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계시는 분들은 미국 생활이 어찌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저와 같이 나이가 들어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한국인들의 경우 사실 이곳에 와서도 매우 한국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삽니다. 먹는 것도 한국 음식에 가족끼리는 한국말로 얘기할 뿐 아니라 어쩌나 친목을 위해 만나는 사람들도 거의 한국사람들이며 미국 자국 뉴스보다도 한국의 뉴스에 훨씬 관심을 가지고 삽니다.
물론 '난 한국사람과 교류하지 않을거야' 라고 결심을 하고 한국분과의 관계를 단절하신 분들도 계시고 한국인들이 거의 살고 있지 않은 동네에 계신 분들도 계시지만 이를 제외하면 이런 한국적인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계시는 분들이 예상하시는 것처럼 미국 친구들과 폭넓은 관계와 정을 나누고 살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친구 못지 않은 미국 친구를 사귈 기회가 드물지만 있으며 오늘은 저의 절친과 저의 동네에 살았던 국민가수로 불리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쪼록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이 글이 검색에 의해서 알려지는 글보다는 저의 블로그에 들리시는 분들에게 편안히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인지라 이 유명인의 실명은 등장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물론 실명을 쓰지 않아도 제 블로그에서 여러번 언급한 분이시라 금방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와서 만난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인 두명중의 한명인 Cynthia (이하 신시아라고 하겠습니다) 를 만난 것은 저희 아이가 다니고 있던 학교 주차장에서였습니다. 어느날 차를 세우고 학교에 들어가는데 아주 정겨운 목소리로 누군가 헬로를 하길래 돌아보니 아주 교육을 잘 받고 자란 느낌이 물씬 나는 풍채좋은 흑인 아주머니께서 저희를 부르고 계셨습니다. 다짜고짜 반갑다고 인사를 하면서 자기가 한국 친구들이 좀 있다고 하면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면서 이야기를 거는데 그 인상이 너무 좋아서 저도 모르게 환한 웃음으로 받았습니다. 알고보니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첫째는 우리아이와 같은 학년, 둘째 아이는 저의 딸아이와 같은 학년이었습니다. 한 학년에 반이 두반 밖에 없는 학교라 거의 같은 반일 확률이 높지만 그때는 아마 첫째가 같은 반이고 둘째는 다른 반이었던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친다고 하길래 초등학교나 중학교 음악 선생님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에 어찌나 붙임성있게 행동을 하시던지 친한 미국 가정 없는 저희 가족에게는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특히 양쪽집 큰 아들끼리 절친이 되는 바람에 둘도 없이 친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 분은 흑인으로서 받는 불평등을 겪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한국 사람으로 미국에 산다는 것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 주었고 미국에 살아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흑인들의 정서가 한국 사람들과 잘 맞는 덕분에 얘기를 할 때마다 참 말이 잘 통하는 구나 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나서 한참 지나고 나서야 이 분이 뭐하는 사람인줄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국에 비하여서는 개인적으로 뭘하는지 무슨 학교를 나왔는지를 자세히 물어보지 않는게 어느 정도 관행인지라 음악을 가르친다는 것 정도 이외에 더 꼬치꼬치 질문을 하지 않은 탓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인간 대 인간으로만 만난 것이지요.
조금 친해지고 집을 드나들면서 알게 된 것이 신시아가 초중고 음악선생이 아니라 제가 있는 도시의 주립대학교 음대 성악과 교수라는 것이었습니다. 남편 역시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보신 바 있는 줄리어드 출신의 음대 성악과 교수이고 이 대학교 전체 합창단 (Glee) 지휘자이자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것두요. 하지만 원체 대학교수들이 많은 도시인지라 '아 그렇구나' 라고 넘어가고 말았을 터인데 그녀가 매년 여름이면 유럽투어를 다니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베를린 필, 정명훈 등등과 함께 일을 했었다는 대목에서는 저도 모르게 '우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덕분에 유명 성악가들에 얽힌 뒷얘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그녀가 조수미를 칭찬하는 대목에서는 저도 모르게 우쭐했었습니다. 또 함께 컨서트를 했던 무대 뒤에서 밥 딜런을 몰라보고 벌였던 해프닝은 지금도 만날 때마다 낄낄대며 이야기하는 레퍼토리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궁금해 하실 분을 위해 이 글 끝에 첨부했습니다 ^^).
이 분들을 알고 나서 가장 큰 혜택을 받았던 것 중 기억나는 것 하나는 저 혼자 관객이었던 어느 재즈 잼(즉홍연주)에 초대 받았을 때 였습니다. 어느날 신시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샴페인, 우리 집으로 지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빨리 와라' 라는 내용에 가족도 아닌 저 혼자를 부른 것을 의아해 하면서 그 집 지하에 도착했더니 그곳에는 소규모의 재즈 컨서트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인 남편이 트럼펫 연주자와 드럼, 기타, 베이스 연주자들을 불러서 즉홍적으로 재즈 음악판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신시아가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 줄 아는지라 저를 급하게 불렀고 저는 난생처음 저 혼자 관객인, 저를 위한(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 컨서트에 참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족히 70은 되어보이는 영화에서 나올듯한 작은 체구에 머리가 하얗게 샌 흑인 트럼펫 연주자와 젊지만 천재적인 느낌의 드러머, 중년의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 그리고 쥴리어드 출신의 교수가 연주하는 재즈 피아노가 어우러진 잼 세션은 정말 환상이었습니다. 레퍼토리도 없이 누군가 하나 적당한 코드로 시작을 하면 곧 다른 연주자들이 치고나와 합주를 하는데 거의 1시간 30분이 넘게 펼쳐진 이 지하실의 컨서트를 저는 정말 지금도 잊을 수 없으며 제 생애 가장 감동적인 컨서트의 하나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때 왜 캠코더를 가지고 가지 않았는지 (알지 못했기에) 지금도 땅을 치고 후회할만한 그런 엄청난 잼이었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몇가지 혜택이 더 있었군요. 하룻밤에 노래 두곡 정도 부르는데 당시 개런티가 만불(천만원)이 넘었던 신시아를 뉴욕에 있는 에이전트 (유명 성악가들은 거의 다 에이전시에 소속이 되어 있습니다) 몰래 제가 다니던 교회의 소규모 무대에 세웠던 일입니다. 당시 손바닥만한 교회의 음악행사에 왔던 오십명이나 될까 했던 미국인 관객들은 세계적인 성악가의 노래에 완전히 압도되어 돌아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노개런티로 출연을 해줬습니다 (무대 의상도 따로 준비해서 입고 왔고 데리고 온 반주자는 본인이 따로 저몰래 사례를 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신시아를 성악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만들어 준 오페라가 바로 죠지 거쉰의 작품인 포기와 베스 (Porgy and Bess) 에서의 베스역인데요, 이 오페라 중 Summertime 같은 노래는 클래식 음악을 전혀 모르시는 분이라도 한번 들어보았을만큼 유명한 곡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래가 조금 끈적인다 하는 여성 가수들은 거의 모두 이 노래를 한번씩 불렀었습니다. 심지어 재니스 조플린도요).
그녀가 베를린 필의 지휘자로 유명한 Simon Rattle 경과 함께 한 포기와 베스 DVD 는 아직도 대표적인 포기와 베스 공연으로 팔리고 있는데요, 저는 제가 귀한 선물을 드려야할 분들 중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 계시면 아마존에서 이 DVD 를 주문한 후 신시아의 집에 달려가서 선물 받을 분의 이름이 들어간 싸인을 받아서 주곤 했습니다.
이 DVD 에는 지금의 남편도 함께 공연을 해서 (그 때는 처녀/총각일 때이고 이걸 계기로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기억이 가물 가물.. ^^) 두 사람의 싸인을 받아다가 이름을 넣어서 선물을 하면 받는 분들이 너무 좋아하시곤 했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저에게 불평 한번 없이 싸인기계가 되어 준 신시아에게 감사를.. ^^;;
어쨌든 두 집 자녀들간의 친분, 그리고 감히 평생을 음악을 해온 세계적인 성악가 부부들 앞에서 알량한 음악 이야기를 겁도 없이 해대는 저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고 저의 아내가 만든 한국 음식을 정말 좋아해 주던 신시아 덕에 두 가족의 친분은 더욱 깊어만 갔고 지금도 제가 가장 친한 가족으로 신시아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지금 이사온 집도 신시아가 자기가 거래하던 좋은 부동산 중계업자를 소개해 주는 바람에 얻게 되어 이들에게 더욱 감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두 가족이 함께 이사를 해서 곧 맞 집들이를 할 계획입니다 ^^).
아, 섭섭한 일도 한번 있었습니다. ^^ 신시아의 남편 제자가 팻 메쓰니 밴드 (예, 그 기타리스트 팻 메쓰니 맞습니다 ^^) 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어서 이들이 저희 동네에서 매년 벌어지는 기타 축제에 게스트 연주자로 왔을 때 신시아의 남편이 저를 이 행사의 뒷풀이에 초대하기로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야 뭐 항상 죄수복 스타일의 티셔츠를 즐겨입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와의 개인적인 만남을 가질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었는데요, 결과는 남편분이 정신이 없어 저를 부르는 것을 잊어먹는 바람에 지금도 두고 두고 제가 만날때마다 우려먹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그 와중에 "너 나 때문에 미안하지? 한번 도와줘" 해서 남편분도 제 교회 음악 행사에 올렸습니다만.. ^^;;
평소 제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항상 잘 들어주던 이 부부와 어느날 이런 저런 잡담을 하다가 우연히 제가 사는 도시에 와서 살고 있던 소위 한국의 전설적인 가수 한명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조그만 동네에 한국에서 셀린 디온과 머라이어 캐리를 다 합쳐놓은 정도의 지명도와 실력을 가진 전설적인 가수가 와서 살고 있다고 침을 튀겨대니 이 부부가 관심을 가지더군요. 그렇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 이렇게요.
그렇게 신시아 부부와 한국에서 와서 살고 있다는 가히 국민가수라고 할 수 있는 A 씨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고 난 후 제가 할 일은 어떻게 일면식도 없는 A 씨와 연락을 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세계 오페라 무대를 누비고 강단에서 많은 성악가를 키워낸 부부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와의 만남은 여러모로 참 유익한 만남이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알고 지내던 젊은 처자가 당시 A 씨가 다니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한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A 님은 이곳에서 주로 직업을 위한 2년제 학위를 운영하는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 연수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는데 저의 이런 뜻을 그 후배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돌아온 답은 아쉽게도 "아직은..."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긴 그 대답도 이해가 가는 것이 당시가 한국에서 온 직후였었고 뭐랄까 주변의 수업을 함께 듣는 분들에게는 격의 없는 사이이긴 했어도 대체로 일반 한국인들과의 접촉은 A 님께서 좀 피하던 그런 시기였었습니다.
그렇게 그 일은 묻혀졌고 저도 뭐 제 앞가림 하느라고 (당시 학위과정중이었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잊고 지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그 일이 생각난 것은 제가 우연히 A 씨의 부군을 개인적으로 알게되고 A 씨의 집도 방문하고 저녁도 함께 먹고 제법 안면을 튼 후였습니다. 예전에 한번 거절을 당했던 일이라 조심스럽게 한번 만나보시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A 님 본인에게 다시 한번 거절을 당할 것을 감안하고 여쭈어 보았는데 놀랍게도 대답은 아주 적극적인 예스였습니다. 심지어 A 님 본인은 예전에 그런 제안을 받았던 것조차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A 님은 이곳에서 학교로 진학해서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기에 더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약속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고 얘기를 꺼낸지 바로 다다음날인가 토요일에 신시아의 집에서 함께 만나보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A 님 부부를 모시고 가기로 하였고 아직 영어에 익숙치 못한 A 님을 위하여 통역을 해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제 차로 가기로 하여 A 님 댁에 들려서 두분이 나오기를 응접실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순간이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한 겨울이어서 창밖으로는 눈꽃이 덮혀있는 나무 몇그루가 서있던 다소 스산했던 풍경이었었습니다.
우두커니 서있던 제 옆으로 먼저 내려와서 함께 나란히 서서 창밖을 바라봐주던 분이 A 님인 것을 발견하고 나름 뻘쭘하더군요. 언제나 A 님은 부군과 함께 뵈었었고 TV 에서 뵙는 모습과는 다르게 좀처럼 말이 없으시고 무뚝뚝한 편이며 나름 한 카리스마 하는지라 저도 모르게 '선생님' 소리가 나오는 그런 분이어서 (저와 나이차가 겨우 두살밖에 안나는데도) 옆에 서있는 A 님의 존재감이 느껴져서 살짝 움찔했었습니다.
함께 서서 전면이 유리로 된 문을 통해서 밖을 바라보며 서있던 조용한 적막을 먼저 깬 것은 A 님이었습니다.
A : 전 고드름이 참 좋아요.
샴페인 : 아.... 녜.... (녜???????????)
먼저 말씀을 건네리라고 생각을 못했기에 반응은 '아.... 녜....' 였었지만 속마음은 정말 화들짝, 물음표 11개 정도 되었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뭐 몇년전에 이 타운에 엄청난 추위가 몰아쳐서 전 도시의 나무들이 얼음에 뒤덮혔는데 참 아름다웠다, 혹시 사진을 원하시면 보여드리겠다 이런 그다지 영양가없는 대화였지만 A 님의 대답은 그 사진이 보고 싶다였고 결국 나중에 이메일로 사진들을 보내드렸었습니다. 어쨌거나 언제나 제가 대화를 꺼내고 묻던 입장에서 먼저 질문을 받고 보니 뭐랄까 한걸음 가까워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잠시 후 부군되시는 분도 준비가 되셨는지 이층에서 내려오시고 해서 두분을 제 차에 태워서 신시아의 집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도 되지 않았습니다. A 님의 집이 저희 집과 가까운데다가 신시아의 집 역시 무척 가까운 탓이었습니다 (녜, 제가 좀 좋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삽니다. ^^).
언제나 그렇듯이 신시아는 저를 보자마자 격한 포옹으로 반겨주었습니다. 신시아는 언제나 말보다는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타입이어서 만날 때마다 격렬하게 안아주곤 했었는데 스킨쉽에 항상 조심하는 편인 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포옹은 언제나 진심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A 님 부부와도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고 나서 바로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 (조금 작은 그랜드 피아노)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응접실 안쪽에 편안한 소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피아노 옆으로 자리 잡은 것은 처음부터 음악적인 교감을 나누고 싶다라는 의미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제가 따로 뭐 레슨이나 그런 것을 부탁드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시작부터 분위기는 레슨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나서 (뭐, 얘기 많이 들었다, 샴페인에게 듣기에 정말 유명한 가수라고 들었다, 영광이다 뭐 이런류의 인사들요) 다소 딱딱해 보이는 목재 의자에 신시아와 A 님이 마주보고 않았고 저는 그 중간에 두분을 바라보며 앉게 되었습니다. A 님의 부군은 좀 떨어진 조금은 편안한 소파에 앉으셨고 신시아의 남편은 피아노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누가봐도 레슨을 위한 분위기였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자리 배치였습니다. 먼저 신시아는 (당연히 그렇겠지만) A 님의 노래를 듣고 싶어했습니다.
A 님께서 조금은 망설이시지 않을까 하는 것은 저의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별다른 목푸는 과정없이 바로 앞에 앉아있는 A 님에게서 터져 나온 노래는 바로 왕의 남자의 주제곡 '인연'이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가수들의 노래를 실제로 가까이에서 들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최고라고 여기는 양희은씨부터 김광석씨, 이승철씨, 임재범씨, 들국화, 인순이 등등부터 Kathleen Battle 등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그리고 제가 있는 곳의 주립대의 박사과정 성악가들의 수도없는 발표회까지 비교적 좋은 소리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또한 어머니께서 성악을 하신 터에 어렸을 때부터 소위 노래좀 한다는 사람들의 음악을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눈앞에서 터져나온 A 님의 노래는 바로 "헉.. 이것은 전설... 아니 레전드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끔 만드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좁지않은 신시아 집의 응접실의 공기가 단 한톨도 남기지 않고 A 님의 소리로 빼곡히 채워지는 그런 실로 오랜만에 느껴지는 압도감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정도 거리에서 프로 가수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는 탓이기도 했겠지만 이 날 응접실 공기의 밀도는 평소의 몇배이상 두터웠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
잠시 여기는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잊고 사정없이 노래에 몰입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노래입니까, '인연'이라는 노래는...
의외로 노래를 듣고 있는 신시아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저게 바로 수많은 성악가들을 가르쳐 온 관록인가 싶었습니다. 얼마나 불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뽕 맞은 것처럼 취해있었으니까요. 노래가 끝나고 나자 신시아는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경이롭다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하긴 그동안 제가 봐온 성악가들은 대체로 몸집이 있는 편이었습니다. 실제로 성악하시는 분도 '통'이 좋아야 한다고 표현을 하시더라구요.
그 후부터는 정말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A 님이 대한민국에 계셨다면 누가 감히 A 님을 레슨을 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여기는 미국 ^^ 분위기는 완전한 레슨이었습니다. 신시아는 이리저리로 다양하게 소리를 내어 보라고 시켰고 A 님은 정말 지극히 온순한 학위가 걸려있는 대학원생마냥 신시아가 요구하는대로 여러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 끼어서 정말 아무도 들어보지 못했을 A 님의 다양하고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감상하는 횡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시아는 가수로서 A 님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개인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고 A 님은 정말 그 자존감 높은 모습에서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았을 여러가지 고충에 대해서도 만난지 몇십분도 되지 않은 신시아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있었습니다. 제 눈앞에서는 건국 이래 최고의 가창력을 지닌 한국 가수와 전세계의 오페라 무대를 누빈 그야말로 일류 성악가 두사람의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멋진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장르가 판이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신시아는 A 씨의 고충에 지극히 많은 공감을 했고 나름대로의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또 대부분의 대화는 '너 이런 문제 있지 않니?' '맞아 맞아' 이런식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료의식을 느끼기에 충분한 교감들로 주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이들이 나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A 님의 이야기인지라 이곳에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드릴 수는 없겠지만 오랫동안 정상을 달려온 한 국민가수의 여러가지 개인적인 고충은 저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고 신시아의 여러 답변과 조언에 역시 A 님도 깊은 공감을 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는 잠시 제가 통역을 하고 있는지 토크쇼의 관객역할인지 헛갈리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A 님은 자신의 음악에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고 팬들 속에 오래 오래 그들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남고 싶어하는 진지하고 성찰이 깊은 음악가임에는 분명했습니다.
신시아는 A 님의 몸 여기저기를 주무르면서 발성에 관한 여러가지 노하우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제 앞에서 A 님의 하복부를, 등을, 허리를 눌러가며 여기 저기 지적해 주고 어깨를 쥐어 돌려가며 그야말로 주물럭 주물럭 (^^) 자세와 발성법을 교정해 주던 모습은 아마도 제가 평생 다시 못 뵐 광경이기도 했습니다. A 님은 신시아의 요구대로 이렇게 저렇게 소리를 다양하게 내어보기도 했고 너무나도 예의바른 학생으로 순간 돌아가 계셨습니다. 이전에 나름 골머리를 앓았던 문제들이 신시아의 조언으로 간단히 해결되는 모습을 보면서 살짝 기뻐하시기도 했습니다. 요즘 인기를 끌고있는 위대한 탄생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엄마 미소를 지어보이며 멘토로서 자상하지만 때로는 근엄하고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을 TV 로 지켜볼때마다 가끔 이때가 연상이 되어서 혼자 미소를 짓곤 합니다 (두 모습이 참 다릅니다 ^^).
신시아 남편은 충실한 피아노 반주자로서 이런 저런 짧은 소절의 멜로디 반주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만나자마자 인사도 오래 나누지 않고 바로 레슨 모드로 들어가서 격렬한 시간을 보내던 분위기를 일순간에 확 깬 사람은 의외로 저의 아내였습니다. 다른 일로 아내가 잠깐 신시아의 집을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한번 인사를 나누었다고는 하나 갑자기 낯선 방문객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실내 분위기는 일시에 쨍하고 얼어붙어버렸습니다. 마침 눈치가 빠르기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아내는 전해줄 물건만 놓고 (물론 그 짧은 와중에도 신시아는 뛰쳐나가서 아내에게 격렬한 포옹을 선사했지만요) 얼른 가버렸습니다.
금방 분위기를 회복하고 다시 가열찬 레슨 모드로 돌아갔습니다. 뭐랄까 반은 이런 저런 발성에 관한 기교 이야기, 나머지 반은 서로의 가수로서의 고충을 얘기하는 대략 그런 분위기로 흘러갔습니다. 또 가수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여러가지 고민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신시아는 58년 개띠입니다. 한국 나이로 54세죠).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하기도 하고 경험을 나누는 그 모습은 실로 보기 좋았습니다. 저에게는 언제나 그야말로 이빨을 까는 걸로만 만났었던 신시아의 진짜 성악과 교수로서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은 첨 보는 듯하여 매우 이채로웠으며 이로 인해 신시아에 대한 존경심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신시아의 남편이 짧은 멜로디를 연주를 했습니다. 저도 알고 있는 익숙한 멜로디였고 (아쉽게도 어떤 곡이었는지는 현재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저도 모르게 잠시후에 흘러나올 A 님의 멋진 소리를 기대하며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A : ....................
샴페인 : ?
A : ....................
샴페인 : ???
당연히 A 님께서 그 멜로디에 맞추어서 짧은 소절을 노래해 주시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A : ..................
A : 제가 이 곡을 몰라요.
샴페인 : 아....... 녜........
잠깐 신시아의 남편은 한국어로 나눈 우리 대화를 알아들었는지 (그럴리가 ^^) 연주를 중단했습니다. 이어지는 A 님의 이야기는 자기가 곡을 쓰는데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노래를 잘 듣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곡이 많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만 덧붙여 주신 이야기는 전혀 모르던 예상치 못한 얘기였습니다.
A : 고등학교때까지는 그래도 음악을 들었는데 그것도 다 하드락 음악이었어요.
전.....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저에게는 국민가수로만 알고 있었던 A 님이 음악적으로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었습니다. 저야말로 하드락 매니아, 메탈 키드라고 불리우던 고딩 시절을 보낸 사람이고 동시대에 A 님도 레드 제플린, 딥 퍼플들과 같은 밴드에 함께 열광했었다고 생각하니 그져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신시아의 남편은 얼른 눈치를 채고 다른 멜로디를 연주를 하고 먼저 소리를 내어주어 가이드를 해주었고 그렇게 다시 감히 대한민국 일등가수에게 행해지는 레슨은 계속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교감을 나누고 레슨이 마무리 되간다 싶어 시계를 보니 무려 4시간이나 흘러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시간이 흐른지도 모르고 알량한 실력으로 두분의 대화를 열심히 통역을 했었는데요 사실 어느 시간이 흐른 후부터는 뭐 저의 통역이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았었습니다. 그야말로 두 대가는 음악으로 대화를 나누었으니까요.
적당히 자리를 정리하고 나서는 A 님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밝았습니다. 정말 얻어야할 인생의 해답을 얻은 구도자의 느낌 딱 그것이었습니다. 몇번을 만나도 미소짓거나 환하게 웃는 표정을 별로 본 일이 없었는데 이 날도 환한 미소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제 느낌에도 바로 알 수 있을만한 그런 환희가 A 님에게서 느껴졌었습니다.
이 날 레슨을 받은 날이 토요일이고 원래 계획은 일요일날 시카고로 올라가서 월요일날 한국으로 귀국을 해서 당시 탁재훈이 출연하던 '불후의 명곡' 스케쥴이 잡혀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A 님은 스케쥴을 변경하여 일요일날도 다시 신시아를 만나기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일정을 바꿀만큼 소중하게 여기셨다는 얘기지요. 그리고 일요일은 제가 참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미 두 분은 저의 통역이 필요가 없었고 A 님에게 좀 더 허심탄회한 음악적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A 님의 부군을 통하여 들은 얘기는 일요일날의 만남도 너무나 유익했었고 훗날 한국으로 돌아가면서도 꼭 다시 와서 신시아를 만나보고 싶다고 얘기를 하셨다고 하더군요.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만난 두 대가의 얘기는... 지금도 그때의 분위기가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저는 대한민국 일등 가수의 노래를 코 앞에서 4시간이나 듣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고 A 님은 아마도 한국에서는 가져보지 못하셨던 귀한 시간을 가졌으리라고 혼자 막연하게 상상을 해봅니다.
저의 오지랍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또 하나의 멋진 인간관계를 형성해 드린 것 같아 아직도 보람이 있습니다. 지금도 신시아를 만나면 A 님 이야기를 종종 물어보시고 전 너무나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A 님 소식을 전해드리며 뿌듯해 했습니다. 아마도 두분이 또 만날 기회가 있겠지요.
그리고 그 날 두분을 차에 태워 다시 집에 내려드리면서 저는 A 님의 차고 한 구석에 버려져 있는 데스크탑 컴퓨터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데스크탑에 얽힌 국민가수의 잃어버릴뻔 했던 소중한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이곳에 '기억에 남는 데이터 복구 하나 (링크)' 라는 글로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 이제 이 글과 과거의 저 글을 읽으신 분들은 왜 제가 가수 A 님이 한국에 돌아가셔서도 저에게 일부러 새로 발매한 앨범에 싸인을 해서 미국에 보내주시고 정말 비싼 일식 저녁 한끼를 약속하셨는지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전례없이 길고 장황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아울러 이 이야기가 아직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A 님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래 봅니다.
P.S. : 제가 좋아하는 신시아의 퍼포먼스 동영상 하나를 첨부해 봅니다. 화질은 정말 구리지만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목소리로 연주한 그녀의 노래만큼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영어로 된 이 영상의 설명을 읽어보시면 정명훈 (런던 심포니 시절)이라던지 요요마 , 존 윌리암스, 쿠르트 마주르 (이스라엘 필), 사이먼 래틀 (베를린 필) 등 세계적인 분들과 함께 한 그녀의 위상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노래가 마음에 드신다면 유튜브에서 Cynthia Haymon 으로 검색해 보시면 제법 많은 수의 그녀의 퍼포먼스를 보실 수 있습니다. Summertime 도 기회가 되면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P.S. 2 : 본문 중에 소개한 밥딜런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 그대로 재구성 하나 해드립니다. 그녀가 무슨 자선 컨서트 참석을 했었는데 무대뒤에서 왠 후즐근하게 생긴 남자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괄호안은 제가 첨가한 겁니다. ^^
신시아 : 넌 이름이 뭐니? (거의 양희은 톤)
밥 딜런 : (밥 딜런 특유의 느린 분위기로) 음............... 바아압...........
신시아 : 음.....
신시아 : 넌 뭐하고 사니?
밥 딜런 : 음............... 노래해.........
신시아 : 음.... 그렇구나....
신시아 : 그럼 열심히 해...... (-.-;;)
그녀의 얘기로는 정말 후즐근해 보여서 노래로 밥은 먹고 살지 진심으로 걱정되었다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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