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펠링 비 (Spelling Bee) 를 들어보셨나요?  이름에서 연상하실 수 있다시피 영어 단어를 불러주면 그 단어의 스펠링을 정확히 대는 철자 맞추기 대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언어와 한글처럼 완벽한 표음 (phonetic) 체계의 글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대회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 한국에 계실 때나 한국인과 대화를 나눌 때 여러분들 이름이나 사용하는 단어의 철자를 불러줘본 적이 있으세요? 예를 들어 대한민국이라면 '디귿' '애' 히읗'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아마도 까끔 'ㅖ' 가 여이인지 야이인지 정도 알려주는게 어쩌다 한번 있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영어권, 특히 북미권에서는 스펠링을 불러줘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특히 전화로 주문을 할 때) 상대방의 명함을 받으면 어떻게 이름을 읽어야 하는지도 물어봐야할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의 재미있는 예를 들자면 메이져리그 프로야구팀으로 유명한 아틀란타 브레이브즈에서 오랫동안 빼어난 성적을 내다가 작년에 LA 다져스로 이적한 앤드류 존스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andruw jones

이름 철자 때문에 고생했을 Andruw Jones


흔히 앤드류하면 영어 철자가 Andrew 이고 널리 쓰이는 이름이기 때문에 다들 알고 있는 철자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친구의 이름은 Andruw 입니다.  이 선수를 만나본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살아오면서 전화나 상대방에게 받아적기 위하여 이름을 얘기할 때 얼마나 철자를 많이 불러줘야 했을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제가 소시적에 음악을 열심히 들을 때 좋아했던 밴드 중에 'Free Bird' 라는 곡으로 유명한 Lynyrd Skynyrd 라는 y 자가 과도하게 많이 들어간 밴드가 있습니다. ^^  이들의 정확한 발음은 레너드 스키너드인데 (린니드 스킨니드라고 읽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이들의 데뷰 앨범 타이틀이 흥미롭게도 'pronounced 'lĕh-'nérd 'skin-'nérd (레너드 스키너드라고 발음되는)' 입니다.  첫 앨범 타이틀이 자기 밴드 이름을 어떻게 읽느냐 하는 것을 알리는 것이니 지금 생각해도 참 재미있습니다.  거꾸로 '레너드 스키너드' 라는 발음을 들었을 때 위의 스펠링을 제대로 맞추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참고로 이 해괴한(^^) 이름은 밴드 멤버들의 깐깐하고 장발 단속을 과도하게 했던 고등학교 체육선생인 Leonard Skinnerd 의 이름을 변형한 거랍니다. ^^  제가 전공한 컴퓨터 쪽의 유명한 알고리즘인 Dijkstra 알고리즘은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 어떻게 읽어야할지 결국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할 정도였습니다.

Lynyrd Skynyrd

Lynyrd Skynyrd 첫번째 앨범 (pronounced 'lĕh-'nérd 'skin-'nérd)


이렇게 영어의 철자가 어렵고 이를 대는게 어린 학생들의 또 다른 지식의 척도가 되다보니 우리나라의 예전에 유행했던 장학퀴즈처럼 Spelling Bee 가 전국 규모의 대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각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학년별로 스펠링 비 대회를 열어서 학교 대표를 뽑고 각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들이 주단위로 모여서 주 대표를 뽑은 후에 대망의 미국 전국 스펠링 비 대회 (National Spelling Bee cometition) 이 열리게 됩니다.  현재 전국 대회의 명칭은 Scripps National Spelling Bee 이며 중학교까지의 학생이 학년 구분 없이 모여 한 자리에서 경연을 하며 이는 미국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인 ESPN 에서 생중계를 하고 결승전은 미국 공중파 방송인 ABC 에서 전국으로 중계를 하는 큰 대회이기도 합니다.  원칙적으로 외국 참가자들에게도 문호가 열려있는데 (물론 각 국가의 지역 예선을 거쳐야 합니다) 한가지 놀라운게 아시아 국가에서 이 대회에 참석자를 내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곳에 사는 한국인이 아니고 한국에서 참석하는 한국 학생들 말입니다.  정말 대단한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입니다.  ^^;;

National Spelling Bee

Scripps National Spelling Bee 결승전 장면


저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매년 학교 대표를 뽑기 위한 스펠링 비 대회를 개최하는데 단순하게 암기를 잘 아는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아이들이 학교 대표로 뽑히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한가지 부모로써 힘든 점이 있다면 저희 아이들이 속한 학교 연합에서 열리는 주 단위 결승은 언제나 이곳에서 3시간 반이나 떨어진 Rockford 에서 열리기 때문에 제가 회사를 휴가를 내고 아이를 데리고 참가해야 한다는 점이지요.  더구나 대회 당일 8시 30분가지 등록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새벽 5시가 되기 전에 이곳을 출발해야 한다는 애로점이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전날 도착해서 하룻밤을 그곳에서 보내고 편안히 출전하는데 저는 고생도 시합의 일환이라고 아이에게 얘기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스리슬쩍 감추고 있습니다 ^^).  그래서 올해 대회같은 경우에는 내심 아이에게 작년에 출전을 했으니 좀 쉬엄쉬엄 해라 하고 언질을 주었건만 경쟁심이 강한 저의 딸아이의 특성상 시합만 시작하면 승부욕을 발휘하는 바람에 또 다시 먼길을 다녀와야만 했습니다.  ^^;;

Spelling Bee

경기전 여유롭게 웃고 있는 딸 아이. 초조해 하는 여인은 누구? ^^


저의 가족은 미국에 살고 있지만 집에서는 한국말만을 사용하게 하고 있는 탓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게 됩니다) 다른 미국 학생들에 비하여 아이들이 불리한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스펠링 비 대회를 준비시키는 저희 내외가 영어 발음이 좋지 않아 어설픈 발음으로 단어를 읽어주면서 대회를 대비시키는데 어려움이 있어 올해부터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에게 후보 단어들을 읽게 해서 이를 녹음시킨 다음에 들려주며 공부를 하였습니다.  전국 대회를 제외하고는 각 학년에 해당하는 후보 단어집이 있어 이를 공부해 경쟁을 하며 대회에 나가서 이들 단어가 다 소진되고 나면 Unpublished Words 라고 하여 미리 알려주지 않았던 단어들로 경쟁을 하게 됩니다 (기본 제시되는 후보 단어수도 꽤 많습니다).  대개 주 단위의 대회에 나오는 학생들의 경우 최종 4명이 남게되는 순간이 되면 unpublished words 로 경쟁을 하게 됩니다.  막상 대회에 나가서 한명 한명 앞에 나가 사회자가 읽어주는 단어의 철자를 대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자면 그 긴장감이나 초조함이 왠만한 스포츠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특별한 학력 경시 대회가 없는 미국에서는 이 스펠링 비가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평가하는 또 다른 척도가 되기 대문에 전국 대회에 나가게 되는 부모들의 노력과 열정은 상상을 초월하게 됩니다.  이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진 'Spellbound' 라는 영화에 아주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영화에 등장하는 인도계 학생 부모가 인도의 본국에 5천명의 사람을 사서 아이의 우승을 위해 매일 기도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 적이 있습니다.  

Spellbound

스펠링 비 대회를 담은 다큐멘터리 Spellbound. Everyone wants the last word.


경기방식은 간단합니다.  제비 뽑기를 통해서 순서를 정한 학생들이 시험자가 불러주는 단어와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힌트로 들은 후에 또박 또박 철자를 대면 됩니다.  경기장에는 시험자 외에 네명의 심사위원이 있으며 (각각의 라운드를 체크하는 사람, 올바로 스펠을 대는지 검증하는 사람 그리고 전 과정을 녹음하는 사람) 판단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 이들 전원이 상의를 하게 됩니다.  한가지 가혹한 것은 한번 입밖에 낸 스펠은 주워담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철자를 아는 단어라도 잘못 한자라도 발음하게 되면 취소할 수가 없고 바로 탈락입니다.  출전한 선수 전원이 한번씩 기회를 가지는 것을 라운드라고 하며 최후의 4명이 남을때까지 계속해서 진행합니다.  이들 4명이 Final Four 로서 상을 받게 되며 최종 2명이 남았을 때는 두개의 단어를 연이어 맞추어야만이 1등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아내는 매 라운드마다 너무 긴장이 되는지 저희 딸 아이 순서가 되면 눈을 질끈 감고 있더군요.  다행히 딸 아이가 Final Four 까지 진출한 후에 총 22 라운드를 맞추어 주에서 3위에 입상하여 아이 엄마가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경쟁심이 여간이 아닌 딸 아이는 자기에게만 어려운 단어가 나와서 1등을 못했다고 속상하여 눈물을 보이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딸아이게 주어진 단어는 목록에 없었던 단어중의 하나인 ominous 였고 1등과 2등에게 주어졌던 단어들은 inhumanity 와 troublesome (둘 다 딸 아이가 아는 단어) 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딸 아이에게 그게 인생이다라고 얘기해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3위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Participation Award

출전한 모든 학생은 각 학교 선발전 우승자라서 참가상을 받습니다.


3학년인 딸 아이는 State 단위가 마지막이기 때문에 더 이상 진출할 것이 없었지만 스펠링 비 경연장에서는 학년별 경연을 마친 5학년 이상의 상위 입상자들이 모여서 학년에 구분 없이 전국 대회에 나가는 최종 한명을 선정하는 대회가 오후에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서 우승하는 친구는 Washington D.C. 에서 열리는 National Spelling Bee Contest 에 나가서 제대로 방송을 타게 되겠지요.

이렇게 올해의 스펠링 비 행사도 막을 내렸습니다.  아이들이 피아노 리사이틀을 통해서나 이런 대회를 통해 긴장감 넘치는 무대에 서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경험을 배워나가는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스펠링 비를 통해서 우리 말과 글이 얼마나 우수한지 더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말로 얘기하면 바로 적어낼 수 있는 우리글, 정말 과학적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겠습니다.  그야말로 세종대왕 만만세입니다.

웹포토 출처: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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