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에 오셨던 적이 있는 분이라면 많은 분들이 이용하시는 아마존이라는 전자 상거래를 주도하는 온라인 쇼핑 회사에 제가 리뷰어로 활동하시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고 수시로 제공받는 목록에서 제가 관심있는 전자제품이나 상품을 고르고 이에 관한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쓴 리뷰들은 아마존에 올라온 다른 소비자가 쓴 제품들 리뷰와는 달리 명확하게 아마존에서 운영하는 리뷰 프로그램 (Vine Voice) 의 멤버로서 무료로 제품을 제공받고 쓰여졌다는 설명이 다른 색깔로 달려있어서 아마 눈썰미가 좋은 아마존 이용자시라면 이미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길이가 길지 않더라도 매번 영어로 리뷰를 써야한다는 것은 저같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작지 않은 어려움입니다만 아직 시장에 나오지도 않은 (혹은 나왔더라도 많은 분들이 잘 모르는) 제품들을 받아서 테스트 해보는 일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에 틀림이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한국에 있을 때도 우연찮게 컴퓨터 잡지 등에 리뷰를 쓰곤 했습니다.  지금이야 인터넷을 포함한 각종 매체에 글을 쓴다든지 하는 일들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닌게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지면을 통하여 제가 쓴 글이 게재가 되고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원고료를 받고 어디 가서는 소위 '필자'로 소개되는 상황들이 많이 신기했었습니다.  우연찮게도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박순백 박사님의 추천으로 컴퓨터 전문 잡지에 글을 쓰게 되었고 제 이름이 인쇄된 전문잡지를 볼 때의 느낌은 정말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 잡지 뿐만 아니라 신문에도 글을 써보고 되고 당시 저의 직업이 아니었던 '노트북 전문가'로 지상에 소개되는 것을 보면서 어쭙짢게 우쭐하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꿈을 쫓아 미국에 오고 아마존에 상품평이 없어 안타까웠던 한 탁월한 제품에 안되는 영어로 장문의 리뷰를 단 이유로 운이 좋게도 지난 7년간 (혹은 앞으로도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리뷰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새롭게 리뷰어 제의를 받았습니다.  사실 그동안에도 몇차레 리뷰어 제의를 받았었지만 매달 영어로 리뷰를 해야하는 일에 치어서 다른 곳에서는 엄두도 못냈었는데 이번에는 한글로, 그것도 제가 좋아하는 전자책(eBook)을 제공받고 리뷰를 쓰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인 기록을 위하여 도서전용 SNS 에 감상문을 좀 올리다가 그 글들을 자주 들리는 전자책 서점에 다른분들에게 도움이 될까하여 올렸던 것이 눈에 띄었던 모양입니다.





전자책에 관심이 있는 분은 누구나 아실 리디북스라는 곳의 리뷰어가 되었고 이미 3편의 리뷰를 제출했습니다.  아마존 리뷰 목록에서는 서적 종류는 선택해 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읽는데 시간이 걸리는데다가 우리 글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단가는 낮고 ^^) 한글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즐거움에 덜컥 수락을 했습니다.  한달에 두권의 책을 읽는 일이라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막상 리뷰 활동을 시작해 보니 선택할 수 있는 책 종류가 아직은 좀 부족한게 유일한 흠이긴 합니다만 그동안 어렵게 결재해서 보던 한국책들을 증정받아서 볼 수 있다는 즐거움에 그 정도는 기쁘게 감수할 수 있게 되었네요.


사실 제가 쓰는 리뷰의 품질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새로운 리뷰어 일들이 들어오는 것은 저에게는 정말 큰 행운입니다.  아마도 제 팔자에 리뷰어가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니다. ^^  1년에 적어도 24권의 책을 읽는 사람이 된 것도 또 하나의 소득입니다. ^^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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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아내가 어떤 분의 5년 이상 거주하려고 하는데 렌트가 아닌 주택을 구입하는게 나은지에 관해서 물어온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작성한 글인데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듯 하여 포스팅 해봅니다.


안녕하세요?

저도 오랜동안 과연 이곳에 집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무척이나 고민을 많이했었고 현재도 고민을 하고 사는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학위도 끝났고 언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처지라 (14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생각만합니다. 

먼저 제가 확인하고 싶은것은 얼마나 장기간의 론(Loan)을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만약 한번에 집값을 다 지불하고 사신다면 이자로 낭비할게 없기때문에 사는것도 고려해 볼만 합니다. 하지만 20년 30년 상환의 장기간 론을 생각하신다면 잘 따져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오류가 렌트는 버리는 돈이고 론으로 산집에 대해서 내가 낸 돈은 남는거라고 생각하는데 론을 받아 집을 산후 초반에 갚는 돈은 원금이 1%나 될까 거의 99%가 이자입니다.  뼈가 빠지게 몇년 돈을 갚아나가도 나중에 따져보면 원금이 거의 줄어들지가 않기때문에 5년 정도 사신 뒤 집을 팔때 손에 쥐어지는게 거의 없는거죠..게다가 택스며 보험이며 낸 걸 생각하면...거기다가 복비까지... 

그래서 20만불짜리 집을 25년 상환으로 살때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44만불 정도 된다고 합니다.  24만불이 이자인거죠.. 그런데 24만불 먼저 갚고 조금씩 그것도 아주 조금씩 원금이 갚아지니 따져보면 뭐가 남겠습니까? 

현재는 집을 팔기는 아주 안 좋고 집을 사기에는 아주 적기라고 합니다. 마켓에 아주 많은 집들이 나와있기때문이죠..게다가 집값도 떨어진 상태라 사시기에는 좋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우리같은 뜨내기들에게는 나중에 발목을 잡는 걱정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미국정부는 집을 사라고 장려할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일년에 하우스 property tax가 약 2% 가량 되기때문에 누군가 하우스를 사면 (150000불 짜리라고 할때) 일년에 3000불씩 꼬박꼬박 세금을 낼테니까요..게다가 주택보험 의무적으로 사야하고.... 

또한 미국은 인건비가 비싸서 뭐 고장나서 사람부르면 무조건 기본이 $200-300입니다. 아니면 스스로 다 고치던지...  이런거 자세히 잘 생각해보시고...좋은 결정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제 주변에 집샀다가 떠나셨거나 떠나실분이 4-5분 정도 계신데..   한분은 2년이 지나도록 못팔다가 다운 다운해서 이제 겨우 처분하셨고 두분은 기약도 없이 부동산에 맡기고 타주로, 한국으로 가셨으며 몇년전에 10만불짜리 조그마한 하우스 사신분은 다른 외국으로 가시게 되어 팔려고 해보았지만 너무 손해가 많아서 (원금도 못건지는 경우죠 이런 경우는....) 렌트로 돌려놓고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렌트 주어도 신경 쓸것이 하도 많아 이것도 만만치는 않습니다...주인의 입장에서는.. 

저는 주변의 이런 분들을 보면서 오늘도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감하고 당차게 진행하시는 분들은 그래도 턱 턱 사시곤 하시더라구요.. 

글을 읽어보면 사시지 않는게 나은 쪽으로 자꾸 글이 가고 있지만 또 자기 소유의 하우스에서 미국생활을 마음껏 누려보는것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우스를 사시고자 한다면 저 prospect 북쪽에 Ashton Land (또는 Wood) 기억이 가물가물...  이쪽이 새집이면서 가격이 저렴하고 콘도위주라 매매가 잘 이루어진다고 하니...15만불 정도의 낡고 오래된 주택보다는 그 정도의 새 콘도는 어떠할런지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그냥 가정주부입니다. 리얼터 아닙니다..하하하~ 
좋은 결정 하세요!!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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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생활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 분이시라면 네이버에서 만든 밴드라는 새로운 SNS 서비스를 알고 계실 겁니다.  저는 최근에 인기 있었던 '꽃보다 누나' 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이게 예전 열풍이었던 '알럽스쿨' 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족, 친구, 동창 이런 단어들은 한국에 계신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미 연락을 하고 지내는 몇명의 골수 초등 동창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딴 친구들은 어찌 사나 궁금했습니다.  예전 알럽스쿨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해서 더욱 그랬었나 봅니다. 몇명 만나지 못한 채 그냥 흐지부지 되어버렸었거든요.  


그런데 이 네이버 밴드라는 엡이 미국에서도 다운이 가능한 엡이기는 하지만 미국 IP 주소로는 학교를 찾는 메뉴가 나오지를 않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한 끝에 스마트폰의 기본 언어를 한국어로 바꾸면 학교 찾기 기능이 활성화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드디어 제가 졸업한 초/중/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남자들만 다녔던 중/고와는 달리 역시 남녀공학이었던 초등학교 (저는 국민학교 세대입니다만) 가 가장 활발합니다.  이미 50여명이 넘는 친구가 들어와 있습니다. 제가 연식이 있어 이 정도면 많은 편입니다. ^^  초등학교를 다닐 때 좀 떠들석하게 다닌 탓인지 친구들이 제법 많이 알아봐 주고 가입하자마 환영도 많이 해줍니다.  왜 여러분 초등학교 다닐 때 '요란하게 학교 다니고 좀 재수 없었던 놈' 한명 쯤은 꼭 있었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저입니다. ^^;;


34년만에 보는 친구들.. 신기하게도 제가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이메일 주고 받았던 국민학교 친구들과는 전혀 겹치지가 않습니다.  즉 만나는 모든 친구들이 새로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웠던게 저는 친구들이 어찌 사나 궁금해서 참여하게 된 것인데 온통 올라오는 글들은 여기저기 넷상에서 많이 떠도는 감동적인 이야기 모음이거나 동영상들이 많습니다.  그 속에서 댓글로 초등 친구들은 나름 본문과 상관없는 친목을 나누고 있는게 이채로웠습니다.  그러나 제가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은 이거였습니다.


'얘들아, 나는 카네기가 어떤 말을 했는지, 퇴근 길에 사다 준 귤 한봉다리로 부부관계에 눈물의 반전을 가져왔다는 이미 14번을 본 얘기보다 너희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규~~~~'


그래서 제가 먼저 개인적인 사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소소한 얘기들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친구들의 첫번째 반응은 '글이 길다..' 였습니다. ㅠ.ㅠ  이곳에서도 글을 길게 쓰는 편이지만 나름 짧게 썼다고 생각했는데도 짧은 글에 너무 익숙한 50이 얼마 안남은 친구들은 그것도 긴가 봅니다.


그래도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의 댓글 속에는 아무래도 본문의 영향이 있어서 사는 이야기들이 살짝 오고 가게 됩니다.  그속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외국에 산다는 것의 맘 아픔, 부모님들께 하는 불효.. 특히나 이미 암 투병중이셨으나 최근에 컨디션이 좋아지신 아버지가 저희들에게 이야기 하시지도 않고 오랫동안 당신을 괴롭혀 왔던 어 깨 수술을 하고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병실에 누워계시면서 저와 나눈 전화통화에서 하루 종일 약국을 혼자서 4일간 보신 어머니 때문에 걱정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뭐라 할 수 없었던 저의 마음도 조금 털어놓았습니다.  


연로하신 아버지, 어머니 두분만이 하루를 둘로 나누어 밤늦게까지 하는 약국을 지키고 계시니 수술을 하게 되신 아버지는 병구완하는 사람 없이 병원에 홀로 누워계시고 아침 일찍 열어 아주 늦은 저녁까지 하는 약국을 12시간 넘게 홀로 지키시는 어머니는 4일 넘게 지쳐 계신게 너무나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 사연을 들은 친구들이 댓글로 많이 격려를 하고 응원을 해주어서 참 감사하긴 했지만 부모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은 어찌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초등 동창 게시판에 놀라운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어깨 수술로 팔걸이를 하시고 머리를 못 다듬으셨는지 모자를 쓰신 아버지와 사진을 찍으실 때면 언제나 특유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시는  어머니 바로 두분의 사진이 여러장 올라온 것입니다.  이건 뭐지? 순간 아뜩해졌습니다.  사연인즉 저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잠깐 약국에 들렸다는 것을 전화로 알게 된 동창 친구 한명이 연락을 해서 시간이 되는 친구를 모아 3명이서 귀한 선물을 들고 저희 약국에 들러 저희 부모님께 안부를 여쭙고 병문안을 드리고 사진을 찍어서 올린 것입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친구들이 방문해 주었다는 것에 우선해서 1년 반전에 '이제는 더 못 뵐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에 한번도 뵙지 못한 부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음에 일단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자신의 부모도 아닌 친구의 부모를 자식이 단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대신 방문해서 인사 드리고 저의 마음을 대신 전달해 준 친구들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고마웠습니다.


행여 제가 아쉬워 하지 않도록 사진도 많이 찍어주었더군요.  제가 요구했으면 하지 못하셨을 어머니, 아버지가 다정하게 감싸안고 웃으며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은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최근의 모습으로는 못가졌을 수도 있는 사진이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진을 보고난 감동으로 바로 글을 쓴게 이겁니다.  초등 동창 친구들도 여러 댓글들을 꼬리를 물어 쓰면서 감동을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타국에 있는 친구를 대신해서 아들/딸 노릇을 해준, 직접 저희 집을 찾아간 친구들에 대한 대견함 (남자 2, 여자 1명이 찾아갔더군요), 그리고 친구들의 방문에 감격하셨는지 적지 않은 돈을 금일봉으로 동창 발전 기금으로 증정해 주신 저의 부모님에 대한 감사, 훈훈한 이야기들로 동창방에 댓글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지금 저는 컴퓨터 화면에 떠있는 친구들이 보내온 부모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34년을 만나지 못한 동창 녀석들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오래 잊지 못할 최고의 깜짝 이벤트였습니다.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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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이미 방문해 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사는 도시는 마국 중부에 있는 쌍동이 도시로서 두개의 자그마한 도시가 나란히 붙어있는 데요, 두 도시 합쳐서 인구가 10만 정도 밖에 안되니 소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가끔 제가 사는 곳에 방문해 주시는 손님 분들께 대학교 타운인만큼 대학교도 보여드리고 이곳 저곳을 모시고 다니는데 그 중 빠뜨리지 않고 보여드리는 고등학교가 하나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동네에 있는 그 학교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이 학교의 이름은 University Laboratory High School, 한국말로 굳이 직역 하자면 ‘대학 실험 고교’라고 할까요? 좀 더 유연하게 한국식으로 해석하자면 ‘대학 부속 고등학교’ 정도가 맞겠네요.  여기서는 유니하이 (Uni High)라고 부르는데 저도 그렇게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


[ University Laboratory High School (사진: Wikipedia) ]


먼저 위치가 절묘합니다.  유니하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도 제일 잘 나간다는 공대 한가운데 딱 박혀 있습니다.  한국에도 대학 부속 고등학교들이 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기억하기에는 그들 중 어느 곳도 대학 캠퍼스 중심에 대학교 건물과 함께 위치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 학교는 제가 학위를 마친 과건물 옆에 나란히 위치해 있어서 학생 시절에 매일 보고 지나치던 곳이었습니다.


이 학교는 공립학교 입니다.  제가 사는 도시의 모든 공립 고등학교는 지역 교육청에 반드시 소속이 되어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만 특이하게도 이 학교만 교육청에 소속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덕분에 토지세라든지 교육세로부터 분배되는 재정을 전혀 지원받지 못합니다.  주 정부에서 학생 머릿수로만 따져서 교육기관에 지원해 주는 돈이 유일한 재정적 지원인데 이 액수는 사실 굉장히 미미합니다.  대학 부속 고등학교이면서도 모학교라고 할 수 있는 일리노이 주립대학과도 1980 년에 재정적 지원관계에서 독립을 해버렸습니다.  대학이 끊었는지 학교에서 끊었는지는 제가 모르겠지만 납득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음성을 켜놨는데 들리시나요? ^^).  이 학교에서 밝히는 주요 재정 수입은 학부형들의 자발적 기부금과 졸업생들의 기부금입니다.


이 학교는 공립학교이면서도 시험을 봐서 입학을 해야 하는 학교입니다. 흔히 미국 대학시험으로 잘 알려진 SAT 의 한단계 아래 시험인 SSAT 라는 시험을 봐서 점수를 제출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삼성 그룹 입사시험이 SSAT 라고 한다죠? ^^ 이 나라 미국에서는 시험쳐서 들어가는 고등학교들이 요구하는 시험이 SSAT 입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시험쳐서 성적순으로 들어가는 대학 부속 명문 고등학교인가보다 라고 생각을 하실 겁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셨습니다.  특이하게도 시험 성적이 아주 우수한 학생들도 우수수 떨어집니다.  주변에 아는 분 자녀가 지원을 했는데 SSAT 성적이 99% 로 최고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상대평가하는 시험들은 점수가 아니고 퍼센트로 성적이 나오는데 99%라 함은 미국 전체 상위 1%에 해당하는 SSAT 점수로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최고 점수입니다. 그런데 똑 떨어졌습니다.  시험 성적 이외에도 입학 원서에 아주 짧은 작문(에세이)를 6개를 써야하고 봉사활동이라든지 특별활동들도 중요한 변수로 입학 사정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이한 것 하나는 한국/중국/인도 학생들의 수가 시험을 쳐서 들어가는 다른 학교들에 비하여 현저하게 낮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사시는 분들은 한국인 인구가 많은 곳의 소위 말하는 명문학교의 한국학생 혹은 인도/중국 학생들의 비율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부모들의 교육열 덕분인지 미국의 명문학교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합니다.  그런데 이 학교는 일부러 조절을 하는지 모르지만 이들 아시안의 비율이 매우 낮습니다.  한 학년이 60명에서 65명 정도 되는데 남여가 딱 반반이고 한국학생의 경우 매년 입학생이 1명 혹은 2명이 고작입니다.  이 동네에서 소위 공부깨나 한다는 한국학생들 뿐만 아니라 가능한 나이에 있는 거의 모든 한국 학생들이 지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학교에 한국 학생이 달랑 한 학년에 1-2명 정도입니다.


이 작은 동네에도 소위 엄친아라는 소리를 듣는 공부 잘하고 특별활동 많이 하고 여러 대회에서 수상 경력이 있어 학부형들 사이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학생들도 줄줄이 입학에 고배를 마시곤 합니다.  한마디로 입학 사정이 어떻게 학생을 가리나 궁금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매년 그 나이 또래 혹은 자녀 교육에 관심이 있는 모든 학부형들에게 올해의 유니하이 입학생이 누구인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정도입니다.


또 한가지 재밌는 것은 미국의 고등학교가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4년제로 되어 있는데 이 학교는 5년제입니다.  미국의 교육시스템을 K-12 라고 부르는데 이는 Kindergarten (유치원) 에서 12학년 (고3) 까지를 아우르는 말입니다.  일반 고등학교는 Freshman (신입생, 9학년), Sophomore (10학년), Junior (11학년), Senior (12학년) 으로 나누어 지는데 이 학교는 Sub-Freshman 이라고 신입생 밑에 한 학년이 더 있습니다.  약칭 써비 (Subbie) 라고 불리우는 7학년과 8학년을 아우르는 학년이 있습니다.  아우른다는 의미는 이 학교에 지원시 6학년, 7학년 학생이 동시에 sub-freshman 으로 지원할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어떤 6학년 학생은 바로 8학년으로 월반 지원도 가능다는 얘기죠.


“그래서 어쩌라고~~ “ 라는 이야기 나오기 직전이시죠? 이제 몇가지 저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서입니다


학부모나 졸업생의 기부금으로 운영이 된다고는 하지만 사실 미국도 모든 사람이 기부금에 적극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부호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도 아니고 실제로 이 학교에서 이번에 발표한 통계를 보면 현재 재학생의 학부형의 경우 28% 정도만 기부를 하고 있으며 기부액수도 학교가 권장하는 일년 $2100 에서 많이 못 미치는 실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참고로 미국의 공립학교는 수업료가 없으며 저희 동네의 사립학교의 경우 일년에 $6000 정도 하니 사립의 3분의 1 수준 정도의 기부를 현 재학생의 학부모에게 학교에서 권장한다고 하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시작해서 올해까지 2년간 학부형들을 깜작 놀라게 할 일이 하나 벌어졌습니다.  학교에서 신입생 전원에게 Lenovo 사의 ThinkPad 노트북 컴퓨터를 지급한 것입니다.  당연히 새 제품이며 쓸만한 스펙의 무게도 가벼운 노트북 컴퓨터를 작년 그리고 올해 그리고도 앞으로도 쭈욱 모든 학생에게 지급하겠다는 것입니다.  학교내에는 행여 고장내는 학생들을 위한 수리 전담원도 생겼고 분실이나 고장의 경우 교체도 해줍니다.  예전에 뉴스로 캘리포니아에서인가 학생들에게 아이패드를 지급할까 계획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입학하는 학생 모두에게 새 노트북 컴퓨터를 지급하는 일은 미국 전체에서도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 이 동네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일이었습니다.   미국에 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국의 공교육 예산이 많이 삭감이 되어서 특수교육 교사들도 없어지고 예체능 수업도 줄어들고 여러모로 암울한 소식들이지만 저희 동네 작은 학교가 그렇다니 참 놀랄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DVD 를 통하여 각종 뮤지션의 라이브 실황을 즐겨들으시는 분들은 VH1 Divas Live 라고 머라이어 캐리/셀린 디온/글로리아 에스테판/아레사 프랭클린/캐롤 킹 등 전설적인 여성 아티스트들이 함께 한 DVD 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 2탄으로 휘트니 휴스턴/티나 터너/쉐어 등이 가세했던 Divas Live 99’ 도 연이어 떠올리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이 컨서트가 바로 미국 공교육에서 특히 음악교육 예산의 삭감에 반대해서 그 기금을 모으기 위한 행사일만큼 미국의 공교육 예산은 줄어만 갑니다. 물론 선생님들 월급도 형편없어 제가 이곳에서 대학원생을 하던 시절 받던 생활보조금보다도 대부분의 교사들이 월급이 더 작았으니까요 (미국의 교사들은 방학동안에 월급이 나오지 않아서 다른 곳에서 알바를 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기말이면 자기 반 학생들에게 혹시 Tutor (개인교습)을 받을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는 담임선생님의 모습은 그리 보기 어렵지 않습니다).


뭐 노트북 컴퓨터를 주는 것 쯤이야 미국의 재정이 넉넉한 비싼 등록금의 사립학교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 학교를 소개해 드리고 싶은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소도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3명이나 나왔다는 것입니다.  경제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이름을 들어보셨을 제임스 토빈 (노벨 경제학상 1981) 을 위시하여 필립 스미스 (노벨 물리학상 1977), 해밀턴 스미스 (노벨 의학상 1978) 등 3명의 수상자를 배출하였습니다.  또한 미국 언론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퓰리쳐상 수상자도 배출했으며 (죠지 윌, 1977)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잘 아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난징대학살을 고발한 베스트셀러 작가였으나 36세에 자살한 ‘난징의 강간' 의 작가 아이리스 창 역시 이 학교 출신입니다.   그리고 제 블로그와도 연관도 있죠. 제가 이전 포스트 “미스 아메리카 진을 만나다” 라는 글에 등장하는 미스 아메리카 에리카 해롤드 역시 이 학교 출신입니다.  



Erika Harold[ Miss America 2003 - Erika Harold ]



유니하이 학교 학생들이 누리는 아마도 가장 큰 혜택은 일리노이 주립대학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대부분 똑같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일단 이메일 주소가 일리노이 주립대학 학생들과 같고 학교의 무선 인터넷 서비스 및 학교의 도서관 시설을 모두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으며 상급학년에 올라가서는 대학교 과목을 미리 수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리노이 주립대학으로 진학시 3년만에 조기 졸업도 가능합니다.  등록금 비싼 미국에서 이건 정말이지 큰 혜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학부 수업 들을 때 강의실 한쪽에 앉아있던 정말 고등학생 같아 보이는 학생들이 누구지? 했었다가 나중에 유니하이 학생들이라는 것을 알고 놀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놀라웠습니다.  이 자그마한 도시에 있는 한 고등학교가 그렇다고 해서 무지막지한 등록금을 자랑하는 것도 아닌데 (미국 동부의 기숙학교들의 등록금은 대학교보다 비쌉니다) 이렇게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고 재정적으로 건실하게 유지해 나가는 모습이요.  제가 듣기로는 뭐 미국 50대 공립 고등학교에 뽑혔다 하는 소문도 있었는데 (미국의 공립 고등학교는 3만개 정도 됩니다) 이런 고등학교들의 랭킹을 매년 발표하는 US News & World Report 에는 이 학교가 아예 등재되어 있지가 않구요 (아마도 교육청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탓인 것 같습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이자 유니 하이가 가지고 있는 공식적인 기록이라면 미국 전체에서 졸업생 숫자 대비 노벨상 수상자가 가장 많은 학교 1위입니다.


매년 이 동네의 학부형들은 올해에는 어떤 학생들이 들어가나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데 입학한 학생들을 보면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단지 공부만 잘하는 학생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또한 졸업생들의 명문학교 진학율도 특별히 따로 발표하지 않기에 대학 입학에 최적화된 학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참고로 미국에는 College Prep High School 이라고 소위 대학진학에 최적화된 한국식 명문 고등학교들이 꽤 있습니다.  미국 고등학교 랭킹의 상위에는 대부분 이런 학교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서 설명한 이유 때문에 일리노이 주립대학으로 진학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이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학생들이 개인의 사물을 보관하는 사물함을 모두 잠그지 않고 열어놓는게 전통이라는 것이 색달랐습니다.  직접 보니 정말 개인 사물함들이 잠겨있지 않음은 물론 활짝 열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건의 도난사고도 없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게 이채로웠습니다.  아, 물론 이 학교는 외부와의 문은 잠겨 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미국의 한 고등학교 이야기는..  그져 저에게 수업료도 내지 않는 공립학교로서는 조금 특별하게 여겨져서 소개해 본 것인데 여러분에게는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 학교가 미국에서 누구나 알만한 전국구 레벨의 유명한 학교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저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 졸업생 숫자에 비하여 가장 많은 노벨상을 낸) 학교가 겨우 이만한 크기의 도시에 있다는게 저에게는 참 경이로웠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글로써 소개하고 싶은, 학부형들의 주머니나 세금이 아닌 졸업생들의 기부금으로 멋지게 운영되는 초/중/고등학교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으로 글을 마무리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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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모 게임회사의 직원이라는 분에게 이메일을 한통 받았습니다.  그 회사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 게시판에 제가 보드게임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한다는 글을 보았고 국내 보드게임 문화와 산업의 발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제가 이용하는 도서관의 정보와 사진등을 얻을 수 없냐고 비교적 정중하게 요청하셨더라구요.  

그래서 나름 인터넷에서 제가 이용하는 도서관 사진도 내려받고 또 직접 도서관에 가서 눈치 봐가며 사진도 따로 찍고 해서 이메일로 보내드렸는데 그 이후 연락이 없으시더군요.  외국에서 살다보면 가끔씩 이런 요청을 받고 또 거기에 제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부탁을 들어드리면 그 후 고맙다는 인사조차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또 하나의 예가 추가되었습니다.  

사실 부탁하시는 분들은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그 후 또 다른 분의 부탁이 있을 때 이런 불쾌한 경험이 떠올라 부탁을 들어드리는 일을 주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 커뮤니티 게시판에 제가 위의 내용으로 글을 올렸고 담당자께서 정중히 사과를 해주셔서 지금은 기분좋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찍어온 사진들이기에 여기에도 소개해 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제가 요즘 보드게임을 좋아하게 되었고 동네 도서관에서 보드게임을 빌려서 해본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바로 그 도서관 얘기입니다.

먼저 제가 이용하는 우리 동네 도서관의 전면과 측면 사진입니다.  인터넷에서 구한 사진이구요, 정면과 측면이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시면 하나는 주차장 앞에 하나는 길가에 위치한 모습니다.  원래는 저 측면이라고 아래에 보여드리는 사진이 정면이었는데 도서관 증축 공사가 있고나서는 주차장으로 통해있는 문이 정문처럼 이용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제가 사는 도시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공립 도서관 (Public Library) 이 두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쌍동이 도시이고 도서관이 두개이니 각각의 도시에서 하나씩 운영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래의 도서관이 좀 고전적이고 다른 하나는 훨씬 더 현대적이고 시설이 놀랄만큼 좋습니다. 하지만 보드게임은 이곳에서만 빌려줍니다. ^^

urban free library<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는 도서관 정면 >


Urbana Free Library<길옆에서 위치한 예전 정문/현재 측면 모습>


아래의 사진이 보드게임을 빌려주는 도서관 2층의 카운터의 모습입니다.  두명의 직원이 상주하면서 보드게임이랑 이곳에서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아래의 사진은 많은 수의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는 2층 전경입니다.  컴퓨터가 없거나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손쉽게 사용을 할 수 있습니다.



일하는 직원 뒷쪽으로 보드게임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대여가 나간 것도 있으며 한달에 하나씩 새로운 보드게임이 추가 됩니다.  일주일에 한사람 앞에 하나씩 빌릴 수 있습니다.  하루씩 반납이 늦을 때마다 몇백원 수준의 연체료가 부가됩니다. ^^




아래의 사진은 한달에 한번씩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보드게임 모임입니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게임을 하고 도서관 상주 직원이 보드게임 룰을 설명해 줍니다.  바로 옆에는 카페가 있어서 커피를 뽑아다 마실 수 있으며 젤 왼쪽에서는 '팬데믹 (Pandemic)' 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으며,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저랑 같이 게임을 하던 팀인데 (제가 게임하다가 일어나 가서 사진을 찍으니 저를 봐줍니다 ^^) '카탄의 개척자 (Settlers of Catan)' 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 이날 처음으로 카탄의 개척자를 해보았고 예전부터 알고 싶었던 게임인데 사진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머리가 하얀 어른께 많이 배웠습니다. ^^  제가 게임을 함께 하는 팀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다들 연식이 꽤 됩니다.  오른쪽 밑에서는 Hive 라고 하는 2인용 게임을 하고 있는데 턱수염이 난 친구가 도서관 직원이며 룰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이렇게 직접 게임상대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정말 친절합니다. ^^



뭐 이 정도입니다.  도시의 도서관에서 보드게임을 빌려주고 이를 빌려 맘껏 해보고 나서 맘에 드는 것만 구입을 할 수 있는 것은 저에게도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됩니다. ^^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이렇게 도서관에서 보드게임을 빌려주고 보드게임 모임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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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태어날때부터 비디오 게임부터 온갖 종류의 게임을 접하면서도 한번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못해본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게임에 대한 증오심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온갖 종류의 비디오 게임기가 출시될때마다 구입해서 결국은 아들만 좋은 일 시켰지요 (저의 게임 역사는 인류 최초의 비디오 게임기인 아타리사의 Pong 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제가 사는 도시에서 저 혼자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


그러다 미국에 와서 아이를 키우면서 딸아이가 보드게임을 하자는 것을 몇번 거절해서 상처를 준 일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모노폴리 같은 것이 굉장히 저변이 넓은데 저는 정말 몇시간씩 그걸 보고 앉아있는게 참 싫었더랩니다. ^^  아이가 하자고 했던 것은 Game of Life 라고 아마 한국에서는 인생게임이라고 할겁니다.  동그란 휠을 돌려서 말판을 따라가는.. 재미는 없고 시간은 무지 걸리고 몇번 하다가 딸아이에게 도저히 못하겠다고 GG 를 치고 그걸로 딸아이는 상처를 받았었죠. ^^



LIFE 인생게임LIFE 인생게임



그러다 딸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혹시 나같은 사람도 재밌게 할 수 있는 보드게임이 있을까 찾다가 제 인생 최초로 두번 이상 게임을 하게되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  그래서 요즘은 인터넷에 있는 모든 보드게임에 관한 정보를 뒤지면서 재밌는 것을 찾은 후에 동네 도서관에서 하나씩 빌려서 해보며 재미있는 것은 소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도서관에서 보드게임도 빌려줍니다 ^^)


저를 보드게임의 세계로 이끈 게임은 루미큐브네요. 쉽고 간단하면서도 상당히 재미가 있더군요. 집에 오는 손님들과도 같이 하고 사람들과도 같이 하고.. 그러다가 카르카손도 알게 되고 리코쳇 로봇도 해보고 Qwirkle (쿼클) 도 해보고 한국에서 오시는 분에게 부탁해서 다빈치 코드도 소장하게 되었네요 (미국에서는 절판이 되서 비싼 돈을 줘야 구입합니다 ^^) 지금은 아마존에서 Ticket to Ride: Europe 버젼도 그동안 아마존 신용카드를 쓰면서 모아둔 포인트로 구입했습니다. 티켓 투 라이드는 아이패드 엡으로 사서 해보고 맘에 들어서 기본판을 건너뛰고 확장판을 하게 되었네요.  지난주에는 남은 포인트 탈탈 털어서 이건 죽을때까지 재밌게 하겠다 싶은 Dominion 이라는 게임도 구입을 했습니다. ^^

Rummikub중독성 장난 아닌 Rummikub 루미큐브

참 신기합니다.  이 나이 다되어 가도록 게임 따위에는 빠져본 적이 없는데 보드게임은 예외네요.  보드게임 전문 커뮤니티로 가장 유명한 BoardGameGeek.com 에 가서 기웃기웃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게임 방법 및 정보를 찾아 온라인을 뒤지기도 하네요.  ^^


일주일에 한번씩 도서관에 보드게임을 반납하고 새걸 빌리는데 매주 화요일이나 수요일에느 이번 주에는 뭐를 빌릴까 행복한 고민중입니다. 그동안 집에서 딸아이는 스마트폰에 머리 박고 있고 저는 한국 드라마/쇼등을 보며 소일했었는데 이제 머리를 맞대고 깔깔거릴 수 있어 좋습니다.  주말이면 저희 집에 오시는 손님이 있는데 그분 가족과 죽이 맞아 금요일 저녁에는 매주 Board Game Night 이네요. ^^


Ticket to RideTicket to Ride : Europe 확장판


바로 주변에는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아직은 혼자서 머리를 싸매고 하는 외로운 보드게이머지만 늙으막에 시작하게 된 새로운 취미라 만감이 교차하네요. ^^


참, 요즘은 딸아이가 바빠져서 (새 학교에서 숙제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제가 사정사정해야만 같이 게임을 할 10분을 겨우 얻어냅니다.  완전한 전세 역전이죠.  어쨌든 새로운 관심분야가 생겼다는게 매우 즐겁습니다. ^^


* 2013년 10월 15일 현재 제가 해본 보드게임 중 선호도 Top 10 입니다.


1.  Dominion (도미니언)

2.  Rummikub (루미큐브)

3.  Ticket to Ride: Europe (티켓 투 라이드: 유럽 확장판)

4.  Carcassonne (카르카손)

5.  다빈치 코드 (한국판, 미국명 Game of Coda)

6.  Forbidden Island (금단의 섬)

7.  Ricochet Robot (리코쳇 로봇)

8.  Settlers of Catan (카탄의 개척자들)

9.  Blokus (블로커스)

10.  Qwirkle (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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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에서 만13살이었을 때는 중학교 2학년이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라고 하면 초등학교(국민학교)를 갓 벗어난 아주 어린 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 딸아이는 같은 나이에 본의 아니게 고등학생이 되어버렸습니다.


미국의 고등학교 시스템을 아시는 분도 많겠지만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4년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9학년을 freshman, 10학년을 sophomore, 11학년을 junior 그리고 12학년을 senior 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번에 딸아이가 입학하게 된 공립학교는 freshman 아래에 subbie (써비) 라고 부르는 sub-freshman 이 하나 더 있습니다.  즉 5년짜리 고등학교가 되는 셈이지요.  이름도 University Laboratory High School 이라고 약칭 유니하이(Uni High) 라고 부르는, 한국식으로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일리노이 주립대학 부속 고등학교' 이니 고등학교가 맞습니다만 월반은 아니고 1년이 더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셈이지요. ^^


University Laboratory High SchoolUni High 전경 - 뒷쪽 유리건물이 아빠가 공부하던 Siebel Center ^^


그동안 사립학교를 다니다가 SSAT (Secondary School Admission Test) 라고 미국에서 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시험으로 유명한 SAT 의 전단계 버젼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시험을 따로 치루고 응시하여 이 공립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SSAT 와 SAT 는 주관사가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딸아이 자신이 학교 분위기가 바뀌기를 원했고 여러모로 많은 혜택과 기회가 있는 학교로 유명한 곳인만큼 지원하는 것 자체에 대하여는 저희 내외가 말리지 않았으나 입학이 가능하리라고는 정말 꿈엔들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는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원원서도 들여다 본 적이 없고 지원서에 써야 하는 6개인가의 에세이를 구경조차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순전히 혼자 힘으로 지원해서 그래도 나름 경쟁률이 높다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오히려 우리 부부가 딸아이를 다시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딸아이는 특별한 면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거든요.  심지어 SSAT 점수조차도 이 학교에 지원하는 날고 기는 학생들에 비해서는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요 (지금도 우리 부부는 도대체 학교에서 이 아이의 어떤 면을 보고 뽑았을까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


제가 학위를 받은 학과 건물이 위의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바로 Uni High 옆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어서 그 옆을 10년을 넘게 지나치면서도 단 한번도 내 자녀가 이 학교의 학생이 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 작은 도시에 방문해 주시는 분들이 계실 때마다 학교 투어의 일환으로 이 학교를 소개해 본 적이 있을 뿐이니까요.  보통 한 나라에서도 과학 분야의 노벨상이 나오기가 그리 쉽지 않은데 이 작은 도시의 공립 고등학교에서 노벨 의학상, 경제학상 및 물리학상 등 3명의 수상자가 나온 데다가 퓰리쳐상 수상자까지 배출했으니 명문 고등학교에 관심이 많지 않은 한국에서 오신 지인들에게조차 이 학교를 소개할 때마다 '오~~' 하는 탄성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유니 하이는 학생수 대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학교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딸 아이는 이 학교의 '써비'가 되어 학기를 시작했습니다.  공립이니 수업료도 없고 (하지만 학교 재정 탓에 학부모님들에게 일정 금액 이상의 기부를 권유하긴 합니다 ^^) 일리노이 대학과 연계되어 있는 탓에 학교의 도서관 및 각종 시설들도 이용이 가능하고 심지어 이 대학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학생들과 이메일 주소도 같습니다.  즉 @illinois.edu 라는 이메일 계정을 소유하게 된 것이지요.  어느면에서는 아빠와 동문이 된 것입니다.


일전에 이 블로그의 '미스 아메리카 진을 만나다' 글에서 소개해드렸던 이 동네에서 유일한 미스 아메리카로 뽑힌 에리카 해롤드 (Erika Harold) 양과는 이제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고등학교도 동문이 된 셈입니다.  딸아이와 에리카 양이 함께 만나서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말입니다.


에리카 해롤드와 함께 한 딸아이


이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딸아이는 새로 바뀐 학교 분위기와 친구들을 무척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물론 모든 신입생들에게 최신형 ThinkPad 노트북이 전원에게 한대씩 무료로 지급되어 더욱 즐거워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직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가 없는 딸아이에게 본인 전용의 노트북을 하나 사줄까 고려하고 있던 저로서는 큰 돈 굳은 셈이 되어서 얼마나 가계에 보탬이 되는지 모릅니다.  ^^


어린나이에 고등학생이 되어버린 것, 많은 우수한 아이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 좀 안쓰럽기도 하지만 Class of 2018 (미국에서는 동기동창을 이렇게 졸업연도로 호칭합니다) 의 유일한 한국인이 된 딸아이가 고등학교 생활을 멋지게 잘 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합니다.


아마도 2013년에 일어난 저희 가족에게 가장 놀라운 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딸아이가 유명한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과 고교 동문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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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을 정하면서 '애국자' 라는 단어를 선택하고 나서 혼자 웃었습니다.  참 구태의연한 단어지 않습니까? 이제는 5 공화국 시절에나 어울릴법한 그런 단어.. 하지만 저 단어 이외에 다른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얘기도 시작하기 전에 서론이 늘어지겠네요. ^^


저는 아직도 한국에 살고 있고 잠깐 미국에 들린 것 같은 기분인데 교포 혹은 동포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더군요. 미국 생활 20년이 멀지 않으니..  그래도 매일 인터넷을 뒤지면서 한국의 이야기들을 듣고 읽고 하다보니 때로는 한국에 그냥 있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가 외국에 살고 있구나 가장 실감이 날때는 아이들을 볼 때인 것 같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하나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나머지 하나도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될만큼 이곳에서 오래 자란 애들이라 외부의 친구들 과 소통을 하거나 자기 둘이 이야기를 할 때는 영어를 주로 쓰곤 합니다.  사실 이 아이들에게 제일 언어는 영어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매우 잘 구사하는데 이렇게 만드는게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마치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의 자녀를 영어에 능통하게 키우는 것만큼 미국에서 자녀를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마나 대화를 하는 것은 어떻게 윽박질러서라도 가능한데 한글을 읽고 쓰게 하는데는 '한글 학교' 의 도움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곳에 살아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국의 한인들이 어느 정도 인구를 형성하고 사는 도시들에는 예외없이 한글학교들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들 대부분은 정부단체나 기관의 도움없이 모두 그 동네 사는 한국 분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들입니다 (혹시라도 나라에서 세운 한글학교가 있는 곳에 살고 계신 분들께서는 댓글로 알려주세요 ^^).  인구가 10만정도에 불과한 제가 사는 도시에도 제법 오래된 한글학교가 있는데요 (아내가 13년을 선생으로  일했으니 그보다는 오래 되었겠지요) 이곳에 사는 분들 및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에서까지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수업을 듣곤 합니다.  보통 자녀분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 토요일 오전에 수업을 하는데 저희 동네는 오전 10시 20분에서 1시 20분까지 3시간 수업을 하고 3살짜리부터 5학년까지 반이 있습니다 (지역마다 다릅니다).  이곳에서 미국에 사는 한국인 자녀들이 한글을 배우고 한국의 역사를 배웁니다.  선생님들은 주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수업료를 약간 받는 걸로 명목상의 사례를 드리기도 합니다) 선생님으로 봉사해 주시는 분들 중에는 감사하게도 꼭 한국에서 실제 교사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어서 이런 분들에게 교육의 노하우를 배우기도 합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영사관에서 배포하는 해외동포용 한글 교과서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의 교과서를 그대로 가져다  쓰기도 하고 선생님들이 스스로 교재들을 만들기도 합니다.  저의 아내도 한동안 아이들이 흥미를 끌만한 교재들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기도 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파워포인트나 PDF 를 만드는 법을 몰랐던 아내를 도와주느라 알게 되었습니다).  또 여러가지로 한국에 비하여 서적이나 기타 자료들이 많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단지 한글학교 뿐만이 아니구요... (아직도 서론이었어? 하고 털썩 주저않는 분들 보이는데 힘내세요. 곧 사진도 나오고 그럴 계획입니다. 제 글이 원래 좀 장황하고 그렇습니다 ^^).


몇해 전에 저에게 기쁜 일이 한가지 있었는데요, 바로 제가 온라인으로 알고 지내던 회원 두분이 미국의 아주 작은 소도시에 사는 저희 동네에 방문을 해주셨습니다. 물론 저희 집만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지만.. ^^  그 중 한분과 우연히 이곳에 있는 한글 학교에 대하여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분께서 집안이 출판 관련일을 한다는 얘기만 어렴풋이 듣고 그러시냐고 의미있는 일을 한다고 얘기를 드렸었는데...


두둥.......






남들은 차떼기를 하는데 쓴다는 그 묵직한 상자가 한국으로부터 이곳까지 날라온 것입니다.  이만한 무게와 부피를 가진 소포를 받아본 적이 없어 당혹스러웠습니다. ^^


놀부가 기다리던 박 따는 심정으로 얼른 뚜껑을 열어보니...





상자 가득 책이 담겨있습니다.

주섬 주섬 꺼내보니 분량이 상당합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때가 이 분이 한국으로 돌아간지 얼마되지 않았을 터인데 이렇게 특급 쾌속 배송으로 이만한 부피와 분량을 미국으로 보내려면 주변분들에게 여쭈어 보니 30에서 40만원은 족히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책이야 어떻게든 구하셨다고 해도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 일일이 포장을 해서 미국까지 보내시다니 그 성의와 정성에 감탄했습니다.  한참 고심을 했습니다.  상당한 고퀄의 책들입니다. 그림책도 있고 학습 만화도 있고 집의 책장에 꽂아두면 정말 멋질 한국의 문화유산 및 농기구들에 관한 도감도 있습니다.   제가 있는 학교 (일리노이 주립대학 어바나-샴페인 캠퍼스) 는 공립학교 중 장서량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책을 가진 도서관이 있습니다.  참고로 기관을 따지지 않는다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책을 가진 곳은 미국 국회 도서관이구요, 사립학교를 포함하면 하바드 대학이 일위구요, 저희 학교는 총 4위입니다.


처음에는 책이 많으니 반절은 일리노이 대학 아시아 도서관에 기증을 하고 반은 한글학교에 해야겠다 생각을 하고 학교 도서관에 알아봤더니 아동용 도서는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보내주신 책을 모두 한글학교에 기증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보내주신 분의 흔적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었습니다.  적당히 싸인펜으로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처음에는 라벨 용지에 레이져 프린터로 인쇄를 해서 붙일까 생각을 하다가 어떤 분은 큰 돈을 들여서 보내주시는데 좀 신경좀 써드려야지 않겠느냐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나름 머리를 굴려서 인쇄업체에 스티커 제작을 맡겼습니다.  인터넷 업체들 생각보다 싸더군요. ^^


두둥...


이렇게 (제가 보기에) 예쁜 스티커가 도착을 했습니다.





좀 더 클로즈 업을 해보면..





50을 바라보는 '디자인 따위는 개나 줘버렷!' 수준의 아저씨가 만든 것인지라 여러면에서 세련미는 부족하지만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겁니다. ^^


책의 일부처럼 보이도록 하자는 의도에서 한국의 은유적인 미가 배어있는 세모시 옥색치마를 테마로 고른 색깔이며 아래의 사진처럼 이렇게 커버를 넘기고 난 첫 페이지에 살포시 붙여 놓았습니다.  제 눈에는 아름다웠습니다. 후훗..






뿌듯함에 요즘 유행한다는 탑쌓기 인증샷도 해보았습니다. ^^





그리고 이렇게 소중하게 바다를 건너온 책들은 한글학교에 전달이 되었습니다.  바다건너 소중한 선물을 받은 한글학교 선생님들께서는 가만 있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감사의 마음을 제대로 전할때 쓴다는 땡큐카드를 보내주셨습니다.  바다 건너로 넘어가도 시들 염려가 없다는 바로 그 카드..




이랬습니다.  제가 아는 애국자 한 분이 하신 일은...  제가 이 분에게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특유의 시크함 때문이었습니다. 저란 사람, 연필 한자루라도 어디에 기증하고 나면 꼭 연락을 합니다.  '받는 분이 좋아하던가요?',  '뭐 별것 아니지만 제 마음을 좀 담아보았습니다',  '그 것 나름 신경쓴 연필인데 마음에 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드립의 향연을 날리며 제 기대에 맞는 대답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그 대답이 돌아오면 흡족해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기증해 주신 분...  제가 잘 받았다고 카톡을 드렸는데도 그랬냐고 그리고 그게 끝입니다. 어랏?  그 후에 다른 말씀이 없으십니다. 반응이 어떤지 아이들은 좋아하는지 선생님들은 감사해 하던지 한번도 묻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게 더 죄송해서 이메일로도 감사를 드리고 몇개월 지나서도 다시 카톡 드려서 고맙다고 하여도 그냥 대답만 하고 끝입니다.


세상엔 이런 분들이 있더라구요.  잘 생각해 보면 미국 전역의 수많은 도시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한인 2세들에게 대한민국과 한글을 깨우쳐 주시는 분들이나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먼곳까지 이렇게 두고 두고 남을 귀한 자료를 보내고도 저처럼 나대는 사람이 아니면 다른 분들이 알지도 못하는 선행을 하는 진짜 애국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분들이 정말 대한민국의 힘이고 진짜 한류라고 생각합니다.


윤 선생님 그리고 보리 출판사 여러분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말 큰 일을 하신 겁니다.  감히 3백만 재미동포를 대표하여 큰 절 드립니다. 이렇게 혼란한 시대에 선의를 보여주신 분을 소개드리게 되어 저도 정말 기쁩니다.  



샴페인 드림



P.S. : 사실 이 책을 기증받은게 아주 오래 전입니다. 그런데 저의 게으름으로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이제야 보고를 드리게 된 것을 기증하신 분에게 참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밀린 숙제를 끝낸 기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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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저곳에 글을 쓰긴 하지만 막상 제 자신의 블로그인 이곳에는 소홀한 편이었습니다.  다른 곳에 올렸던 글의 글창고로 쓰고 있었던게 고작이었다고나 할까요?


몇주전 제 블로그에 들어와보니 엉뚱하게 다른 웹사이트로 자동으로 이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라라? 관리자 모드로 로그인해서 보니 제 블로그 2차 주소 정보가 바뀌어 있더군요. 이 블로그의 원래 주소는 http://myusalife.tistory.com 인데 제가 http://myusalife.com 도메인을 사서 2차 주소로 연결시켜놓은 것인데 이 연결정보가 엉뚱한 사이트로 변경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비밀번호를 알았는지 이 정보를 바꾸어 놓은 것이지요 (물론 수동이 아닌 자동으로 스크립트로 실행이 되었겠지만..)


즉시 그 정보를 원래대로 복구하고 비밀번호도 변경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이 블로그에 쓰는 비밀번호가 제가 다른 곳에서 쓰는 비밀번호가 아닌데도 누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좀 나름 머리를 쓴답시고 제가 접속하는 곳마다 다른 비밀번호를 쓰고 있고 나름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묘한 조합으로 패스워드를 만들고 있거든요.


그렇게 간단히 문제 해결하고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이번에는 티스토리측으로부터 (정확히는 클린 다음 (Clean Daum) 으로부터) '어뷰징' 이라는 사유로 티스토리 로그인 제한 및 블로그 접속 제한 조치가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즉시 블로그로 가보니 접속제한된 블로그라는 메세지와 함께 티스토리 로그인조차 되지가 않았습니다.  막상 당하고 나니 참 난감하더군요.


Tistory Message티스토리에서 온 로그인 제한 통보



이메일에 포함된 다음 고객센터로 두차례나 양식에 의거해서 로그인 접속제한 해제 요청을 보냈는데 자꾸 다시 작성해서 보내라는 회신이 와서 보니 저의 다음 아이디가 티스토리에 등록된 이메일 주소와 달라서 다음에 로그인 된 상태로 보내니 등록된 이메일 주소와 달라서 자꾸 수정해서 다시 보내라고 왔던 것이었습니다.  처음 이해를 못했을 때에는 왜 자꾸 다시 요청하라고 하는지 나름 발끈하기도 했었습니다. ^^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대부분 이런 경우 직접 다음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빨리 해결을 보는 모양인데 저야 뭐 외국에 있기 때문에 국제전화까지 할 일인가 싶어 차근 차근 웹 양식이나 이메일을 통하여 해결을 보기로 하였습니다.


일단 로그인 접속제한 해제 요청을 했는데 만 24시간 이내로 답장이 오더군요.  그리고 일단 티스토리에 로그인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직접 블로그 주소로 들어오면 접근이 제한되었다고 아무것도 안나오니 바로 블로그 관리 메뉴로 로그인을 해서 좀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2차 주소 정보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니 그 사이에 새로운 해킹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지난번에 첫 해킹이 있었을 때 블로그 코드 안에 남아있었던 악성 코드를 못보고 지나친 것 같습니다.  HTML/CSS 코드들을 찬찬히 들여보니 바로 누군가 심어놓은 음란 사이트로 바로 옮겨지는 스크립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간단히 제거하고 나니 한가지 떠오르는 생각은 저처럼 컴퓨터를 전공해서 이런 코드를 보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야 이게 간단한 일이겠지만 대부분의 블로거들에게는 참 쉽지 않은 일이겠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블로거들이 HTML 코드나 CSS 내용을 보며 악성코드를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물론 꾸준한  검색을 통하여 결국은 해결은 가능하겠지만 정확히 같은 피해가 아니면 쉽지가 않겠지요)


악성 코드를 제거하고 또 티스토리 문의하기 (http://cs.daum.net/mail/form/173.html) 로 다시 양식을 작성하여 블로그 접속제한을 요청하니 24시간 정도가 지나서 또 처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다음의 고객센터는 처음 이용해 보는데 비슷한 속도로 일들이 하나씩 처리되는 것을 보니 신뢰감이 갔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고객센터들 중에 이렇게 또박 또박 비슷한 간격으로 일이 한단계씩 처리되는 곳을 별로 못보았거든요.


제가 사실은 관리하는 웹페이지들이 좀 있어서 해킹당한 경험이 처음은 아니지만 (사이트 하나가 통채로 날아간 적도 있습니다. ㅠ.ㅠ) 블로그 시작하고 나서는 아무래도 신뢰받는 블로그 사이트에 둥지를 튼 만큼 맘을 놓고 있었더니 이런 일이 생겼네요.  앞서 날려먹은 웹페이지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만든거라 사실 여기저기 보안상의 문제가 없지 않았거든요.


어쨌든 이렇게 해킹도 경험해 보고 차근 차근 해결해 나가는 것 또한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난감했었지만 지나고 보니 신선한 경험이네요.  아마도 지금쯤 누군가는 자신의 블로그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어처구니 없어 열을 내면서 여기저기 검색하고 있는 분들 계시겠지만 말입니다. ^^ (그렇게 해서 이곳에 온 분이라면 제 글이 조금 위로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경험이었고 덕분에 오랜만에 포스팅도 해봅니다. ^^  설마 해킹을 당하고 그로 인해서 접근금지 조치를 받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


P.S. : 블로그 수리(^^) 하는 김에 댓글이나 방명록도 티스토리에 로그인한 사람만 가능하도록 바꾸었습니다.  그동안 스팸 광고 댓글 지우는게 거의 일이었었거든요.  하지만 어쩌다 오신 분들 댓글 편히 남기시라고 그런 옵션을 주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조금 깨끗한 블로그로 남기고 싶고 해서 그렇게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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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예전보다 시들하지만 미국 여자 프로골프 리그 (LPGA) 에서 처음으로 태극낭자들이 쾌거를 올리던 시절에는 마치 박찬호 선수가 메이져리그에서 활약하던 때처럼 전국민의 관심이 LPGA 로 쏠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LPGA 에서 한국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올리는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이 기회를 통하여 제가 LPGA 태극낭자 군단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선수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경험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이 첫경험 이후에 저는 LPGA 의 대단한 팬이 되었으며 한동안 미국 LPGA 온라인 게시판에서 많은 외국친구들과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며 좋은 시간을 가졌던 기억도 새록새록 납니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가는 그들과의 첫만남을 추억하며 예전에 썼던 글을 고쳐서 올립니다.


저와 저의 큰 아들은 미국에서 자동차 보험회사로 가장 큰 State Farm Insurance 회사에서 주최하는 LPGA State Farm Classic golf 대회가 열리는 일리노이주의 주도 스프링필드 근교 Sherman 시에 있는 The Rail golf club 에 갔었습니다.


당시 LPGA 최대 스폰서인 스테이트팜이 주최하는 대회이니만큼 메이져 대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라성 같은 선수가 총출동하고 특히 LPGA 에서 활약하는 거의 모든 한국 선수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박희정, 한희원, 장정, 펄신, 이정연, 이선희, 고아라, 송아리 등등) 들이 총 출동하는 대회이고 제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펼쳐지는 스포츠 빅이벤트이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아들녀석과 단 둘이 다녀왔습니다.


The Rail 골프 클럽까지는 제가 사는 곳에서 약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리니 여기서는 아주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거리입니다.


TV 에서나 볼 수 있는 유명한 선수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라는 것 때문에 약간 흥분하긴 했으나 '시합 중 이기 때문에 그냥 먼발치서 바라보고만 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입장료 (저 20불, 아들 무료), 주차비 (5불)을 내고 입구에 다달았습니다.  No camera 라는 문구를 보았음에도 워낙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서 적당히 아들 녀석 포켓에 넣고 입구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두리번 두리번 기웃거리면서 1번 홀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가 1번 홀이 끝나는 그린으로 가까이 가는 순간 낯익은 얼굴 하나가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를 하는 그 여자는 바로 '박세리' 였습니다.


허걱.  제가 본 박세리 선수의 첫 인상은 TV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예쁜 여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말 하면 "오버하지 마!"하는 분들이 있는데 실물 박세리는 화장 한 점 안 해도 무척 매력적인 그런 여자였습니다.  점점 가까이 오길래 제가 구두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요 인사는 다른 골퍼들에게도 동일하게 던져져 본의 아니게 그들을 비교하는데 쓰게 되었습니다.(즉석에서 떠오른 생각치고는 지금 생각해도 기발하다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박세리, 박지은, 김미현 (이상 티오프 순서, 성적이 좋을 수록 뒤에 티오프 합니다. 김미현이 가장 마지막 조로 티오프를 했습니다) 에게 제가 던진 인사와 그녀들 의 반응에서 느낀 저의 그녀들에 대한 첫 인상입니다. 참고로 제가 인사를 건넨 거리는 불과 1m도 안 떨어진 제 바로 앞에서였습니다. 실험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하여 모두 1번 홀을 마치고 나오는 그린 앞에서 했습니다.


저: 박세리 선수 잘하세요.


박세리: 감사합니다.(빙긋 웃는 미소로 얼른 답하고 지나갑니다. 저와 눈을 별로 마주치지 않습니다. 적당히 인사한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을만큼 친절한 톤으로 인사를 받지만 얼른 휙 지나갑니다. 역시 프로경력이 오래된 선수답게 노련하게 대처합니다)


저: 박지은 선수 잘하세요. 


박지은: 예, 감사합니다. (박지은 선수가 미인이란 것 정평이 나있지만 인사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그녀만의 백만불짜리 미소를 지으며 고개까지 꾸벅하는 그녀의 모습은 누구라도 단번에 팬을 만들어 버릴만큼 강력했습니다. 미국에서 오래 지낸 탓인지 인사가 매우 자연스럽고 나만을 향한 인사라고 느낄 수 있을만큼 굉장히 매력적인 매너를 지녔습니다. 물론 옷도 장난이 아니구요.)


저: 김미현 선수 잘하세요.


김미현: 아.. 녜... (약간 놀란듯이 어색해 하며 바라봅니다. 하지만 일대일로 인사를 주고 받는 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얼굴을 빤히 쳐다봐주며 곧 이어 귀여운 미소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아직은 프로 2년차(당시)의 티가 납니다. 사실은 훨씬 더 다정다감한 사람입니다.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다른 글로 소개하겠습니다). 

 

한국 선수 이외에도 많은 LPGA 선수들에게 개인적으로 간단히 인사를 나눌 기회들이 있었습니다. LPGA 선수들은 모두 화사한 미인이거나 예쁘게 나이가 먹은 아줌마들이었고 팬들의 인사를 절대로 무시하지 않는 세련된 매너들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이 대회를 결국 우승한 프랑스의 신예 빠뜨리샤 뮤니에-르북의 경우 그곳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고 (성적 때문이 아니라 어떤 순간의 싸인 요구에 대해서도 친절히 응해줌. 심지어 티업하는 순간에도 싸인을 해주고 들어가는 놀라운 광경을 연출. 보통 선수들이 시합 시작할 때는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요구에 응하지 않습니다) 제가 나중에 미디어 룸 앞에서 만나서 내일 잘하세요 라고 인사했을 때도 화사한 미소와 인사로 답해주는 매력적인 선수였습니다. 이 친구 한희원 선수에게 당시 LPGA 신인왕(Rookie of the year)를 뺏겼었지요.


제가 당시에 막 좋아하기 시작한 대만 출신 Candie Kung 의 경우는 TV 가 더 나은 케이스였습니다. 실물은 영 별로였습니다. ^^;;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는 약간 덜 친절한 편이였구요.  아마도 약간 까칠했던게 그녀가 예쁘게 보이지 않은 원인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시아 선수중 최장타로 유명한 후쿠시마 아끼꼬는 제가 간단한 일본어로 인사를 건네자 놀란 듯 쳐다보다가 (일본 사람들은 잘 말을 걸지 않나 봅니다. 계속 아끼꼬를 볼 기회가 많았는데 (김미현과 한조) 어떤 일본 사람도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땡큐로 응수를 하더군요. 나중에 선두를 달리다 볼이 워터 해저드에 한번 빠지고 마지막 홀에서 벙커 샷이 또 다른 벙커에 들어가고 퍼팅시 갤러리의 비퍼가 울리는 바람에 신경이 예민해졌는지 싸인을 안해주고 퇴장한 제가 본 유일한 두 선수 중 하나입니다.


처음에는 박세리 선수를 따라서 3홀 정도를 돌았습니다 (이때 박지은과 김미현은 티오프를 하지 않은 상태). 생각보다 선수들은 훨씬 더 릴랙스 했고 박세리 선수의 경우는 언니인지 여동생이 계속 따라다니더군요. 박세리 선수와 가까이 있어 그들의 대화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감기 때문에 항히스타민제를 먹어 아주 죽겠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으며 내심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 박세리 선수 >


그 후에는 박지은 선수를 따라 두 홀 정도를 돌다가 김미현 선수를 따라 다니기로 작정을 하고 1번홀부터 9번홀까지 쭈욱 따라다녔습니다.


김미현 선수와는 몇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그 중 인상적인 것 하나는 독립해서 다른 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김미현 선수를 따라다니다가 취재를 나온 미국 신문 기자에게 취재를 당해서 미국 신문에 기사로 저와 아들의 이름이 실리는 재밌는 일도 있었습니다.



< 슈퍼 땅콩 김미현 선수 >



한가지 독특했던 것이 거의 모든 골퍼들이 스폰서의 이름 (예를 들어 Taylor Made 나 Callaway, Mizuno 등)이 새겨진 골프 가방을 캐디들이 들고 다니는데 반해 박지은 선수만 유일하게 자기 이름이 생겨진 프랑스 루이뷔통사의 화사한 하늘색 골프백을 사용하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때는 박지은 선수가 Nike 의 스폰서를 받기 전이었습니다).  또 박지은 선수는 예전에 "박세리 그립"으로 유명한 퍼팅시에 왼손과 오른손을 반대로 잡는 그립을 쓰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박세리 선수는 이제 그 그립을 쓰지 않더군요).  나중에 싸인을 받을 때 미국 팬들이랑 얘기를 하는 것을 들어보니 박지은 선수의 영어는 완벽하더군요.  역시 중학교에 유학온 덕분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티셔츠의 등쪽에 싸인을 받고 원중이는 배낭에 박지은 선수의 싸인을 받았습니다.  의외로 선수들의 싸인 받기는 쉬워서 18번 홀이 끝나고 스코어 카드에 싸인을 하고 나오는 길목에 서있으면 자기들이 펜까지 들고나와서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싸인을 다 해주고 물어보는 질문들에 다 답을 해줍니다.  한 미국아이가 "오늘 얼마나 쳤어요?" 라고 물어보자 "얘, 저기 뒤에 스코어 보드를 보렴" 해서 저희를 웃겼습니다.  행간의 뜻이야 '팬이라면서 선수의 스코어도 모르니?' 라는 뜻이었을 것이며 박지은 선수는 우회적으로 이를 재미있게 비꼰 것이지요.  재치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싸인을 마치고 혼자 걸어 가는 박지은 선수에게 가서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쾌히 응해주면서 예쁜 포즈까지 취해주었습니다.  미인이라고 이미 널리 소문이 나있는 만큼 상당한 미모였으며 그에 못지 않게 화장도 제대로 하고 나왔더군요.  멋진 목걸이에 파란색 상의도 멋졌습니다. 숏 아이언을 기가 막히게 잘 쓰며 어프로치 샷에서 그린에서 백스핀을 먹어서 구르는 그녀의 볼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 때 그녀는 캘러웨이의 제품을 쓰고 있었으며 드라이버는 Hawkeye 더군요.



< 개인적인 메시지도 남겨준 박지은 선수 >



박세리 선수는 위에 밝혔다시피 화장끼 하나 없는 까무잡잡한 얼굴인데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동안 TV 카메라가 박세리 선수를 많이 홀대한 것 같습니다.  제 미팅에 파트너로 나와 있다면 '야 오늘은 괜찮은데!' 라고 느낄 정도는 됩니다.  완벽한 미인은 아니지만 매력있는 선수였습니다.  플레이가 시원 시원하고 대담하며 세련된 영어로 캐디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일품이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Taylor Made 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삼성의 로고를 모자에서 볼 수 없는게 특이한 점이라면 특이한 점 (하도 그 모자 디자인이 익어서 말입니다)이고 항히스타민제 때문인지 눈에 계속 식염수를 넣어가며 플레이 하더군요.


김미현 선수는 워낙 일화가 많아서 그 중 하나는 독립된 글로 말씀을 드릴 거구요.


오전 10시 반에 도착해서 클럽을 나설 때가 오후 6시 반이었으니 점심을 먹었던 30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7시간 반을 걸어 다녔네요.  물론 선수들은 중간에 식사 시간 없이 계속 18홀을 돕니다.  그래서 쵸코렛 바 (스니커즈 이런거요) 등을 가지고 다니면서 캐디랑 계속 같이 먹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먹는 것 못 봤습니다).  음료수의 경우는 매 홀 티오프 하는 곳에 얼음이 담겨진 통에 게토레이, 미네랄 워터, 각종 소다들이 담겨 있어 마음대로 먹을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 티오프를 할 때 모여있는 세선수(한 조가 세명)들 끼리는 화기애애합니다.  일년 내내 투어를 함께 돌아서일까요?  대화 내용도 "너 이거 먹어봤니?" "아 그거 마트에서 팔더라?" 뭐 이런 수준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제일 마지막 조는 수위 경쟁을 다투는 조인만큼 개개인은 명랑해도 서로 대화는 없더군요. 아님 이 날 수위조의 구성원 모두가 외국인이라서 (김미현(한국), 아끼꼬 후쿠시마(일본), 빠뜨리샤 뮤니에-르북(프랑스))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한희원 선수 ^^ >



이 대회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라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선수 아니카 소렌스탐과 호주의 캐리 웹이 불참한 것입니다. 이들 두 선수는 항상 이 대회에 참여하곤 했었는데 그해에는 불참했네요. 참고로 당시 스테이트 팜은 LPGA 의 최대 스폰서였던지라 메이져 대회가 아님에도 상금 액수가 꽤 높은 편이라고 하더군요.


미국 생활에서 아마도 처음으로 참여한 스포츠 빅 이벤트에서 저와 아들 녀석은 잊지 못할 추억을 정말 많이 남기고 왔습니다. 격려의 말을 건넸을 때 반갑게 응대해준 모든 LPGA 선수들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 한가득이며 그 이후로 LPGA 팬이 되어서 몇번 더 행사에 참가했었고 몇몇 선수와는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서 얘깃거리를 많이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미국의 모든 프로스포츠 중에 관객의 접근성이 가장 좋은 스포츠이기에 (남자 PGA 만 해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선수들과 대화 나누기가 힘이 듭니다. LPGA 는 가능합니다 ^^) 참여하고 관람하는 스포츠로는 LPGA 만한게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미현 선수와의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담긴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

 



P.S. 1 : 아래는 당시 일리노이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신문에 실렸던 골프대회 기사 중 저희 부자에 관한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링크가 적혀 있지만 아쉽게도 기사가 삭제되었는지 링크는 작동하지 않네요.


Kim has Korean fans in her corner (http://www.sj-r.com/sections/sports/stories/S09012002,l.asp
든든한 한국인 팬들을 등에 업은 김미현 선수


By DAVE KANE 
STAFF WRITER


...(중략)


Pride probably was replaced by excitement for Michael Kim, the son of 샴페인 of Urbana. They came over to watch Mi Hyun Kim (no relation) play, and they got a bonus.


Urbana 시에서 온 샴페인의 아들인 마이클 김군에게 자랑스러움은 이내 흥분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김미현 선수의 경기를 보러왔고 (친척관계는 아님, 역자주: 김미현 선수랑 같은 김씨라고 해서 친척이 아니라는 부연 설명. 미국에서는 같은 성이 드문 탓 ^^) 그리고 그들은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Mi Hyun's caddie (Chris Birdseye) gave us one of her golf gloves," the elder Kim said. "We will try to get it autographed when she's done.


"김미현 선수의 캐디 (크리스 버드아이) 가 저희에게 그녀의 골프 장갑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 중 제일 연장자인 김씨의 말이다.  그녀가 경기를 끝마치면 싸인을 받을 계획입니다.


"I don't know why there are so many good golfers from Korea because golf is an expensive sport in Korea."


"사실 한국에서 왜 그렇게 좋은 골프선수들이 많이 나오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골프는 정말 한국에서는 비싼 스포츠거든요"


Mike Ohr and his twin brother, John Ohr, are Korean-Americans from the Chicago area. They are golf fans, or as John's wife says, "fanatics." All three will follow Kim at The Rail on Saturday.


...(이하 생략)


P.S. 2 : 눈썰미가 있으신 분들은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위의 저의 아들과 LPGA 선수들이 찍은 사진에는 모두 싸인이 되어 있습니다.  하루는 만나서 사진을 찍고 또 다른 날에는 사진을 인화해 가서 선수들에게 다시 그 위에 싸인을 받은 탓입니다.  아들 녀석 옷이 다른 것은 2년에 걸쳐 찍은 거라서 그렇고 사진 품질이 나쁜 이유는 저질 복합기 스캐너 탓입니다. ^^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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