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저의 친구를 포함한 지인들은 제가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의 문화에 뒤쳐짐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가끔씩 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 시대. 인터넷을 통하여 한국의 미디어들을 손쉽게 접하고 한국의 방송들마저도 여러 경로를 통하여 볼 수 있는 탓에 한국에 살고있는 것 못지않게 적어도 문화적인 면에 있어서는 조금도 뒤쳐짐이 없이 쫓아갈 수 있습니다. 그중 한국의 TV 프로그램들과 영화는 항상 저의 관심권안에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방송이나 영화는 빠짐없이 챙겨보고 있는 편입니다. 더구나 저희 아이들이 한국의 말과 문화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한국 방송을 권장하는 저로서는 아이들과 한국 TV 프로그램을 같이 보는 순간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희 딸 아이는 강호동이 나오는 '스타킹'을 가장 좋아하며 고등학생 아들 녀석은 '패밀리가 떳다'를 가장 좋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들은 주로 쇼 프로그램들인데 (드라마는 너무 길어요 ㅜ.ㅜ) 그 중 하나가 황금어장이라는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는 프로그램입니다. 간판으로 걸리는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도 매우 재미있고 막장 컨셉트를 절묘하게 유지하며 독설을 뿜어대는 라디오 스타 역시 저의 좋아하는 코너중 하나입니다.
어제는 무릎팍 도사에 고현정씨가 출연했더군요. 한동안 정말 많은 스캔들에 휩싸였었던 톱스타중의 한명이라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을줄 믿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현정씨하면 생각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떠올라서 더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최근에 상상플러스라는 프로그램에서 출연자중의 한명이 녹화도중 욕설을 했던게 여과되지 않고 방송되는 바람에 논란이 되었는데 이 사건과 제가 기억하는 고현정씨의 에피소드가 겹치는 부분이 있어 한번 그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제 블로그에서 처음 언급되는 연예인 이야기인데요,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 하는 것 좋아합니다. ^^;;
사실 고현정씨는 저의 세대의 연예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현정씨의 전성기라 일컬어지는 드라마 '모래시계'가 대히트를 칠 무렵 그녀의 인기는 아무도 부럽지 않았을 정도입니다. 종래의 깍아 만든듯한 얼굴과 이국적인 외모, 그리고 도도한 이미지로 대표되는 우리 세대들의 다른 미인들에 비하여 고현정씨는 말끔한 피부에 복스러운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순한 이미지로 한국적 미인의 대명사로 어필을 해서 좀 차별화가 되었습니다. 다만 청순한 이미지 하면 당대에 심은하라고 하는 또 다른 걸출한 스타가 있었기에 무릎팍에 출연한 본인의 얘기로는 심은하씨에게 2등으로 밀렸다고는 하지만 고현정씨가 전성기를 달리던 시대에 심은하씨는 데뷰 초창기였기 때문에 고현정씨의 포스에 오히려 심은하씨가 비교가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 제가 잘 기억하는게 심은하씨가 당시에 제가 아주 가깝게 지내던 분이 직접 쓰셨던 작품(마지막 승부)으로 주인공 데뷰를 했고 제가 이 작품을 일일이 모니터 해드렸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심은하씨는 98년 미술관 옆 동물원, 99년 텔미썸싱과 청춘의 덫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반면 고현정씨는 95년 모래시계로 정상에 오른 후 같은 해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아주 오랫동안 떠나버렸기 때문에 고현정씨가 활약했던 시기에 심은하씨에 밀렸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
모래시계의 고현정 |
마지막 승부의 심은하 |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잘 기억을 못하시는게 고현정씨는 가수로도 앨범을 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배우나 탈렌트가 노래를 하거나 판을 내는게 특별한 일이 아닌게 되어버렸습니다만 당대에는 매우 드문 일이었고 제 기억에도 여성 탈렌트가 노래를 내서 알려졌던 것은 김희애씨가 전영록씨의 곡인 '나를 잊지 말아요' 로 힛트를 기록했던 정도가 떠오릅니다. 고현정씨는 당시에 옥소리, 강석현 주연의 영화로 O.S.T. 가 영화보다 더 힛트를 쳤던 '비오는 날의 수채화' 의 두번째 앨범인 2집에 참여를 합니다. 이것 역시 제가 기억하는게 당시에 컴퓨터 음악한답시고 제가 가입한 우리나라 최초의 아마츄어 컴퓨터 음악 (MIDI) 동호회에서 잘 알고 지내던 가수가 바로 이 비오는 날의 수채화 2집에 같이 참여했었기 때문입니다 (말이 난김에 얘기하지만 지금도 즐겨 쓰이고 저도 사용한 '컴퓨터 음악'이라는 용어는 사실 매우 잘못된 용어중 하나입니다. 컴퓨터를 도구로 이용할 뿐 작곡도 연주고 결국은 사람이 하는 거거든요. 이런 식으로 하면 워드 프로세서로 작품을 쓰는 이외수씨나 황석영씨는 '컴퓨터 문학' 을 하는 사람으로 불리워야 합니다 ^^). 지금처럼 기계로 음을 조절하고 효과로 버무려서 아무나 가수를 만들던 시대가 그때는 아니었던지라 상당한 노래 실력을 갖춘 사람들만이 음반을 냈던 시대이고 제 기억에도 고현정씨는 참 노래를 잘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함께 참여했던 저의 지인인 가수분도 고현정씨의 노래실력이나 여러가지에 관한 좋은 이야기들을 종종 들려줬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 2집. 왼쪽에서 두번재 칼럼이 그녀 고현정
하여튼 이런 저런 이유로 당시 고현정씨의 팬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현정씨는 저의 관심권 안에 있었으며 지금까지 그러합니다. 당시 고현정씨는 참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오늘 저의 이야기는 당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공개방송에 출연했던 중 한 해프닝입니다. 물경 이십년이 다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제야 본론이 시작되는 군요 ^^;;).
이종환씨하면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지만 80년대의 라디오 세대들에게 정말 많은 영향을 끼쳤던 분입니다. 물론 그 전에 '쉘브르' 라고 하는 음악다방 (지금식으로 하면 라이브 음악을 하는 커피숍)을 통하여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이라고 하는 대중가요 역사에 남을만한 걸출한 가수들을 길러내었으며 수많은 가수들이 이종환씨를 통하여 대중에 나서게 된, 지금으로 따지면 SM 기획의 이수만씨와 JYP 의 박진영씨의 영향력에 프로듀서 김창환씨까지 합쳐야 될만한 파워를 가진 분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제 기억에 현존하는 그 어떤 연예계 인사도 이만큼 많은 가수를 배출해낸 분이 없지 싶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XXX 사단'이라는 말의 기원도 이종환 사단에서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라디오 방송중인 이종환씨
80년대말의 라디오는 이문세씨의 '별이 빛나는 밤에' 가 단연 1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종환씨는 별밤의 3대 DJ 였고 이문세씨는 이종환씨를 통해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선 분중의 하나였습니다) 이종환씨의 밤의 디스크쇼의 공개방송 인기 역시 상당했었습니다. 이종환씨의 타고난 입담과 화려한 출연진들로 인하여 별이 빛나는 밤의 애청자들도 이종환의 공개방송이 방송되는 시간에는 이를 청취할만큼 인기가 좋았었습니다. 당시 지방에서 올라와 촌티를 벗고자 했던 저는 서울 생활에서 많은 공연장들을 다녔었는데 (제가 제일 즐겨 다니던 곳은 지금은 파고다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리우는 종로2가의 파고다 연극관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일반에게는 무명이었으나 그곳을 휘어잡던 두명의 걸출한 스타 이승철과 김종서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종환의 공개방송이야말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과도한 꽃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서 신청한 엽서가 아니면 입장권을 받기 힘들었던 별밤의 공개방송과는 달리 (당시 이러한 엽서들을 모아 MBC 예쁜 엽서전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 이종환의 공개 방송의 경우 방송이 열리는 정동 MBC 라디오 극장에 조금만 일찍 가서 줄을 서기만 하면 입장권을 구할 수 있었기에 몇번 직접 방청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광고를 제외하면 한시간 이십분에서 삼십분이 방송되는 본방송과 달리 공개 방송 녹화는 약 4시간 정도 진행이 되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방송에 차마 나갈 수 없는 부분들을 듣거나 짬짬이 휴식 시간에 이종환씨가 반말로 출연자들과 사담을 나누는 것을 엿듣는 것은 본 방송에서 맛볼 수 없었던 보너스였습니다. 제가 갔을 때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코미디언 이주일씨와 이덕화씨들을 보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데 두분의 방송에 나가지 못한 얘기들이 압권이었습니다 (이건 사석에서의 얘기거리로 남겨 놓겠습니다).
공개방송 스튜디오가 있던 정동 MBC
그렇게 열심히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공개방송을 듣던 어느날 고현정씨가 출연을 한 부분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싱글 시절이라 방송에 나온 고현정양은 이런 저런 질문들에 구김없이 활달하게 대답을 잘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방송중 이종환씨가 재미있는 질문으로 낚시를 던집니다. 자세한 문장은 기억이 안나지만 내용은 고현정씨같은 미인들은 욕을 하지 않지요? 하는 류였습니다. 이때 그녀의 대답은 "왜요, 저도 욕하지요" 였었습니다.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는 수박을 먹을 때면 씨 때문에 번거로워서 씨에다 대고 욕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끼(^^)를 물은 고현정양에게 이종환씨가 기다렸다는 듯 어떤 욕을 하는지 질문을 했습니다. 고현정양이야 당연히 방송에서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한발을 빼었었지만 이종환씨는 집요하게 여쭈어 보았습니다. 몇번의 공방끝에 결국 편집을 해서 방송에 나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이종환씨에게 받고서야 그녀는 그녀가 수박씨들에게 하는 욕설을 털어 놓고야 맙니다. 순진한 그녀. ^^
"아유 이 개새끼들"
헉! 공주처럼 아름답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그시간 공중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주 귀여운 톤으로 얘기를 했었고 이어서 관중석에서 엄청난 폭소가 터졌었던 것이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광고로 이어졌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 기억에 없는 것을 보면 저도 잠깐은 정신을 깜박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일은 무려 이십여년 전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것을 보면 저에게 꽤 큰 충격이었었나 봅니다. ^^ 그 이후 영화가 아닌 어떤 공중파에서도 여성 톱스타의 욕설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
무릎팍 도사에서의 고현정양
이러한 기억을 가지고 있던 저에게 약간은 들떠보이고 강호동씨의 어떠한 난감한 질문에도 오히려 손쉽게 긍정을 해버림으로써 강호동씨를 난처하게 만들던 무릎팍 도사에서의 고현정양의 발랄한 모습이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결혼전에는 어떠한 스캔들도 없이 지내다가 오히려 결혼과 이혼 후에 극심한 스캔들에 고생을 했던 그녀가 이제 그동안의 아픔을 딛고 밝은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보여 열렬한 팬이 아닌 저에게도 참 보기가 좋더군요. 앞으로 본인 이름만으로 기억되어지는 작품 하나 꼭 하시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나저나 고현정양을 보면 떠오르는 에피소드 하나 얘기한다는 것이 이렇게 곁가지 덕분에 얘기가 길어져 버렸군요. 제가 원래 이렇습니다. ^^;;
웹포토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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