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제목을 정하면서 '애국자' 라는 단어를 선택하고 나서 혼자 웃었습니다.  참 구태의연한 단어지 않습니까? 이제는 5 공화국 시절에나 어울릴법한 그런 단어.. 하지만 저 단어 이외에 다른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얘기도 시작하기 전에 서론이 늘어지겠네요. ^^


저는 아직도 한국에 살고 있고 잠깐 미국에 들린 것 같은 기분인데 교포 혹은 동포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더군요. 미국 생활 20년이 멀지 않으니..  그래도 매일 인터넷을 뒤지면서 한국의 이야기들을 듣고 읽고 하다보니 때로는 한국에 그냥 있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가 외국에 살고 있구나 가장 실감이 날때는 아이들을 볼 때인 것 같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하나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나머지 하나도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될만큼 이곳에서 오래 자란 애들이라 외부의 친구들 과 소통을 하거나 자기 둘이 이야기를 할 때는 영어를 주로 쓰곤 합니다.  사실 이 아이들에게 제일 언어는 영어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매우 잘 구사하는데 이렇게 만드는게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마치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의 자녀를 영어에 능통하게 키우는 것만큼 미국에서 자녀를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마나 대화를 하는 것은 어떻게 윽박질러서라도 가능한데 한글을 읽고 쓰게 하는데는 '한글 학교' 의 도움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곳에 살아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국의 한인들이 어느 정도 인구를 형성하고 사는 도시들에는 예외없이 한글학교들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들 대부분은 정부단체나 기관의 도움없이 모두 그 동네 사는 한국 분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들입니다 (혹시라도 나라에서 세운 한글학교가 있는 곳에 살고 계신 분들께서는 댓글로 알려주세요 ^^).  인구가 10만정도에 불과한 제가 사는 도시에도 제법 오래된 한글학교가 있는데요 (아내가 13년을 선생으로  일했으니 그보다는 오래 되었겠지요) 이곳에 사는 분들 및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에서까지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수업을 듣곤 합니다.  보통 자녀분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 토요일 오전에 수업을 하는데 저희 동네는 오전 10시 20분에서 1시 20분까지 3시간 수업을 하고 3살짜리부터 5학년까지 반이 있습니다 (지역마다 다릅니다).  이곳에서 미국에 사는 한국인 자녀들이 한글을 배우고 한국의 역사를 배웁니다.  선생님들은 주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수업료를 약간 받는 걸로 명목상의 사례를 드리기도 합니다) 선생님으로 봉사해 주시는 분들 중에는 감사하게도 꼭 한국에서 실제 교사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어서 이런 분들에게 교육의 노하우를 배우기도 합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영사관에서 배포하는 해외동포용 한글 교과서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의 교과서를 그대로 가져다  쓰기도 하고 선생님들이 스스로 교재들을 만들기도 합니다.  저의 아내도 한동안 아이들이 흥미를 끌만한 교재들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기도 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파워포인트나 PDF 를 만드는 법을 몰랐던 아내를 도와주느라 알게 되었습니다).  또 여러가지로 한국에 비하여 서적이나 기타 자료들이 많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단지 한글학교 뿐만이 아니구요... (아직도 서론이었어? 하고 털썩 주저않는 분들 보이는데 힘내세요. 곧 사진도 나오고 그럴 계획입니다. 제 글이 원래 좀 장황하고 그렇습니다 ^^).


몇해 전에 저에게 기쁜 일이 한가지 있었는데요, 바로 제가 온라인으로 알고 지내던 회원 두분이 미국의 아주 작은 소도시에 사는 저희 동네에 방문을 해주셨습니다. 물론 저희 집만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지만.. ^^  그 중 한분과 우연히 이곳에 있는 한글 학교에 대하여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분께서 집안이 출판 관련일을 한다는 얘기만 어렴풋이 듣고 그러시냐고 의미있는 일을 한다고 얘기를 드렸었는데...


두둥.......






남들은 차떼기를 하는데 쓴다는 그 묵직한 상자가 한국으로부터 이곳까지 날라온 것입니다.  이만한 무게와 부피를 가진 소포를 받아본 적이 없어 당혹스러웠습니다. ^^


놀부가 기다리던 박 따는 심정으로 얼른 뚜껑을 열어보니...





상자 가득 책이 담겨있습니다.

주섬 주섬 꺼내보니 분량이 상당합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때가 이 분이 한국으로 돌아간지 얼마되지 않았을 터인데 이렇게 특급 쾌속 배송으로 이만한 부피와 분량을 미국으로 보내려면 주변분들에게 여쭈어 보니 30에서 40만원은 족히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책이야 어떻게든 구하셨다고 해도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 일일이 포장을 해서 미국까지 보내시다니 그 성의와 정성에 감탄했습니다.  한참 고심을 했습니다.  상당한 고퀄의 책들입니다. 그림책도 있고 학습 만화도 있고 집의 책장에 꽂아두면 정말 멋질 한국의 문화유산 및 농기구들에 관한 도감도 있습니다.   제가 있는 학교 (일리노이 주립대학 어바나-샴페인 캠퍼스) 는 공립학교 중 장서량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책을 가진 도서관이 있습니다.  참고로 기관을 따지지 않는다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책을 가진 곳은 미국 국회 도서관이구요, 사립학교를 포함하면 하바드 대학이 일위구요, 저희 학교는 총 4위입니다.


처음에는 책이 많으니 반절은 일리노이 대학 아시아 도서관에 기증을 하고 반은 한글학교에 해야겠다 생각을 하고 학교 도서관에 알아봤더니 아동용 도서는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보내주신 책을 모두 한글학교에 기증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보내주신 분의 흔적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었습니다.  적당히 싸인펜으로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처음에는 라벨 용지에 레이져 프린터로 인쇄를 해서 붙일까 생각을 하다가 어떤 분은 큰 돈을 들여서 보내주시는데 좀 신경좀 써드려야지 않겠느냐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나름 머리를 굴려서 인쇄업체에 스티커 제작을 맡겼습니다.  인터넷 업체들 생각보다 싸더군요. ^^


두둥...


이렇게 (제가 보기에) 예쁜 스티커가 도착을 했습니다.





좀 더 클로즈 업을 해보면..





50을 바라보는 '디자인 따위는 개나 줘버렷!' 수준의 아저씨가 만든 것인지라 여러면에서 세련미는 부족하지만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겁니다. ^^


책의 일부처럼 보이도록 하자는 의도에서 한국의 은유적인 미가 배어있는 세모시 옥색치마를 테마로 고른 색깔이며 아래의 사진처럼 이렇게 커버를 넘기고 난 첫 페이지에 살포시 붙여 놓았습니다.  제 눈에는 아름다웠습니다. 후훗..






뿌듯함에 요즘 유행한다는 탑쌓기 인증샷도 해보았습니다. ^^





그리고 이렇게 소중하게 바다를 건너온 책들은 한글학교에 전달이 되었습니다.  바다건너 소중한 선물을 받은 한글학교 선생님들께서는 가만 있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감사의 마음을 제대로 전할때 쓴다는 땡큐카드를 보내주셨습니다.  바다 건너로 넘어가도 시들 염려가 없다는 바로 그 카드..




이랬습니다.  제가 아는 애국자 한 분이 하신 일은...  제가 이 분에게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특유의 시크함 때문이었습니다. 저란 사람, 연필 한자루라도 어디에 기증하고 나면 꼭 연락을 합니다.  '받는 분이 좋아하던가요?',  '뭐 별것 아니지만 제 마음을 좀 담아보았습니다',  '그 것 나름 신경쓴 연필인데 마음에 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드립의 향연을 날리며 제 기대에 맞는 대답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그 대답이 돌아오면 흡족해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기증해 주신 분...  제가 잘 받았다고 카톡을 드렸는데도 그랬냐고 그리고 그게 끝입니다. 어랏?  그 후에 다른 말씀이 없으십니다. 반응이 어떤지 아이들은 좋아하는지 선생님들은 감사해 하던지 한번도 묻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게 더 죄송해서 이메일로도 감사를 드리고 몇개월 지나서도 다시 카톡 드려서 고맙다고 하여도 그냥 대답만 하고 끝입니다.


세상엔 이런 분들이 있더라구요.  잘 생각해 보면 미국 전역의 수많은 도시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한인 2세들에게 대한민국과 한글을 깨우쳐 주시는 분들이나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먼곳까지 이렇게 두고 두고 남을 귀한 자료를 보내고도 저처럼 나대는 사람이 아니면 다른 분들이 알지도 못하는 선행을 하는 진짜 애국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분들이 정말 대한민국의 힘이고 진짜 한류라고 생각합니다.


윤 선생님 그리고 보리 출판사 여러분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말 큰 일을 하신 겁니다.  감히 3백만 재미동포를 대표하여 큰 절 드립니다. 이렇게 혼란한 시대에 선의를 보여주신 분을 소개드리게 되어 저도 정말 기쁩니다.  



샴페인 드림



P.S. : 사실 이 책을 기증받은게 아주 오래 전입니다. 그런데 저의 게으름으로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이제야 보고를 드리게 된 것을 기증하신 분에게 참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밀린 숙제를 끝낸 기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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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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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thinkofme 2013.06.06 23: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으로 물건을 몇번 보내봐서 아는데...
    정말 물건보다 배송료가 더 비싼 경우가 있어서 몇번 좌절했던
    기억이 있네요.


    뭐 돈이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거지 하지만.
    저렇게 책을 고르고 그걸 우체국가서 보내는거 자체가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잖아요..
    거기다 적은 돈도 아닌거 같고..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 BlogIcon 샴페인 2013.06.12 15: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아무나 못할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감동받았고 그 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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