 괜찮겠다 싶었고 인트로 부분에 여자아이들의 보컬이 필요하다 하여 딸아이와 함께 참여를 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외국에서 참여했다고 하면 왠지 쿨한 뭐가 있어 보일 듯 하여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이 이벤트를 진행하는 총감독님(^^)과만 이야기를 나누고 일체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작업하는 만큼 제가 미국에 살고 있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이번에 참여한 유일한 외국 멤버이긴 하지만 각자의 참석자들이 반주에 맞춰서 자신의 연주와 노래를 녹음해서 음악감독 역할을 하는 분들에게 보내면 그 분이 이 모든 연주와 노래를 취합해서 한데 섞어서(믹싱) 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살리고자 영상과 각 참여자들의 사진이 들어가는 뮤직 비디오까지 제작이 되었습니다.

뮤직비디오에 사용되기 위해 보낸 사진. 결과와 비교해 보세요 ^^


모든 작업을 총괄하신 아이디 캡틴잭님의 이야기를 빌자면 모두 50트랙에 달하는 대곡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50개의 다른 소리들이 함께 섞여졌다는 것이지요.  음악은 잘 모르지만 각종 음악장비에 관심이 많은 터라 저도 집에서 저의 마이크 (Shure PG58), 오디오 인터페이스 (Line 6 TonePort UX-1), 그리고 맥의 GarageBand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딸아이의 인트로와 저와 딸아이의 후반 떼창을 녹음해서 한국으로 보냈고 드디어 오늘 이렇게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녹음에 사용한 GarageBand (맥용 소프트웨어)


관련이 없으신 분들에게는 어쩌면 여러사람이 연주한 아마츄어티가 물씬나는 캐롤 뮤직 비디오의 하나일 수 있겠습니다만은 저에게는 2009년에 들은 어떤 음악, 어떤 뮤직 비디오보다도 감동이네요.

이 글을 못보실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래도록 잊지못할 추억을 남겨준 DP 의 BOB 멤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음악감독을 맡아주신 캡틴잭님과 딸아이 수빈이의 사진을 보정해 주신 키리이님 두분에게 더 큰 크레딧을 드립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이 뮤직 비디오 한편으로 더욱 따뜻하겠네요.  정말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습니다.




P.S. 수많은 사람들의 떼창속에서도 제 목소리는 저에게 들리는 군요. 헐.. ^^;;

MP3 로 된 음원을 원하시는 분이 계셔서 음원 플레이어를 부칩니다. 플레이어중의 다운로드 버튼을 누르시면 MP3 파일을 내려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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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놀거리나 유흥시설이 많지 않은 미국 생활에서 낙이 있다면 가끔 사람들을 불러서 같이 식사를 하거나 또는 남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 주말을 이용해서 공원등에서 바베큐로 지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멈추지 않는 수다를 떠는 것 정도가 되겠습니다.  ^^;;

제가 생활이 바빠지고 아내도 두 아이의 라이드와 과외활동으로 바빠지면서 예전에 비해서 지인을 초대해서 식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우리 가족끼리만 맛난 음식 해주는 아내의 작품(^^)을 즐기는 정도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식사초대를 받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의 요리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글로 한번 남겨 봅니다.  참고로 이 분은 제가 온라인을 통해서 우연히 알게된 분인데 모든 면에서 귀감이 되는 참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초대를 받아서 식사를 하려고 하자 처음으로 압도된 것은 식탁의 데코레이션이었습니다.  사실 저희 가족 자체가 데코레이션을 하고 먹어본 적도 없으려니와 개인적으로 식탁 데코레이션은 음식에서 밀리는 것을 장식으로 만회하려는 기술이 아닌가 하는 선입관이 있어 별로 깊은 인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대리석과 비슷한 질감의 돌판위에 선이 매우 날렵한 잎이 하나 올라와 있으니 첫인상이 매우 강렬하더군요.  심상치 않은 내공이 느껴집니다.  미국에서는 흔히 Zen Style 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곤 하는데 정말 예뻤습니다. 이는 이후에 올라오는 음식들 사이에 놓여져 있는 예쁜 꽃들과 버무려져서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아, 그런데 제가 남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가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다 보면 모임의 분위기가 많이 흐트러지게 되니까요.  하지만 이 날은 제가 새롭게 리뷰를 해야할 카메라 (Fuji Finepix F70 EXR) 를 시험해 볼 요량으로 카메라 테스트를 하느라 찍게 된 것이지요.  만약 디카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면 제가 경험한 멋진 작품들을 기록으로 남겨놓을 찬스가 없었기에 지금은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식탁옆에 스탠드가 분위기 있게 켜져 있어서 디카 테스트 겸 찍어본게 다음의 사진입니다 (4장을 자동으로 연속으로 찍어서 하나로 합성하는 방법으로 저조도를 극복하도록 되어있는 후지 카메라의 신기술 중 하나입니다).


애피타이져, 즉 전채요리로는 태국식당이나 베트남 식당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Spring Roll 이 나왔습니다.  야채와 새우를 월남쌈에 자주 쓰이는 라이스 페이퍼와 같은 투명하고 얇은 그러나 쫀득쫀득한 피로 말아준 것인데요, 재료들의 싱싱함과 다소 심심한 맛을 감싸주는 새우가 잘 어우려져 제대로 입 맛을 돋구워 주더군요.  야채의 맛 하나 하나가 살아있어 빠삭 빠삭한 식감이 예술이더군요.  브라보 !!


드디어 이날 제가 가장 감탄했던 음식중의 하나였던 참치 다다키(タタキ) 가 나왔습니다. 다다키라고 하는게 참치의 살 바깥쪽만 살짝 구어내어 바깥쪽은 참치 스테이크 맛을, 안쪽으로는 참치 회 맛을 즐기는, 보기에는 쉽지만 많은 내공이 필요한 음식인데요 (그냥 참치를 구워내는 것만 아니라 각종 소스로 살짝 맛이 진하지 않게 재워내는(marinated) 전처리 과정도 필요합니다) 이 날의 다다키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이때부터 제가 말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그냥 입으로 계속 밀어넣기만 했습니다. ^^;;  분명히 참치 재료 자체는 최상급이 아니었습니다만 (제가 사는 곳은 바다가 먼 내륙입니다) 이를 적절함 재움과 굽기로 보완을 한 훌륭한 솜씨였습니다.  겉에 더해진 소스가 강렬했다면 다다키 맛이 죽어버렸을 텐데 최대한 담백하게 만들어진 탓에 다다키 고유의 맛을 투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정말 '우왕ㅋ굿ㅋ' 이었습니다.


와, 다다키가 메인 요리 (entree) 인가 싶더니 치라시 스시 (ちらしすし) 가 연이어 나옵니다.  흔히 일본식 회덥밥이라고도 불리우는 치라시 스시는 주먹초밥(스시)를 펼쳐놓았다고 생각하면 되는 음식인데요 그래서 윗쪽에 있는 해물 종류 (이 날은 날치알 위주) 밑에 깔려있는 밥의 품질이 요리를 좌우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식 초밥은 고슬한 밥에 초대리를 한 것인데 밥의 고슬한 정도와 초대리의 시큼달큼한 정도가 매우 중요한데 정말 딱 좋았습니다.


이렇게 치라시 스시까지 먹고 나니 디카의 성능 테스트는 안중에도 없어졌습니다.  사이 사이에 나온 야끼소바나 다다키 사진 뒤로 보이는 치킨 사타이(satay) 그리고 마지막에 소위 '식사'로 나온 스끼야끼 때에는 제가 이성을 잃어버려서 사진을 아예 찍을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훌륭한 음식에 그냥 무릎을 꿇은 셈 되겠습니다.

이 날이 사실은 함께 한 가족중의 자녀 한명 생일이어서 케익에 촛불을 켜고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디카의 Low Light 모드 성능을 테스트 해보고 싶어서 찍어본 사진입니다.  이 케익 역시 오늘의 요리를 준비해 주신 분이 직접 만드신 겁니다.  개인적으로 케익의 단 맛을 무척 싫어해서 케익을 입에도 대지 않는데 이 날은 한 조각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달지 않은 쵸코 케익, 맛있게 만들기 힘든 종목입니다. ^^;;


약간 노출 오버를 해서 찍힌 것이지만 역시 분위기가 괜찮아 추가해 봅니다.


사실 저희 가족은 아내가 어느 수준 이상의 요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보니 식사 초대에 가서 깜짝 놀라고 이런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더구나 제가 고향이 전주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볼 기회가 좀더 많다 보니 음식맛으로 화들짝 하는 경우가 점점 적어지고 있는데 이 날은 정말 요즘 유행하는 말로 깜놀이었습니다.  7막 7장으로 유명한 국회의원 홍정욱씨의 도를 넘치는 표현으로 유명한 '나는 미처 내 의식을 방어할 겨를도 없이 현실과 표면의 극복이라는 아방가르드의 명제 앞에 십자군처럼 무릎끓어 복종했다' 라는 현학적인 문장이 떠오를만큼 인상적인 식사들이었습니다.  일본의 정통 음식을 미국 중부의 가정식탁에서 맛볼 수 있었던게 제일 감동이었습니다.

참고로 이날 찍은 사진을 만들어준 F70 EXR 도 소개합니다.  천만 화소 (10메가 픽셀) 카메라지만 최저 해상도 (3백만 화소) 로 낮추어 찍었으며 resize 와 sharpness, 그리고 약간의 level 조정만 들어간 사진들입니다.  이제는 똑딱이 카메라 (point-and-shoot 이라고 불리우는 소형 자동 디카) 들도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리뷰용으로 무료로 증정받은 것인데 앞으로 들고 다니기 무거운 DSLR 을 대신하여 좋은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합니다.  디카가 넘쳐나는 탓에 명목상으로 아내 소유로 하였습니다. ^^

F70 EXR

<웹포토: Fuji Finepix F70 EXR>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이렇게 멋진 음식을 제공해주신 분께 다시한번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사진에 있는 요리들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야끼소바, 스끼야끼도 있었고 후식으로 팥빙수까지 먹었습니다.  ^^   

사실 하나 하나의 식사 초대가 초대하신 분의 정성과 사랑이 깃들여져 있어 지금까지 맛있지 않거나 별로였던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들어간 재료, 준비하시느라 걸린 시간, 격조있던 데코레이션, 그리고 깊고 수준있었던 이 날의 요리들을 생각해 보면 이분의 사랑이 느껴져 제가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아도 되나 싶습니다 (제가 아니라 아내 때문이었다면 골룸 ^^).  앞으로 어찌 갚을지가 두려울 따름입니다.  ^^;;  매우 인상적인 저녁이었습니다.  

<웹포토 출처>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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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경험해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않은 일을 이번에 이번에 경험해 보았습니다. 바로 산삼을 먹어본 것입니다. 미국은 아직도 한국처럼 심마니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많아 한국과 위도가 비슷한 야산에서는 가끔 산삼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미국 산삼은 한국 산삼하고 다르다고 하지만 실제적인 성분의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한국 산삼만큼 명성이 높지는 않습니다. 좀더 흔해서요. (제가 대학과 대학원 전공이 이쪽과 관련이 있어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석사 논문도 인삼과 관련된 걸로 썼습니다. 물론 지금은 전공을 떠난지 오래되어 무식이가 되었습니다만 ^^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산 산삼은 학명이 Panax ginseng (인삼과 같습니다) 미국산은 Panax quinquefolium 입니다). 물론 한국산 산삼과 가격차이는 비교불허입니다. 한국산 산삼 가격이야 여러분들이 아시겠고 미국산 산삼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산삼꽃

산삼꽃. 출처: 웹포토

미국에서는 산삼 등 산에서 식물을 채취하려면 permit (허가) 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돈만 내면 됩니다) 그 permit 을 가지고 아내가 채취해온 것입니다. 한국에서 연구실에 있을 때 온갖 생약이 다 있었지만 산삼만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직접 채취온 것을 먹어보기까지 했습니다. 그동안 활성이 강한 생약들을 많이 먹어보았지만 산삼은 느낌이 굉장히 다르네요. 굉장히 맛이 강하면서 첫맛보다 뒷맛이 좀 더 강하면서 입속에 잔맛이 굉장히 오래도록 남네요. 그리고 10-20분 후에 머리가 띵한게 이게 뭔가 있나 보다 싶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잎사귀를 먹어본 아내가 잎에서도 똑같은 맛이 난다고 하더군요. 저희가 채취한 것은 크기가 좀 큰편이지만 윗쪽의 나이를 계산할 수 있는 부분(노두)로 환산해 보니 10년 좀 넘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연령은 제가 확신을 못하겠습니다. 언제 봤어야 알죠. 인삼과 같은 방법으로 그냥 환산했습니다 ^^). 산삼은 일반적으로 같은 나이일때 인삼에 비해 크기가 매우 작습니다. 아내와 아들과 나누어 먹어 보았는데요, 다시 얻을 기회가 있다면 (운이 좋다면) 암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에게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한국까지 보내는 방법이 문제긴 하지만요. 기념으로 사진도 한장 찍었는데요, 산삼의 전형적인 3지 5엽 (가지 3개에 잎이 5개 달린) 형태입니다. 원래 윗쪽에 빨갛게 달리는 열매처럼 생긴 씨는 캔 자리에 뿌려주고 왔습니다. 이래야 계속해서 산삼이 자라날 수 있게 되거든요. 이 열매로 산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산삼

잎이 온전한 산삼

뿌리 부분을 좀더 크게 찍어본 사진입니다. 그리고 잔뿌리들이 많이 안보이는데 이 사진 찍기전에 이미 좀 띠어먹고 아내가 좀 다듬고 한 것입니다.
산삼뿌리

산삼의 뿌리 부분

한국에서도 못해본 경험을 하게 되어 신기한 기분에 올려 봅니다. 약효는 뭐 한번 먹어서 알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새로운 경험이다 싶어 먹어본 것입니다. ^^;;
<웹포토 출처>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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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을 2 bedroom 아파트에 살다가 크고 넓은 단독주택으로 이사와서 지낸지도 벌써 2년이 넘었네요.  참 재미있게 지내고 있습니다. 집 뒷쪽으로는 커다란 호수와 넓다란 잔디밭이 이어져 있고 (원래 집들이 들어서야 하는데 다 안 들어선 관계로..) 이 황량한 잔디밭을 저는 그냥 우리 뒷 정원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집이 열심히 들어서고 있고 서쪽으로는 지평선이 있어 매일 일몰을 보고 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비가 왔던 요즘의 기후탓에 잔디는 얼마나 잘 자라는지 그리고 천성이 게을러서 잔디 깍는 일에 열성이 아니다 보니 뒷뜰이 숲이 되어가는 실정입니다. ^^

 

하지만 저에게는 이제 잘 자라나서 성인 한 몫을 거뜬히 하는 고딩 아들이 있는 탓에 이를 좀 잘 이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  착한 아들 녀석은 이리하여 아버지의 뜻 (이라고 읽고 강압이라고 해석하면 됩니다^^) 을 받들어 드디어 뒷뜰 잔디깍기 업무를 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앞뒷뜰에 $10 이라는 가격에 저렴하게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저가의 노동을 봉사하던 아들 녀석의 잔디 깍기 행사가 있던 어느날..


여기서부터는 작년 이맘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부엌에서 뒷뜰이 잘 보이고 잔디깍기 소리도 요란한 탓에 아들녀석이 열심히 잔디를 깍고 있음을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은데 갑자기 잔디깍기의 엔진 소리가 멈췄습니다.

 

너무나 길게 자란 잔디에 또 잔디 깍는 날이 꼈나 싶어 나가 보았더니 아들녀석이 살금살금 다가오더니 나지막히 목소리를 낮추어 얘기합니다.  


"아빠, 뱀이 있어" 


 

뱀??  뱀!!  뱀 !!!!!!!!!!!!!!!!!!!!

 


어렸을 때 옆집에 살던 사람들이 뱀탕을 끓여먹으려고 사다놓은 뱀들이 포장지를 뚫고나와 우리집으로 오는 바람에 혼비 백산한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그때가 초딩 2학년) 뱀이라면 그때의 기억으로 말미암아 무조건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희 집 뜰에서 뱀이라니요, 정말 혼비백산 했습니다.

 

차분하게 얘기하는 아들녀석과 사건 현장을 가보니 잔디깍기가 예쁘게 깍고 지나간 자리에 뱀이 또아리를 틀고 가만히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들녀석 뱀위를 잔디깍기로 이미 지나간 상태더군요.  헉.. 물리기라도 했으면 어쩔려고..

 

물론 이 동네에서 뱀을 본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만 지금까지 가정에서 본 뱀으로는 가장 큰 사이즈였습니다 (뭐 그렇다고 아나콘다 정도는 아니구요, 길이가 약 펼치면 40-50cm, 굵기가 손가락 하나 반 정도는 되니 작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혹시 죽었나 했더니 아들 녀석이 좀전까지 움직였다고 증언을 합니다.

 

일단 인증샷 ^^  요놈입니다.


Fox Snake

딸아이도 뛰쳐 나오고 아내도 살그머니 나오고...  일단 이를 어쩌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납니다.  움직이지 않고 있는게 혹시 알을 낳고 있나 저 밑에는 혹시 뱀굴이 있는것 아니야 벼라별 생각이 다 났습니다.  뱀굴이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고 상상만 해도..  으..

 

다니고 있는 교회 목사님께 어찌해야할지 물어보니 Animal Control 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검색을 하여 번호를 알아낸 후 전화를 걸어보니 이미 저녁 7시, 다 퇴근한 후입니다.

 

일단 독사가 아닌지 여부부터 보자 해서 검색왕 아들녀석에게 좀 찾아보라고 헀습니다.  즉시 구글을 찾아보는 원중이가 좀 의외의 말을 합니다.

 

"아빠 이 사람 아는 사람 아니야?"

 

뱀 찾아보라고 했더니 왠 딴소리.. 알고보니 이 지역의 뱀에 관한 사진 및 정보를 검색한 아들녀석에게 제일 먼너 나온 웹페이지에 있는 사람이 왠지 낯설지 않은 사람입니다.  헉...  뱀과 함께 등장한 사진은 어학 연수생 시절 저의 영어 문법 선생님이었고 아들 녀석 잘아는 친구의 부모님이자 저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Doug Mills 였습니다.  


아니 왜 이 사람이 뱀을 들고 있는거야.  사진을 몇장 들여다보니 나름 뱀 전문가였습니다 (이분은 저의 선생님이기도 했지만 컴퓨터 전문가에 같이 축구 경기를 다니면서 함께 축구를 보았기 때문에 너무 잘아는 분입니다).

 

즉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  왠일로 이밤에 전화를 했는지 궁금해하는 그에게 다짜고짜 "우리가 뱀을 봤다 독사인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블라 블라" 퍼부어 대었습니다.  약간 흥분상태였거든요. ^^

 

영 전화로는 뱀의 종류를 잘 설명할 수 없을 듯 하여 이메일에 사진을 부쳐 보내기로 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뛰쳐나가 최대한 뱀에게 접근하여 아들 녀석이 사진을 몇장 찍어 (아빠보다 훨 용감합니다 ^^) 바로 전송했습니다.  곧이어 들려오는 반가운 전화는 독사가 아니라는 얘기와 우리 집으로 와도 되겠냐는 Doug 의 요청이었습니다.  저야 와 준다면 그야말로 '쌩유' 죠. ^^

 

저희 집으로 오는 디렉션을 알려주고 뒷뜰에 나가보니 꼼짝도 안하던 녀석이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헉....  다시 Doug 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뱀이 사라졌다, 안 와도 되겠다.  그런데 이 분 괜찮다면 그냥 오시겠답니다.  저야 뭐..  ^^;;

 

잠시후에 도착한 Doug 은 곧 저와 함께 뱀을 찾으러 나섰습니다.  저도 뱀 전문가가 옆에 있으니 용감하게 플래시를 들고 나설 수 있습니다.  Doug 이 친구가 기를 쓰고 온 탓이 이 친구가 일리노이주에 서식하는 모든 뱀들의 사진을 찍고 있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온 이유가 우리 집에 나타난 뱀이 Fox Snake 라고 하는 녀석인데 이 종류의 뱀의 사진을 아직 찍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그렇게 열성적으로 달려온 것입니다.

 

이쯤에서 구글에서 발견한 제 친구 Doug 의 사진 하나.

Doug Mills

아 참, 이 대목에서 여러분도 아셔두면 손해볼게 없는 것이 일리노이주에는 독사가 1904년 이후에 나타난 적이 없답니다.  누가 일부러 들여오면 모를까 현재까지 백년이 넘게 독사가 보고된 적이 없고 저희 집에 나타난 녀석도 쥐와 해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놈이랍니다. ^^

 

한참을 주변을 둘이서 샅샅이 뒤졌는데 못 찾았습니다.  이 뱀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 있었던 것은 저희가 무서워서랍니다. ^^  움직이지 않고 풀속에 가만히 있으면 자기가 위장(Camouflage)이 되어있다고 생각한답니다.  허허허..

 

어쨋거나 저는 덕분에 과거에 저의 선생님이자 이제 친구가 된 Doug이 뱀 전문가임을 알게 되었고 유해한 뱀이 아니란 얘기에 그 날 밤을 편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  역시 아는게 힘입니다.

 

하지만 이제 잔디를 깍을 때 마다 흠칫 흠칫할 것 같습니다.  어제 미루어 두었던 잔디를 깍은 아들 녀석도 무섭다고 하는 것을 보니... ^^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 


그리고 그 후 뱀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Doug 은 만날 때 마다 물어봅니다.  뱀이 들리지 않았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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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변에 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얼마전 저를 제외한 가족들이 5년만에 한국을 방문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그때 있었던 자그마한 에피소드입니다.  이제 이 글에서 소개된 신곡이 어느새 후속곡이 준비되야 하는 시점이 되었군요.

가족들이 한국에 나가 있지만 인터넷 전화로 자주 통화하는 바람에 한달이나 떨어져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낄 새가 별로 없습니다.

오늘도 시부모님을 뵙기 위해 방문중인 시댁에서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안에서 아내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저희 집은 한국에서 시내전화로 연결되어 있기에 어디서든 요금 부담없이 전화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시댁에 있으면 엉덩이를 부칠 새가 없이 바쁜 터에 전화가 불가능한데 이렇게 고속버스 안이라면 여유를 잡고 대화를 나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통화를 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옆에서 자꾸 바꾸어 달라고 합니다.

 
<딸 아이가 좋아하는 수영, 뒤로는 윤아가 보이네요>

이제 초등학교 (elementary school) 3학년이고 소녀시대 수영이의 팬인 딸아이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빠~~ 이번에 소녀시대 새 노래 들어봤어???"

아빠에 대한 인사고 뭐고 없이 다짜고자 물어봅니다. 제가 대답합니다.

"응.. 소원을 말해봐 말이지? I am Genie for your wish"

엉터리 가창력으로 제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딸아이의 깔깔거리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울립니다. 그리고 얘기합니다.

"ㅋㅋㅋ 진짜 좋지???"
"응.. 아빠도 들어보았는데 정말 좋더라.. 그리고 수영이 단발 정말 예쁘지 않니?"
"응.. 그런데 제시카가 옥토퍼스(문어) 머리 했어...."

ㅋㅋㅋ 문어 헤어스타일이랍니다. 그런데 그래서 안 예쁘다는 얘기인줄 알았습니다.

"아빠.. 나 있잖아.. 수영 지금도 넘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제시카가 젤 예쁜 것 같아.  옥토퍼스 머리 예뻐"

ㅋㅋㅋ 배신자로 불릴까봐 수영 얘기를 먼저 깔고 제시카가 예쁘다고 합니다. ^^;;

"그래, 제시카 예쁘지? 근데 아빠는 수영이 더 예쁜 것 같은데?"

딸 아이의 깔깔깔 하는 미소가 전화기 너머로 경쾌하게 들려옵니다.

<왼쪽이 유리, 오른쪽이 문제의 옥토퍼스 머리 제시카 ^^ >


"그런데 아빠.. 한가지 이해가 안가는게 I am Genie for your wish 라고 하는데 옷은 세일러 복을 입었어"

ㅋㅋㅋ 미국에서 자라난 아이라 Genie 하면 당연히 알라딘의 마술램프에서 나오는 마법사를 생각하는데 마린 룩이라 나름 이상했나 봅니다.  한국으로 하면 '콩쥐 팥쥐' 얘기를 노래로 만들었는데 부르는 가수가 우주복을 입은 셈이라고나 할까요? ^^

40대 중반의 아빠와 만 9살의 딸아이가 소녀시대 신곡을 가지고 둘이 열심히 깔깔대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소녀시대라는 거대 소녀 그룹을 알게 된 것도 딸아이 덕분입니다. 수영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처음으로 멤버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아시아 아이들 사이에서 소녀시대라든지 원더걸즈, 2NE1, 동방신기, 슈퍼 주니어, 빅뱅등의 인기는 하늘을 찌릅니다.

딸아이는 계속해서 수다를 떱니다. 아마도 무슨 쇼프로에서 슈퍼쥬니어가 나왔는데 전화로 윤아를 연결했다고 계속 깔깔대며 이야기 합니다. ^^;;

소녀시대 덕분에 아이들과의 간극을 많이 좁히고 있어 좋습니다. 그리고 이번 신곡에서는 개인적으로는 수영이의 헤어 스탈이 젤 맘에 드는 군요. ^^;;

미국에 살면서도 소녀시대를 좋아하고 이효리를 좋아하는 딸 아이.
 
딸 아이도 소녀시대 멤버들처럼 밝고 명랑하고 구김없는 미소를 가진 아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딸아이의 좋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 선생님이 되고 있는 소녀시대 및 한국의 틴 아이돌에게도 이 기회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고등학생인 아들 녀석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무한도전, 1박 2일, 패밀리가 떴다, 스타킹 관계자 여러분들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타국에서 보내 드립니다.  그분들 덕택에 아직도 미국에 사는 어설픈 한국인인 우리 아이들이 한국의 유머코드를 이해하고 새로 유행하는 표현을 배우며 제주도와 제가 가보지도 못한 한국의 시골마을과 전통문화를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들이 애국자들입니다.

P.S. : 본문에 인용된 사진들은 CCL 규약에 따라 저작권 침해 없이 자유롭게 인용이 가능한 뉴스뱅크사의 이미지들입니다.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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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가 개인적인 일때문에 제 작업실에 혼자 쳐박혀서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이해심이 많은 가족들은 Spring Break (봄방학) 인데도 아무데도 가지 못하는 것을 불평없이 잘 참아주고 있는게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는 다 커버려서 성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등학생 아들 녀석은 혼자서 제 시간을 잘 꾸려나가는 반면 아직은 초딩 3학년인 딸아이는 가끔씩은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좀 지루한 모양입니다.  다행히 요즘은 '꽃보다 남자'라도 있어서 그걸로 좀 시간을 보내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아이가 한국어와 한국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아이가 봐도 크게 나쁘지 않겠다 싶은 드라마는 좀 보게 내버려 두는 편입니다만.. 

딸 아이는 아들과 달리 상상력도 풍부하고 가끔은 매우 엉뚱하기도 하여 재미있는 사건이 많습니다만 오늘은 재밌는 컨셉으로 아빠를 기쁘게 해주어서 개인적인 기록차 포스트를 하나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 모니터에 머리를 박고 제 방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차 점잖게 똑똑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희 집에서는 누구도 노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순간 '누구지?' 했습니다. ^^;;  문을 열어보니 아래의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딸아이가 서있더군요.

물드세요

아빠, 시원한 물 한잔 드세요


나름대로 최대한 집에 있는 의상을 총동원해서 메이드(하녀^^) 컨셉으로 꾸미고 아빠에게 시원한 얼음물 한잔을 들고 온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받쳐 든 (그러나 힘들어서 약간 기울어진 ^^) 소반 오른쪽에는 꽃과 손수건으로 장식도 했구요. 너무나 예뻐서 마침 옆에 있던 카메라로 한장 찰칵한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진을 정말 글자 그대로 수만장을 찍어 왔기에 카메라를 들이대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아하는게 저희 딸이라 무거워 보이는 얼음물을 들어낸 후 사진 한장을 더 찍었습니다. ^^

뿌듯한 아이

얼음물 맛있게 드셨어요?


웃기는게 자기도 여자 아이라고 포즈랍시고 가끔 취하곤 하는데 나름대로 포즈를 취해본게 다음의 사진입니다.  나가기 직전의 피날레 포즈입니다. ㅎㅎㅎ

포즈 하나

샤방 샤방 포즈 하나 ^^ 아빠 그럼 전 가요,


지겹고 힘든 일 속에 이런 딸 아이 때문에 힘좀 받습니다.  딸 아이 안 키워본 분은 정말 모릅니다.  이 재미를 말입니다  (염장이 된 분들에게는 미리 죄송하다고 사과 말씀 드립니다 ^^).

미국 중부 자그마한 도시에서 이렇게 살아갑니다. *^^*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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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는 분을 통하여 한국에서 온 우편물을 하나 건네받았습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은 바로 정성스러운 싸인과 행복을 기원하는 메시지가 담긴 가수 이선희님의 14집 앨범 CD 였습니다.  제가 유명인들의 싸인이 담긴 CD 를 포함한 여러가지 물건들이 있지만 (따로 자랑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희귀한 소장품이 몇개 있거든요 ^^) 이 CD 만큼은 주신 분이 제 이름을 기억하시고 메시지를 담아 직접 인편을 통하여 머나먼 미국땅까지 정성스럽게 보내주신 것이기 때문에 저에게는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감사하다고 이메일을 드리고 CD 를 걸어서 들어보니 불경스러운 표현이기는 하나 한층 더 무르익으신, 이제는 국민가수라고 불리움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이선희님의 노력과 사랑 하나 하나가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따님을 위한 노래라고 알려진 "나의 길" 과 타이거JK (가수 윤미래씨의 남편이자 '고고70' 영화의 모델이기도 했던 팝칼럼니스트 서병후님의 아들이죠 ^^) 와 함께 작업했다는 "YOU TOO" 가 장 귀에 와서 쏙 박히더군요.  이미 방송들을 통해 친숙한 "사랑아..." 도 좋았구요.

이선희

정성스러운 메시지가 담긴 이선희님의 14집 '사랑아...'


작년 1월에 이선희님이 이곳 미국 생활을 정리하시고 완전 귀국하셨으니 벌써 떠나신지 두달이 되었군요.  미국의 작은 대학도시에 한국의 유명 연예인, 그것도 가히 가창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대가수가 와서 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2년전 쯤 처음 듣게되었을 때 별다른 변화가 없는 도시에 참 화젯거리였습니다.  저도 이선희님이 1984년에 "J에게" 로 강변가요제를 통해서 데뷰할 때가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음악을 많이 듣던 시기라 저에게 있어서도 잊을 수 없는 가수중의 한분이었었는데 그 분이 미국의 많은 도시들 중에, 그것도 저희 집 근처에 살게 되셨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없으면서도 참 반갑게 느껴지더군요.  그 후에 이곳에서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시면서 열심히 공부하시고 학생들과도 잘 지내신다는 얘기에 혼자 괜히 흐뭇해 하곤 했었습니다.

좀 사족을 하나 달자면 제 이웃에는 이선희님 이외에 또 한명의 아주 유명한 슈퍼스타가 살고 있습니다.  바로 농구의 전설적인 존재 Michael Jordan 입니다.   마이클 조던의 아들인 제프리 조던 (Jeffrey Jordan) 이 이곳의 학교 University of Illinois 에 농구선수로 들어왔고 아들의 경기를 자주 보러 오는 마이클 조던이 아예 집을 한채 사버린 것이죠.  마이클 조던이 무슨 집인들 못사겠습니까? ^^ 저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탓에 아내와 산책하다 구경해보기도 하고 했지만 사실 조던은 한번도 못 만나보고 턱시도가 걸려있는 그의 차만 본 적이 있습니다. ^^  마이클 조던의 본가는 시카고라고 해도 무방한 Highland Park 라는 곳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3시가간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선희 14집

14집을 펼친 모습. 한국의 CD 들은 정말 예술의 경지에 올라 있는 것 같다.


하여튼 우연한 기회에 이선희님 내외분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고 몇가지 추억이 될만한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만 그건 저의 개인적인 기억으로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공개적인 장소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올려 놓는 것이 좋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행여 이선희님에게 누가 될까 하여 그러는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  다만, 제가 이선희님을 제대로 도와드린 일이 있어 그걸로 인해 제가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 이선희님께서 아주 좋은 곳에서 밥을 한끼 사주시겠다는 약속을 해주신 것 정도는 자랑하겠습니다. ^^

이곳을 떠나실 무렵 즈음해서 저희 가족과 알게 되었고 늦게 알게된 것 때문에 아쉬움이 남아 이곳에서 떠나기 직전에 이선희님 내외분께서 저희 가족을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해 주신 것은 아직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저와는 그 전에는 팬과 가수의 관계이외에 아무 관계 없었던, 가요사의 한획을 긋는 legendary singer 와의 밥 한끼는 아무래도 좀 특별하지 않았겠습니까? ^^  저녁 식사하기 전에 딸아이가 '불후의 명곡 - 이선희편' 을 미리 봐서인지 알아보고 식사 후 싸인을 요청하니 웃음을 지으시며 싸인도 해주시고 사진까지 함께 찍어주신 덕분에 이렇게 흔적이 남아 있네요 (사실 딸아이는 한국 유명가수의 친척이 이곳에 살고 있어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이야기인줄 알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아빠랑 같이 보았던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가수가 눈앞에 딱 있어서 놀랬었나 봅니다.  유명인을 만나본게 처음은 아니지만 (예전에 미스 아메리카를 만나서 함께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 그래도 딸아이에는 TV 에서 본 사람이 더 높아 보였나 봅니다.  어쩐지 밥 먹을 때 조용하더라니..  ^^)

식사후

식사후 당돌한 딸아이와 함께 해주신.. ^^


사실 편안히 와 계신 분이고 이미 많은 분들에게 시달리셨을 분에게 싸인 해달라고 하기도 머쓱하고 해서 일체 이러한 요청을 해본 적이 없는데 예상치 않게 식당 밖에 나와 수첩과 펜을 건네주면서 싸인해달라는 딸 아이의 모습에 좀 놀라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4월에는 제법 큰 규모의 컨서트가 있어 매우 바쁘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내 이웃 이선희님' 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자 가수로 되돌아 가신 이선희님에게 지금처럼 계속해서 행복한 일만 있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곳에서 정말 보기 좋으셨었거든요. 그리고 만킬로미터를 넘게 날아온 정성이 담긴 선물,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  싸인을 하고 메시지를 적어서 이곳까지 오실 분에게 전달해 주시는 그 정성이 어찌나 고마운지요.  덕분에 이것저것 여러 일 때문에 몹시 바빠서 힘들었던 와중에 무척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습니다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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