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저의 큰 아들은 미국에서 자동차 보험회사로 가장 큰 State Farm Insurance 회사에서 주최하는 LPGA State Farm Classic golf 대회가 열리는 일리노이주의 주도 스프링필드 근교 Sherman 시에 있는 The Rail golf club 에 갔었습니다.
당시 LPGA 최대 스폰서인 스테이트팜이 주최하는 대회이니만큼 메이져 대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라성 같은 선수가 총출동하고 특히 LPGA 에서 활약하는 거의 모든 한국 선수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박희정, 한희원, 장정, 펄신, 이정연, 이선희, 고아라, 송아리 등등) 들이 총 출동하는 대회이고 제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펼쳐지는 스포츠 빅이벤트이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아들녀석과 단 둘이 다녀왔습니다.
The Rail 골프 클럽까지는 제가 사는 곳에서 약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리니 여기서는 아주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거리입니다.
TV 에서나 볼 수 있는 유명한 선수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라는 것 때문에 약간 흥분하긴 했으나 '시합 중 이기 때문에 그냥 먼발치서 바라보고만 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입장료 (저 20불, 아들 무료), 주차비 (5불)을 내고 입구에 다달았습니다. No camera 라는 문구를 보았음에도 워낙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서 적당히 아들 녀석 포켓에 넣고 입구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두리번 두리번 기웃거리면서 1번 홀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가 1번 홀이 끝나는 그린으로 가까이 가는 순간 낯익은 얼굴 하나가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를 하는 그 여자는 바로 '박세리' 였습니다.
허걱. 제가 본 박세리 선수의 첫 인상은 TV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예쁜 여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말 하면 "오버하지 마!"하는 분들이 있는데 실물 박세리는 화장 한 점 안 해도 무척 매력적인 그런 여자였습니다. 점점 가까이 오길래 제가 구두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요 인사는 다른 골퍼들에게도 동일하게 던져져 본의 아니게 그들을 비교하는데 쓰게 되었습니다.(즉석에서 떠오른 생각치고는 지금 생각해도 기발하다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박세리, 박지은, 김미현 (이상 티오프 순서, 성적이 좋을 수록 뒤에 티오프 합니다. 김미현이 가장 마지막 조로 티오프를 했습니다) 에게 제가 던진 인사와 그녀들 의 반응에서 느낀 저의 그녀들에 대한 첫 인상입니다. 참고로 제가 인사를 건넨 거리는 불과 1m도 안 떨어진 제 바로 앞에서였습니다. 실험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하여 모두 1번 홀을 마치고 나오는 그린 앞에서 했습니다.
저: 박세리 선수 잘하세요.
박세리: 감사합니다.(빙긋 웃는 미소로 얼른 답하고 지나갑니다. 저와 눈을 별로 마주치지 않습니다. 적당히 인사한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을만큼 친절한 톤으로 인사를 받지만 얼른 휙 지나갑니다. 역시 프로경력이 오래된 선수답게 노련하게 대처합니다)
저: 박지은 선수 잘하세요.
저: 김미현 선수 잘하세요.
김미현: 아.. 녜... (약간 놀란듯이 어색해 하며 바라봅니다. 하지만 일대일로 인사를 주고 받는 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얼굴을 빤히 쳐다봐주며 곧 이어 귀여운 미소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아직은 프로 2년차(당시)의 티가 납니다. 사실은 훨씬 더 다정다감한 사람입니다.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다른 글로 소개하겠습니다).
한국 선수 이외에도 많은 LPGA 선수들에게 개인적으로 간단히 인사를 나눌 기회들이 있었습니다. LPGA 선수들은 모두 화사한 미인이거나 예쁘게 나이가 먹은 아줌마들이었고 팬들의 인사를 절대로 무시하지 않는 세련된 매너들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이 대회를 결국 우승한 프랑스의 신예 빠뜨리샤 뮤니에-르북의 경우 그곳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고 (성적 때문이 아니라 어떤 순간의 싸인 요구에 대해서도 친절히 응해줌. 심지어 티업하는 순간에도 싸인을 해주고 들어가는 놀라운 광경을 연출. 보통 선수들이 시합 시작할 때는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요구에 응하지 않습니다) 제가 나중에 미디어 룸 앞에서 만나서 내일 잘하세요 라고 인사했을 때도 화사한 미소와 인사로 답해주는 매력적인 선수였습니다. 이 친구 한희원 선수에게 당시 LPGA 신인왕(Rookie of the year)를 뺏겼었지요.
제가 당시에 막 좋아하기 시작한 대만 출신 Candie Kung 의 경우는 TV 가 더 나은 케이스였습니다. 실물은 영 별로였습니다. ^^;;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는 약간 덜 친절한 편이였구요. 아마도 약간 까칠했던게 그녀가 예쁘게 보이지 않은 원인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시아 선수중 최장타로 유명한 후쿠시마 아끼꼬는 제가 간단한 일본어로 인사를 건네자 놀란 듯 쳐다보다가 (일본 사람들은 잘 말을 걸지 않나 봅니다. 계속 아끼꼬를 볼 기회가 많았는데 (김미현과 한조) 어떤 일본 사람도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땡큐로 응수를 하더군요. 나중에 선두를 달리다 볼이 워터 해저드에 한번 빠지고 마지막 홀에서 벙커 샷이 또 다른 벙커에 들어가고 퍼팅시 갤러리의 비퍼가 울리는 바람에 신경이 예민해졌는지 싸인을 안해주고 퇴장한 제가 본 유일한 두 선수 중 하나입니다.
처음에는 박세리 선수를 따라서 3홀 정도를 돌았습니다 (이때 박지은과 김미현은 티오프를 하지 않은 상태). 생각보다 선수들은 훨씬 더 릴랙스 했고 박세리 선수의 경우는 언니인지 여동생이 계속 따라다니더군요. 박세리 선수와 가까이 있어 그들의 대화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감기 때문에 항히스타민제를 먹어 아주 죽겠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으며 내심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 박세리 선수 >
그 후에는 박지은 선수를 따라 두 홀 정도를 돌다가 김미현 선수를 따라 다니기로 작정을 하고 1번홀부터 9번홀까지 쭈욱 따라다녔습니다.
김미현 선수와는 몇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그 중 인상적인 것 하나는 독립해서 다른 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김미현 선수를 따라다니다가 취재를 나온 미국 신문 기자에게 취재를 당해서 미국 신문에 기사로 저와 아들의 이름이 실리는 재밌는 일도 있었습니다.
< 슈퍼 땅콩 김미현 선수 >
한가지 독특했던 것이 거의 모든 골퍼들이 스폰서의 이름 (예를 들어 Taylor Made 나 Callaway, Mizuno 등)이 새겨진 골프 가방을 캐디들이 들고 다니는데 반해 박지은 선수만 유일하게 자기 이름이 생겨진 프랑스 루이뷔통사의 화사한 하늘색 골프백을 사용하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때는 박지은 선수가 Nike 의 스폰서를 받기 전이었습니다). 또 박지은 선수는 예전에 "박세리 그립"으로 유명한 퍼팅시에 왼손과 오른손을 반대로 잡는 그립을 쓰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박세리 선수는 이제 그 그립을 쓰지 않더군요). 나중에 싸인을 받을 때 미국 팬들이랑 얘기를 하는 것을 들어보니 박지은 선수의 영어는 완벽하더군요. 역시 중학교에 유학온 덕분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티셔츠의 등쪽에 싸인을 받고 원중이는 배낭에 박지은 선수의 싸인을 받았습니다. 의외로 선수들의 싸인 받기는 쉬워서 18번 홀이 끝나고 스코어 카드에 싸인을 하고 나오는 길목에 서있으면 자기들이 펜까지 들고나와서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싸인을 다 해주고 물어보는 질문들에 다 답을 해줍니다. 한 미국아이가 "오늘 얼마나 쳤어요?" 라고 물어보자 "얘, 저기 뒤에 스코어 보드를 보렴" 해서 저희를 웃겼습니다. 행간의 뜻이야 '팬이라면서 선수의 스코어도 모르니?' 라는 뜻이었을 것이며 박지은 선수는 우회적으로 이를 재미있게 비꼰 것이지요. 재치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싸인을 마치고 혼자 걸어 가는 박지은 선수에게 가서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쾌히 응해주면서 예쁜 포즈까지 취해주었습니다. 미인이라고 이미 널리 소문이 나있는 만큼 상당한 미모였으며 그에 못지 않게 화장도 제대로 하고 나왔더군요. 멋진 목걸이에 파란색 상의도 멋졌습니다. 숏 아이언을 기가 막히게 잘 쓰며 어프로치 샷에서 그린에서 백스핀을 먹어서 구르는 그녀의 볼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 때 그녀는 캘러웨이의 제품을 쓰고 있었으며 드라이버는 Hawkeye 더군요.
< 개인적인 메시지도 남겨준 박지은 선수 >
박세리 선수는 위에 밝혔다시피 화장끼 하나 없는 까무잡잡한 얼굴인데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동안 TV 카메라가 박세리 선수를 많이 홀대한 것 같습니다. 제 미팅에 파트너로 나와 있다면 '야 오늘은 괜찮은데!' 라고 느낄 정도는 됩니다. 완벽한 미인은 아니지만 매력있는 선수였습니다. 플레이가 시원 시원하고 대담하며 세련된 영어로 캐디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일품이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Taylor Made 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삼성의 로고를 모자에서 볼 수 없는게 특이한 점이라면 특이한 점 (하도 그 모자 디자인이 익어서 말입니다)이고 항히스타민제 때문인지 눈에 계속 식염수를 넣어가며 플레이 하더군요.
김미현 선수는 워낙 일화가 많아서 그 중 하나는 독립된 글로 말씀을 드릴 거구요.
오전 10시 반에 도착해서 클럽을 나설 때가 오후 6시 반이었으니 점심을 먹었던 30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7시간 반을 걸어 다녔네요. 물론 선수들은 중간에 식사 시간 없이 계속 18홀을 돕니다. 그래서 쵸코렛 바 (스니커즈 이런거요) 등을 가지고 다니면서 캐디랑 계속 같이 먹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먹는 것 못 봤습니다). 음료수의 경우는 매 홀 티오프 하는 곳에 얼음이 담겨진 통에 게토레이, 미네랄 워터, 각종 소다들이 담겨 있어 마음대로 먹을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 티오프를 할 때 모여있는 세선수(한 조가 세명)들 끼리는 화기애애합니다. 일년 내내 투어를 함께 돌아서일까요? 대화 내용도 "너 이거 먹어봤니?" "아 그거 마트에서 팔더라?" 뭐 이런 수준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제일 마지막 조는 수위 경쟁을 다투는 조인만큼 개개인은 명랑해도 서로 대화는 없더군요. 아님 이 날 수위조의 구성원 모두가 외국인이라서 (김미현(한국), 아끼꼬 후쿠시마(일본), 빠뜨리샤 뮤니에-르북(프랑스))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대회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라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선수 아니카 소렌스탐과 호주의 캐리 웹이 불참한 것입니다. 이들 두 선수는 항상 이 대회에 참여하곤 했었는데 그해에는 불참했네요. 참고로 당시 스테이트 팜은 LPGA 의 최대 스폰서였던지라 메이져 대회가 아님에도 상금 액수가 꽤 높은 편이라고 하더군요.
미국 생활에서 아마도 처음으로 참여한 스포츠 빅 이벤트에서 저와 아들 녀석은 잊지 못할 추억을 정말 많이 남기고 왔습니다. 격려의 말을 건넸을 때 반갑게 응대해준 모든 LPGA 선수들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 한가득이며 그 이후로 LPGA 팬이 되어서 몇번 더 행사에 참가했었고 몇몇 선수와는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서 얘깃거리를 많이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미국의 모든 프로스포츠 중에 관객의 접근성이 가장 좋은 스포츠이기에 (남자 PGA 만 해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선수들과 대화 나누기가 힘이 듭니다. LPGA 는 가능합니다 ^^) 참여하고 관람하는 스포츠로는 LPGA 만한게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미현 선수와의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담긴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
P.S. 1 : 아래는 당시 일리노이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신문에 실렸던 골프대회 기사 중 저희 부자에 관한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링크가 적혀 있지만 아쉽게도 기사가 삭제되었는지 링크는 작동하지 않네요.
Kim has Korean fans in her corner (http://www.sj-r.com/sections/
든든한 한국인 팬들을 등에 업은 김미현 선수
By DAVE KANE
STAFF WRITER
...(중략)
Pride probably was replaced by excitement for Michael Kim, the son of 샴페인 of Urbana. They came over to watch Mi Hyun Kim (no relation) play, and they got a bonus.
Urbana 시에서 온 샴페인의 아들인 마이클 김군에게 자랑스러움은 이내 흥분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김미현 선수의 경기를 보러왔고 (친척관계는 아님, 역자주: 김미현 선수랑 같은 김씨라고 해서 친척이 아니라는 부연 설명. 미국에서는 같은 성이 드문 탓 ^^) 그리고 그들은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Mi Hyun's caddie (Chris Birdseye) gave us one of her golf gloves," the elder Kim said. "We will try to get it autographed when she's done.
"김미현 선수의 캐디 (크리스 버드아이) 가 저희에게 그녀의 골프 장갑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 중 제일 연장자인 김씨의 말이다. 그녀가 경기를 끝마치면 싸인을 받을 계획입니다.
"I don't know why there are so many good golfers from Korea because golf is an expensive sport in Korea."
"사실 한국에서 왜 그렇게 좋은 골프선수들이 많이 나오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골프는 정말 한국에서는 비싼 스포츠거든요"
Mike Ohr and his twin brother, John Ohr, are Korean-Americans from the Chicago area. They are golf fans, or as John's wife says, "fanatics." All three will follow Kim at The Rail on Saturday.
...(이하 생략)
P.S. 2 : 눈썰미가 있으신 분들은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위의 저의 아들과 LPGA 선수들이 찍은 사진에는 모두 싸인이 되어 있습니다. 하루는 만나서 사진을 찍고 또 다른 날에는 사진을 인화해 가서 선수들에게 다시 그 위에 싸인을 받은 탓입니다. 아들 녀석 옷이 다른 것은 2년에 걸쳐 찍은 거라서 그렇고 사진 품질이 나쁜 이유는 저질 복합기 스캐너 탓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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