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글을 전개해 나가기에 앞서 저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류나 미디어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으로 일개 개인이 느끼는 바를 주관적으로 써나가는 글이니 아무쪼록 한 재미교포의 의견정도로 제 글을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요즘은 글로벌화다 뭐다 해서 이제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서로의 생활에서 예전처럼 서로를 매우 낯설게 받아들이는 부분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아웃백과 베니건스 등의 패밀리 레스토랑이 있고 아베크롬비나 홀리스터 같은 옷들을 서로 즐겨 입으며 이제는 한국에서도 할로윈이 뭔지를 잘 알고 있고 심지어 미국처럼 아이를 출산하는 엄마를 위해 베이비 샤워를 하는 분들도 계신다니 문화적 이질감은 점점 줄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살면서 근본적으로 외국인이기에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요, 한류와 관련되어 놀라움을 느껴본 것은 멕시코인들을 비롯한 남미분들이 한국의 정통사극을 열렬하게 시청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습니다. '대장금' 처럼 중동이나 이집트까지 뻗어나간 온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 타당한 주제의 사극이라면 이해가 갈만 하지만 '불멸의 영웅 이순신', '왕건' 혹은 '대조영'과 같은 한국 역사나 주변 배경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만 더 흥미를 느낄 것 같은 정통 사극에 남미분들이 열광한다는 사실은 저에게는 정말이지 문화 충격에 가까웠습니다.

미국에 살고 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히스패닉이라고 불리는 남미인들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일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2010년 미국 인구 센서스 조사를 보면 미국 전체인구의 16.3% 가 히스패닉인데요, 비율로 따져도 그리 적지 않은데 이를 숫자로 옮겨 놓으면 무려 5050만명이나 됩니다. 제가 알기로 대한민국의 인구가 오천만이 약간 넘으니 미국에 있는 히스패닉의 숫자가 대한민국 전체 인구와 맞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미국 남서부쪽으로 가면 이 비율은 확연히 증가해서 2010년 미국 인구 센서스 결과를 보면 뉴멕시코주의 44.7%, 캘리포니아주는 35.9%, 텍사스 주도 35.6% 입니다. 거기다가 상당한 수의 히스패닉들이 불법체류자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 인구는 훨씬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미국에서 캘리포니아주가 경제적으로 차지하는 위치가 대단하며 (미국 전체 13% 경제규모) 캘리포니아주 경제력만 따로 떼어도 전세계 랭킹 6위 혹은 7위를 달리는 막강한 주인데 이의 약 36% 혹은 그 이상이 히스패닉이라는 얘기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히스패닉분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한국식당들입니다. 제가 있는 곳이나 인근의 대도시들 한국 식당 주방은 거의 다라고 할 수 있을만큼 히스패닉분들이 주방에서 한국 요리 및 각종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주인은 기본적인 간을 맞추고 재료 구입을 한다면 주방에서는 히스패닉 분들이 한국 요리를 하는 거죠. 그리고 각종 빌딩 청소, 예를 들어 제가 근무하는 회사나 다녔던 학교에서도 일과후 청소는 모두 히스패닉 분들이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서적으로 남미분들이 정말 한국 분들하고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미국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백인 분들에게 가끔씩 느껴지는 쓸데없는 오만함이 없이 정이 많고 놀기 좋아하며 겸손하면서 음주가무를 좋아하고 순식간에 손뼉을 치면서 친구가 될 수 있는 점이 딱 한국 분들 같습니다.

미국의 대도시의 경우 한국 방송이 공중파 방송으로 나오는 탓에 많은 히스패닉 분들이 이를 통해 한국의 사극을 본다고 하는데요 (저희도 대도시에 사는 한국인들은 가끔 남미 방송을 통해 축구중계를 보기도 합니다 ^^) 한번은 멕시코 분중에 왕건을 좋아하는 분에게 직접 질문을 드려본 적도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나 의상에 친숙하지 않아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텐데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말을 타고 멋진 갑옷을 입고 벌이는 호쾌한 전쟁씬에 일단 눈을 뺏기고 이제는 자국의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충성, 의리 그리고 희생정신등이 그려진 스토리가 재미있고 배신, 음모로 이어지는 내용들이 너무 흥미진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코드가 맞는다는 것이지요. 이러니 한국 문화가 어필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이지요. 많은 한류 관련 방송에서 지적하다시피 남미의 한류는 댄스게임 기계인 펌프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동안 한국에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남미의 한류는 자생적으로 발전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는 평가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최근 여러 영상자료등을 통해서 보면 페루, 칠레, 볼리비아, 브라질 등이 심각한(^^) 한류 영향권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마치 뒷동산을 돌아가보니 인삼들이 혼자서 비옥히 자라서 거대한 인삼밭을 이루고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남미의 한류는 그런 점에서 1970년대 후반, 80년대의 한국의 팝 문화 열풍과 많이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다할 미국 가수들의 공연없이도 한국에서 팝뮤직의 열풍은 정말 대단했지요. 길거리 리어카에서는 미국 빌보드 차트의 1위부터 10위까지 팝송을 담은 불법 카셋트 테이프가 널리 팔리고 있었으며 미국이나 영국등의 본토에서는 엄청난 지명도를 가지지 않았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전국민이 좋아하는 슈퍼스타가 된 스모키 (Smokie) 와 같은 밴드가 탄생하기도 했지요. 한마디로 본토에서는 신경도 안 쓰는 시장에서 우리끼리 발전시켜 나가는 팝문화가 있었던 거지요. 그 틈을 타고 미국/영국등에서는 다소 지명도가 떨어지지만 단 한곡의 힛트곡으로 컨서트 형태도 아닌 방송국 출연 형태로 내한을 하여 슈퍼스타가 된 놀란스(Nolans) 라든지 둘리스(Dooleys) 같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남미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엄청난 힘으로 한류가 기세를 스스로 확장해 나가리라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한류 가수들의 방문과 공연으로 이어진다면 그 위세는 더욱 대단하리라 생각을 합니다. 69년의 클리프 리처드(Cliff Richard) 와 80년의 레이프 가렛(Leif Garrett) 내한 공연과 같은 어쩌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우연에 가까운 공연에서도 팝뮤직의 광풍은 대한민국을 휩쓸었고 89년과 92년에는 특A급 밴드라고 할 수 있는 듀란듀란(Duran Duran) 과 뉴키즈온더블락(New Kids On The Block)의 내한공연이 이어지면서 거의 사회적인 신드롬이라고할만한 파급효과를 누렸었습니다. 한류 가수들 중에 A 급들이 남미공연을 이어서 한다면 이에 못지 않은 바람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획사의 의지와 희생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아이돌들은 서구의 아티스트들과는 차별화 되는 그들만의 행보가 있습니다. 바로 행사를 뛰는 거죠. 일급 아이돌 그룹의 경우 행사 하나에서 2-3곡을 부르는데 3천만원이 넘는 행사비를 받는 다는 얘기도 들어보았고 하루에 3개를 뛴다면 단 하루에 거의 1억에 가까운 매출을 올릴 수 있는데 가는데만 30시간 이상, 다녀오는데 최소한 일주일의 시간 그리고 아이돌들에 따라붙는 댄서들과 코디네이터들에 소요되는 경비를 감안한다면 한류 아이돌들의 남미 공연은 전혀 남는게 없는 장사가 됩니다. 더구나 아직 남미에서 정식으로 한국 음반이 유통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공연과 일부 기념품 (흔히 '굿즈' 라고 부르는데 이는 Goods 를 일본에서 받아들여 사용하는 표현으로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수입이 전부인데 이를 기획사가 수용하기에는 너무 희생이 큽니다. 더구나 한국에서 열리는 단독컨서트의 수준으로 하기 위해서는 운반해야할 무대장비나 음향기기들이 너무 많고 결국에는 이로 인해 한국보다 한단계 낮은 품질의 컨서트를 해야할텐데 이는 너무나 위험부담이 큰 비지니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얼마전에 큐브 엔터테인먼트의 브랜드 컨서트인 '유나이티드 큐브'가 브라질에서 열린 것은 기획사의 상당한 자기 출혈을 감수해야 했음이 예상되는 것이었고 반복해서 열리기에는 여러모로 여건이 어렵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정식 음반이 유통되고 대규모의 컨서트를 열 수 있는 현지 기획사와 연계가 되어 수익 모델이 확고히 구축되지 않는한 당분간은 남미에서의 한류는 자생적 확장에 기반을 둔 형태가 되리라고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한류의 불을 꺼트리고 싶지 않은 자본이 넉넉한 대형 기획사의 자선에 가까운 공연 형태가 현재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정적으로야 이렇게 불붙은 남미에 우리 가수들이 훨훨 날아가서 대형사고를 치고 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가수들이나 기획사 모두에게 아직은 무리한 부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목에도 '거저먹기'라고 표현한 것처럼 남미의 한류는 특별히 씨를 뿌리지 않고 가꾸지 않아도 앞으로 쭉쭉 뻗어나리라고 봅니다. 앞서 장황하게 설명한 것처럼 우리와 코드가 맞는 감성과 정서를 가진 이들에게는 노래뿐만 아니라 드라마 심지어는 영화까지 제법 어필할거라는게 제 개인적인 생각이니까요. 제가 만나서 겪어본 미국인들처럼 좋은 것이 있어도 혼자 조용히 알고 지내는게 아니라 마치 한국사람들처럼 조금이라도 좋은 것이 있으면 기어이 주변사람들에게 알려주면서 나누는 화끈한 성격을 가진 남미인들이라면 한류의 전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미를 지배하는 육덕진 섹시함 못지 않은 한국 걸그룹 특유의 보호해 주고 싶은 갸날프고 정제된 섹시함도 전 크게 어필을 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남미는 크기나 인구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설사 여러 이유로 인해서 직접 남미에서 수익을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미국의 남미인들에게 퍼지는 한류만으로도 그 영향은 어마어마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국에서 20% 가 넘는 남미인들과 5% 정도 되는 아시안 계통만 휩쓸어도 전 미국의 4분의 1을 한류의 영향권안에 두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빠른 시일안에 '소녀시대 in Rio' 혹은 '빅뱅 in Buenos Aires' 와 같은 공연 DVD 를 보게 될 날을 소망해 봅니다. 남미 혹은 남미인들에게 퍼진 한류는 저절로 익을테니 거두기만 하면 됩니다. ^^;;

언제나 그렇듯이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 남미는 한국과 같은 스타일의 보이그룹을 만들어 미국에 성공시킨 전력이 있습니다. 연식이 있는 분이라면 기억하실 메누도(Menudo) 라는 그룹인데요, 푸에르토리코에서 시작해서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거쳐 미국 본토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한 보이그룹입니다. 메누도를 모르시는 분들이라도 이 그룹 출신의 슈퍼스타 릭키 마틴(Ricky Martin)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2PM 과 같은 스타일리쉬한 보이그룹이나 선이 굵고 강한 동방신기/샤이니 혹은 슈퍼주니어가 인기를 얻는 토양이 마련이 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밖의 인피니트나 비스트 혹은 다른 보이그룹들 모두 남미에서 인기를 고루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걸그룹의 경우 남미의 구미에 잘 맞는 그룹들이 차별화된 성공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포미닛(4minute)이 선두에 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퇴폐적이라고까지 묘사되는 현아양의 동양적 섹시함과 그루브가 넘치는 음악이 남미의 리듬에 잘 맞지 않을까 전망해 봅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그닥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햇던 라니아 같은 걸그룹도 남미에 특화되어 성공될 가능성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초신성이나 대국남아 같은 그룹들이 일본에 특화된 성공을 거두었듯이 말입니다.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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