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부의 말씀 Disclaimer]: 이 후 기술되는 글은 특정 자동차 업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며 또한 해당되는 특정 차종의 전체적인 문제에 대하여 언급한 글도 아닙니다.  오히려 차량의 경고를 무시하고 안일하게 대처했던 한 사용자의 자기 반성이며 이 글로 인해 관련업체에 근무하거나 해당 차종을 운행하시는 분들에게 불쾌감을 주려는 의도 역시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아무쪼록 너른 이해 있으시기 바라겠습니다.


저에게는 약 26만 킬로를 운행했던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있습니다.  이곳 미국에서도 가장 많이 팔린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도요타 사의 프리우스 차량이며 9년 2개월동안 운행하면서 빼어난 연비로 많은 돈을 절약해 주었고 단 한번의 기계적인 결함이나 고장이 없어서 참으로 만족했었던 차입니다.  그러나 22만 4천킬로를 뛰고난 후에 하이브리드 차에서 엔진이나 다름없는 동력 배터리 팩 중 한개가 수명이 다해서 직접 교체한 적이 있습니다. 그후 25만 6천킬로를 뛴 후에 두번째 배터리 팩의 수명 문제로 다시 교체한 적이 있습니다. 이 두번의 수리는 이 블로그에도 간단히 기술을 했기에 아마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이렇게 두번의 배터리 교체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어쩌면 제가 한국 사람 중에는 프리우스 배터리 수리에 관한 한 정말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교만한 생각을 품기도 했습니다. ^^ 인터넷 상에도 프리우스 배터리 자가교체에 관한 한글 자료를 발견할 수 없었고 두번의 제법 큰 수리를 통하여 정말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배터리 교체라는 단어에서 시동용 12V 배터리를 교체하듯이 간단한 작업이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차량 뒷부분의 좌석 및 트렁크를 모두 다 들어내는 대공사이며 자동차 제작사가 개별적 배터리 교체를 할 수 있도록 하지 않은 탓에 50Kg 에 달하는 배터리를 완전히 분해하여 그 안에 든 28개의 배터리 팩을 재배열 하고 교체해야 하는 제법 난이도가 있는 작업입니다. 또한 200 볼트가 훌쩍 넘는 전기와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에 많은 주의를 요하기도 합니다.  다행히 그래도 공학과를 졸업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수많은 자료를 읽고 행한 작업이기에 나름 훌륭하고 안전하게 두번의 교체작업을 끝냈습니다. ^^

 

그러다가 올해 초에 다시 배터리 경고등이 올라왔습니다.  

 

"이런, 또 교체해야 하는거야?"  

 

이미 두번의 경험을 했기에 그냥 귀찮은 일 한번 더 해야 한다는 정도의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작년말에 저희 집에 오셨던 전기 관련 전공하셨던 지인분께서 배터리라는게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기에 앞으로 계속해서 하나씩 고장날 거다라는 예언이 정확히 들어 맞았던 것입니다. 나름대로 저는 이런 과정을 방지하려고 신경을 써서 배터리를 교체하고 제가 직접 제작한 허접한(^^) 장비들을 이용하여 배터리 간의 밸런스를 맞추는 작업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일이었던지라 미홉한 부분등이 많았던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앞으로도 자꾸 고장날 것을 대비해서 이번 기회에 통채로 배터리를 교체할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랑 아내는 이 차를 45만 킬로 이상 타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미국에서 프리우스 2세대의 전체 배터리 가격은 세금을 포함하지 않고 $2,588.67 (약 305만원) 이고 세금을 포함하고 수리비 (인건비) 약 70만원을 포함하면 4백만원이 넘는 비용이 드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동안 높은 연비로 절약한 돈이 훨씬 큰데다가 앞으로도 최소한 20만 킬로 이상을 더 탈 수 있다는 생각에 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히기도 했습니다.

 

여기 저기 딜러들을 접촉하면서 순정 배터리를 좀 더 싸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연구도 해보고 도요다 정품이 아닌 써드파티에서 나온 백만원 이상 싼 품질 보증이 되는 재생 배터리는 어떨까 관련 자료도 찾아보고 실제 리셀러들에게 전화해서 가격을 일일이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두번이나 수리를 했었고 정확히 어디가 문제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고가 나올 때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단돈 2만 5천원짜리 블루투스 OBD2 스캐너를 통하여 차량의 체크엔진 (check engine) 경고를 리셋해가며 차에 더 이상 무리가 가지 않도록 꼭 필요할 때에만 살살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 급하지 않게 여기 저기 가격 체크도 하고 살살 차량운행도 하고 있었는데 사건이 터진 것은 3월 초로 기억합니다.   축구 연습을 마친 딸아이를 데리고 어둑해져가는 길거리를 달려 큰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뀌어서 전진하려고 하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빵!!!!!!!!!!!!!!!"

 

딸아이와 저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파랗게 질린 딸아이의 첫마디가 저의 귀를 때렸습니다.

 

"아빠, 이 것 우리 차에서 난 소리 맞지????"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배터리가 터졌구나.   마치 뒷자리에서 폭죽 하나가 터진 소리가 났기 때문입니다.  즉시 비상등을 켜고 아직도 시동이 꺼지지 않은 차를 몰아서 일단 교차로를 지나쳐서 길거리에 차를 댔습니다.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집까지는 겨우 3-4 킬로, 그냥 살살 몰고 갈까?'

'아니야, 하이브리드 차가 불도 난다는데 화재에 휩쌓이면 어쩌지?'

'아이고 미리 배터리를 갈 걸...'

 

그러나 정작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겁에 질린 딸아이를 달래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차안에서는 매캐한 탄 냄새도 나기 시작했습니다.  더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바쁜 퇴근시간의 2차선 도로 중 하나를 막고 있기가 싫어서 50여미터를 더가면 있는 소프트볼 야구장의 주차장에 주차해야겠다는 빠른 판단이 섰습니다.

 

마침내 차를 넓직한 곳에 세우고 딸아이를 진정시켰습니다.

 

"수빈아, 아빠가 이거 배터리가 하나 터진 것 같아. 아빠가 아주 잘 아는 문제이고 다행히 더 이상 문제는 없을테니 걱정마"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제가 있는 곳으로 와서 아이를 데려가게 했습니다.  나중에 아내의 얘기를 들어보니 아내가 데리고 가는 차 안에서 많이 울더랍니다.  많이 놀랬나 봅니다 (나중에 딸아이는 계속 그 차를 계속 타게 된다면 그 교차로를 지낼때마다 움찔움찔 할거라고 얘기하더군요).

 

저는 일단 차가 있는 곳에서 보험회사에 견인요청을 했습니다.  차를 직접 몰기 시작한게 80년대 후반이니 근 30년을 차를 몰았는데 그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차량 견인을 하려니 참 이상했습니다. 요즘은 엡이 잘 되어있어서 보험사에 전화할 필요없이 엡을 이용하여 차량견인을 요청하고 현재 위치가 자동으로 GPS 로 전송되니 참으로 편리하더군요.

 

저의 집에 견인할까 딜러 수리센터로 갈까 고민하다가 혹시 몰라 딜러 수리센터로 차량을 견인해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을 달랬습니다.  다음날 딜러에게 어느 정도의 문제인지 어느 정도의 피해 정도가 있었는지 물어보았더니 차량을 켜자마자 연기가 차안을 가득 매워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고 차량을 뜯어서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는데에는 초기 진단비용 11만원 이외에도 40만원 이상이 더 필요하다기에 일단 모든 진단작업을 중지를 시켰습니다. 

 

그 후에는 계속되는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차를 주행해서 결국 폭발로 이르게 한 저의 나태함을 자책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고민은 과연 이 차를 수리해서 계속 탈 것이나 아니면 이 기회에 차량을 바꾸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뭐 생활에 여유가 있다면 아무 고민없이 차를 바꾸었겠지만 빡빡한 저의 형편에서 새로운 차량 구입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한번 차량을 구입하면 폐차할 때까지 탄다는 우리 부부의 기본 가치관에서 아직 26만 킬로는 더 탈 수 있는 주행거리였기 때문입니다 (^^).

 

그래도 나름 쓸만한 부품이 아직은 남아있는 차였기에 혹시나 해서 이 차를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알아보니 딜러에서는 기본 진단비용으로 내가 내야할 10만원을 빼주겠다는게 전부였고 (그러니 차를 날로 먹겠다 이거죠, 도둑넘들 ^^) 몇몇 차량 재활용 업체와 폐차장을 전전하면서 알아보니 제시하는 가격은 30만원부터 110만원까지 천차만별이었기에 계속되는 고민에 휩쌓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아내와의 오랜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아쉽지만 안녕을 고하고 새 차로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엑셀 스프레드 시트를 통하여 제 차의 킬로미터당 차량운행비를 계산해 보니 설사 이 차로 한푼도 보상을 못받는다고 해도 옆자리의 경차를 타고 좋은 가격에 판 동료보다 킬로미터당 차량운행비가 쌌기 때문에 손해는 아니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녜, 저에게는 이 차를 팔고 새 차를 사야할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

 

그동안 프리우스를 참 사랑했기에 저는 다음 차도 마침 막 출고된 프리우스 4세대를 구입하고 싶었고 딜러에서도 이때다 싶어서 딜러가 한명 달라붙어 새 차를 시승시켜주며 저를 유혹하기 시작했고 날로 먹겠다는 제 운행불가 프리우스도 30만원이나 쳐주겠다는 후한(^^) 오퍼까지 제시했습니다.  프리우스 4세대는 참 좋더군요. ^^

 

그러나 평소 자기 의견을 별로 개진하는 편이 아닌 아내는 조심스럽게 이번에는 그냥 배터리가 아닌 가솔린 차량으로 가자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하이브리드 차는 아무리 좋아도 언젠가는 배터리가 소모되기 마련이고 정말 폐차까지 타기에는 중간에 배터리 교체라는 관문이 다시한번 닥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집도 저의 완전한 개인적인 취향으로 제 맘대로 선택했고 프리우스 역시 제가 일방적으로 선택한 차였기에 이번에는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무조건 아내가 선택하는 차를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전 최악의 남편은 아니니까요. 훗!

 

그리고 운행이 불가한 제 프리우스는 지난번 두번의 배터리 교체를 하면서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고 저에게 중고 배터리 팩을 판매했던 프리우스 전문가인 업자에게 팔기로 했습니다.  마침 제가 사는 곳에서 4시간 30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위스컨신 주에 살고 있었고 제가 알아본 폐차장에서 제시한 가격중에 제일 높은 가격을 자기가 그대로 준다고 하여서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그리 하기로 하였습니다.  결국 자신의 픽업 트럭 뒤에 프리우스를 달고 갈 견인장비를 장착하고 와서 처음으로 얼굴을 보며 인사를 하였고 그래도 비교적 기분 좋게 보냈습니다.  이 사람이라면 저의 프리우스를 가장 잘 활용할 사람이기도 했고 그동안 저에게 정말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준 그에 대한 저의 선의이기도 했습니다 (남아있는 배터리 팩 27개만 낱개씩 팔아도.. ^^).

 

나중에 이 차를 가져간 후에 이 친구가 배터리를 분해하고 저에게 배터리가 터진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잘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세로로 촘촘하게 배터리 팩들이 배열되어 있고 그 중 중간 우측에 시커멓게 배터리 팩 하나가 3분의 2가 날라간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난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이 배터리 팩들은 상당히 견고한 금속 케이스로 덮여있어서 어디로 튀거나 누가 다치거나 하는 일이 없었던게 천만 다행입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차량에서 그렇게 경고했건만 좀 안다고 자만했던 저의 교만함과 신속히 교체를 하지 않았던 저의 게으름이 합쳐져서 결국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지요.  아무쪼록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저와 같은 일을 겪지 않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지금은 떠나버린 저의 프리우스를 고장 안나기로 소문난 그래서 아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결정한 혼다 어코드가 대체를 하고 있음을 추가로 알려드립니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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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들이라면 혹시 기억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렸을 적 꿈을 이루겠다고 늦은 나이에 미국에 유학을 와서 40대 중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탓에 모아둔 돈도 딱히 없는데다가 그동안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지원하느라 넉넉하지 않은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대학을 졸업한 아들 녀석에게 새 차를 한대 사주기로 했습니다.  


애초에 차를 마련해 주겠다는 특별한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당신은 대학을 졸업하는 4학년 때 아버지가 사주신 자신의 차가 있었는데 당신도 똑같이 아들 녀석에게 최소한 차 한대 정도는 도와주어야 공평하지 않겠느냐' 라는 말에 마땅히 반박할 여지가 없었는데다가 '이제 아들도 자기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 우리가 도와줄 일도 없어서 특별히 더 이상 지원해 줄 일도 없는데 마지막 선물로 차 한대는 마련해 주자' 라고까지 얘기하는 탓에 그냥 그러자고 했습니다.  아내에게 순종하는 삶이 행복한 겁니다. 암요.. 흑흑흑.. ㅠ.ㅠ


모든 일에 깊숙히 관여하시는 한국에 계시는 저의 아버지(아들 녀석의 할아버지)는 현대 차를 사주라고 권유를 하셨지만 그래도 아들 녀석이 가지고 싶어하는 차를 사주는게 낫겠다 싶어 그가 원하는 차로 결정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고장 안 나기로 유명한 만년 베스트 셀러 혼다의 Civic (시빅).


얼마전에 깜짝 놀랄 사고(이 역시 조만간 자세히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로 새 차를 갑자기 마련하면서 이미 이 동네 딜러에게 저 놈 독한 놈이다 소리를 들은지라 이번 가격 흥정은 좀 쉽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가격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참고로 저번에 저에게 차를 판 딜러는 아내에게 '니 남편 정말 두손 두발 다 든 지독한 협상가야 (He is a heck of a negotiator)' 라고 얘기한 것은 개인적으로 최근에 들은 최고의 칭찬으로 삼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데이타와 관련된 일이라 나름 월급루팡 노릇을 하면서 미국의 각 유명한 자동차 포럼에서 실제 아들이 원하는 차를 구매한 가격들을 모조리 수집해서 모은 후에 목표 가격을 정하고 딜러들과 소위 말하는 네고에 들어갔습니다.  반경 200 킬로 이내의 딜러 중에 가격이 가장 좋은 곳 4곳을 선정해서 이메일로 흥정에 들어갔습니다.  지난번 구입한 딜러에 가서 또 살 예정인지라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될 수 되겠지만 그들에게 최소한 다른데에서는 이렇게 준다는 정확한 근거를 보여줘야 되었기에 이 작업은 필수적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의 딜러는 규모가 작은지라 엄청나게 큰 딜러에서 제시하는 가격을 처음부터 제시하지 않는 탓에 이 과정을 해야만 합니다.  참고로 아들 녀석이 원하는 차를 저희 동네 딜러는 4대를 가지고 있고 대도시의 딜러는 무려 160대를 가지고 있더군요.  가격 차이가 상상이 되실 겁니다.


사실 저희 동네에서는 좋은 가격을 위해 대도시로 2-3시간을 운전해 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저의 목표는 오로지 우리 동네에서 전국 최고의 가격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승부욕이 없는 아주 무르기 짝이 없는 게으른 중년 아저씨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는 당신 같은 승부욕은 본 적이 없다고 가끔 얘기를 하곤 해서 반신반의 했었는데 딜러들과 마지막 20 만원을 더 쳐내기 위해 이메일로, 전화로, 또 얼굴을 맞대고 안되는 영어로 논쟁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보면 어쩌면 아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어쨌거나 지루하고 나름 피를 말리는 흥정 끝에 원하는 가격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딜러와 직접 대면을 하고 결국 그 위의 매니저를 끌어드리고 (딜러 선에서 협상이 끝나면 제가 진 겁니다 ^^) 매니저와의 담판을 위해 이 동네 딜러와 제일 라이벌인 40분 거리에 있는 대형 딜러의 가격을 운운해 가면서 심리 작전까지 하면서 이루어낸 쾌거입니다.  참고로 딜러나 매니저나 이 분야에 도가 튼 사람들이라 절대 대화를 길게 가져가면 안됩니다. ^^  심지어 이 동네 사람이 딴 데 가서 사면 되겠느냐 이 동네 지역 발전에도 기여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에 "뭔 기차 바퀴 펑크나는 소리냐, 나 이기적인 사람이다. 30만원 깍아주면 3시간 거리도 간다" 라고 되치기까지 했습니다. ^^


정말 피곤합니다. 이 흥정 과정이... 하지만 미국 최고의 가격을 이 조그마한 시골 딜러에게서 만들어 냈을 때의 쾌감은 정말 대단합니다. ^^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 (그러나 업무에서는 별 존재감이 없는 저를 돌이켜 보면 일을 좀 이렇게 근성있게 하지 라는 반성도 들긴 합니다 ㅠ.ㅠ)


흥정이 되면 오거라 연락해 두었던 아들을 전화로 부르고 (아들과 공동명의라 아들이 있어야 매매가 성립하기도 하지만 니네가 좋은 가격을 안주면 살 생각이 없다는 심리전으로 아들을 일부러 집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 흥정이 끝나고 나서야 차를 처음 둘러보는데 (차를 보지도 않고 흥정부터 시작했습니다 ^^)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아들 녀석에게는 제일 낮은 옵션인 깡통차가 당연히 제격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단계 위의 옵션이 크게 가격 차이가 안나는데 옵션 차이가 어마어마한 겁니다.  구경이 훨씬 큰 타이어에 스포티한 알루미늄 휠, 그리고 전동 선루프에 스마트 키에 원격 시동에 결정타로 요즘 제가 폭 빠져있는 자동차의 최고 혁신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애플 카플레이/안드로이드 오토 동시 지원까지... 이건 정말 한 옵션 낮은 것을 사주는게 바보같은 상황이 되버린 겁니다.


내가 탈 것도 아니고 아들 줄건데 첫 차는 검소하게 시작해야지 암 하고 마음을 굳게 다지고 있었는데 마음이 흔들려 버린 것입니다.  더구나 평소에 차량 옵션은 제일 낮은 것만 선택하자는 아내조차도 이건 정말 너무 차이가 난다 하는 바람에 가격을 다 결정해 놓고 한 옵션을 높은 것을 보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져 버렸습니다.  다행히 매니저가 한 옵션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좋은 가격 (이 역시 미국 최고 싼 가격 ^^)을 제시한 것을 다시 그 자리에서 6 만원을 깍았음에도 매니저가 예상치 않게 수용을 해버리는 바람에 결국 한 옵션을 높여버렸습니다 (6만원 안 깍아줬으면 도로 옵션을 낮추려고 했었거든요 ^^).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아들 녀석이 한 없이 부러워졌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모델에 자기가 원하는 색, 거기다가 온갖 화려한 옵션...  요즘 나오는 차는 스마트 키의 버튼을 두번 누르면 차 유리창 4개와 선루프가 동시에 일제히 내려가서 뜨거워진 차를 빨리 환기시킬 수 있는 기능도 있더군요.  인생의 첫 차를 이렇게 좋은 차로 시작하다니... 그리고 이 모든 차 가격은 제가 연이율 3.34%로 융자를 받았기에 제가 고스란히 4년을 갚아야 하는 빚이 되어 버렸지만 말입니다.  짜식... 나도 이런 아버지 진짜 두고 싶다, 이 녀석아!!



6시간 떨어진 곳에 사는 아들이 한번에 오는 대중교통이 없어 갈아타느라 총 10-12 시간 걸려서 오거나 4시간 정도 걸려서 시카고로 오면 우리 부부가 픽업하러 가는 일은 더 이상 없어도 되겠습니다만 당장 자동차 보험부터 일년에 85만원이 올라버리니 출혈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난 첫 차가 중고차였다구!! 이 녀석 차는 이게 뭐야!!" 하고 볼멘 소리를 아내에게 해대니 "그 시대에 차를 모는 대학 갓 졸업한 사람이 몇명이냐 있었냐고??  같은 상황에서 비교를 해야지!!" 라고 반격하는 아내에게 더 이상 찍 소리도 못했습니다.


정작 이 세상에서 젤 무뚝뚝한 아들 녀석에게는 'Thanks!' 한마디 들은게 전부 다이지만 원래 이 녀석이 그런 녀석이라 속으로는 엄청 감사하겠지 하고 혼자 자위하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정말 애비 노릇 하기 힘듭니다.  바로 차량을 보험에 등록하고 집까지 차를 몰고 온 아들 녀석에게 차키를 받아서 딸 아이랑 함께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나가면서 슬쩍 제가 차를 몰아보니 눈물나게 좋습니다.  요즘 차는 왜 이리 멋지게 나오는 겁니까!  ㅠ.ㅠ


졸지에 엄청난 선물을 받은 아들을 한없이 부러워 하는 속좁은 아버지가 되어버렸습니다만 가족 여행 가본 적도 거의 없이 고등학교까지 자기 방도 갖지 못하고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한 삶 속에서 조용히 숨죽여 살아야 했던 아들 녀석에게 제대로 된 첫번째 선물을 줄 수 있는 형편이라는게 (비록 빚으로 남아있지만) 감사하기도 합니다.


원래 이렇게 길게 쓰려고 했던게 아닌게 제가 그렇습니다. ^^  짜식 진짜 좋겠다...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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