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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2 잊지 못할 식사 한끼 19


별로 놀거리나 유흥시설이 많지 않은 미국 생활에서 낙이 있다면 가끔 사람들을 불러서 같이 식사를 하거나 또는 남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 주말을 이용해서 공원등에서 바베큐로 지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멈추지 않는 수다를 떠는 것 정도가 되겠습니다.  ^^;;

제가 생활이 바빠지고 아내도 두 아이의 라이드와 과외활동으로 바빠지면서 예전에 비해서 지인을 초대해서 식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우리 가족끼리만 맛난 음식 해주는 아내의 작품(^^)을 즐기는 정도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식사초대를 받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의 요리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글로 한번 남겨 봅니다.  참고로 이 분은 제가 온라인을 통해서 우연히 알게된 분인데 모든 면에서 귀감이 되는 참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초대를 받아서 식사를 하려고 하자 처음으로 압도된 것은 식탁의 데코레이션이었습니다.  사실 저희 가족 자체가 데코레이션을 하고 먹어본 적도 없으려니와 개인적으로 식탁 데코레이션은 음식에서 밀리는 것을 장식으로 만회하려는 기술이 아닌가 하는 선입관이 있어 별로 깊은 인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대리석과 비슷한 질감의 돌판위에 선이 매우 날렵한 잎이 하나 올라와 있으니 첫인상이 매우 강렬하더군요.  심상치 않은 내공이 느껴집니다.  미국에서는 흔히 Zen Style 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곤 하는데 정말 예뻤습니다. 이는 이후에 올라오는 음식들 사이에 놓여져 있는 예쁜 꽃들과 버무려져서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아, 그런데 제가 남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가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다 보면 모임의 분위기가 많이 흐트러지게 되니까요.  하지만 이 날은 제가 새롭게 리뷰를 해야할 카메라 (Fuji Finepix F70 EXR) 를 시험해 볼 요량으로 카메라 테스트를 하느라 찍게 된 것이지요.  만약 디카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면 제가 경험한 멋진 작품들을 기록으로 남겨놓을 찬스가 없었기에 지금은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식탁옆에 스탠드가 분위기 있게 켜져 있어서 디카 테스트 겸 찍어본게 다음의 사진입니다 (4장을 자동으로 연속으로 찍어서 하나로 합성하는 방법으로 저조도를 극복하도록 되어있는 후지 카메라의 신기술 중 하나입니다).


애피타이져, 즉 전채요리로는 태국식당이나 베트남 식당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Spring Roll 이 나왔습니다.  야채와 새우를 월남쌈에 자주 쓰이는 라이스 페이퍼와 같은 투명하고 얇은 그러나 쫀득쫀득한 피로 말아준 것인데요, 재료들의 싱싱함과 다소 심심한 맛을 감싸주는 새우가 잘 어우려져 제대로 입 맛을 돋구워 주더군요.  야채의 맛 하나 하나가 살아있어 빠삭 빠삭한 식감이 예술이더군요.  브라보 !!


드디어 이날 제가 가장 감탄했던 음식중의 하나였던 참치 다다키(タタキ) 가 나왔습니다. 다다키라고 하는게 참치의 살 바깥쪽만 살짝 구어내어 바깥쪽은 참치 스테이크 맛을, 안쪽으로는 참치 회 맛을 즐기는, 보기에는 쉽지만 많은 내공이 필요한 음식인데요 (그냥 참치를 구워내는 것만 아니라 각종 소스로 살짝 맛이 진하지 않게 재워내는(marinated) 전처리 과정도 필요합니다) 이 날의 다다키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이때부터 제가 말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그냥 입으로 계속 밀어넣기만 했습니다. ^^;;  분명히 참치 재료 자체는 최상급이 아니었습니다만 (제가 사는 곳은 바다가 먼 내륙입니다) 이를 적절함 재움과 굽기로 보완을 한 훌륭한 솜씨였습니다.  겉에 더해진 소스가 강렬했다면 다다키 맛이 죽어버렸을 텐데 최대한 담백하게 만들어진 탓에 다다키 고유의 맛을 투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정말 '우왕ㅋ굿ㅋ' 이었습니다.


와, 다다키가 메인 요리 (entree) 인가 싶더니 치라시 스시 (ちらしすし) 가 연이어 나옵니다.  흔히 일본식 회덥밥이라고도 불리우는 치라시 스시는 주먹초밥(스시)를 펼쳐놓았다고 생각하면 되는 음식인데요 그래서 윗쪽에 있는 해물 종류 (이 날은 날치알 위주) 밑에 깔려있는 밥의 품질이 요리를 좌우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식 초밥은 고슬한 밥에 초대리를 한 것인데 밥의 고슬한 정도와 초대리의 시큼달큼한 정도가 매우 중요한데 정말 딱 좋았습니다.


이렇게 치라시 스시까지 먹고 나니 디카의 성능 테스트는 안중에도 없어졌습니다.  사이 사이에 나온 야끼소바나 다다키 사진 뒤로 보이는 치킨 사타이(satay) 그리고 마지막에 소위 '식사'로 나온 스끼야끼 때에는 제가 이성을 잃어버려서 사진을 아예 찍을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훌륭한 음식에 그냥 무릎을 꿇은 셈 되겠습니다.

이 날이 사실은 함께 한 가족중의 자녀 한명 생일이어서 케익에 촛불을 켜고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디카의 Low Light 모드 성능을 테스트 해보고 싶어서 찍어본 사진입니다.  이 케익 역시 오늘의 요리를 준비해 주신 분이 직접 만드신 겁니다.  개인적으로 케익의 단 맛을 무척 싫어해서 케익을 입에도 대지 않는데 이 날은 한 조각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달지 않은 쵸코 케익, 맛있게 만들기 힘든 종목입니다. ^^;;


약간 노출 오버를 해서 찍힌 것이지만 역시 분위기가 괜찮아 추가해 봅니다.


사실 저희 가족은 아내가 어느 수준 이상의 요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보니 식사 초대에 가서 깜짝 놀라고 이런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더구나 제가 고향이 전주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볼 기회가 좀더 많다 보니 음식맛으로 화들짝 하는 경우가 점점 적어지고 있는데 이 날은 정말 요즘 유행하는 말로 깜놀이었습니다.  7막 7장으로 유명한 국회의원 홍정욱씨의 도를 넘치는 표현으로 유명한 '나는 미처 내 의식을 방어할 겨를도 없이 현실과 표면의 극복이라는 아방가르드의 명제 앞에 십자군처럼 무릎끓어 복종했다' 라는 현학적인 문장이 떠오를만큼 인상적인 식사들이었습니다.  일본의 정통 음식을 미국 중부의 가정식탁에서 맛볼 수 있었던게 제일 감동이었습니다.

참고로 이날 찍은 사진을 만들어준 F70 EXR 도 소개합니다.  천만 화소 (10메가 픽셀) 카메라지만 최저 해상도 (3백만 화소) 로 낮추어 찍었으며 resize 와 sharpness, 그리고 약간의 level 조정만 들어간 사진들입니다.  이제는 똑딱이 카메라 (point-and-shoot 이라고 불리우는 소형 자동 디카) 들도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리뷰용으로 무료로 증정받은 것인데 앞으로 들고 다니기 무거운 DSLR 을 대신하여 좋은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합니다.  디카가 넘쳐나는 탓에 명목상으로 아내 소유로 하였습니다. ^^

F70 EXR

<웹포토: Fuji Finepix F70 EXR>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이렇게 멋진 음식을 제공해주신 분께 다시한번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사진에 있는 요리들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야끼소바, 스끼야끼도 있었고 후식으로 팥빙수까지 먹었습니다.  ^^   

사실 하나 하나의 식사 초대가 초대하신 분의 정성과 사랑이 깃들여져 있어 지금까지 맛있지 않거나 별로였던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들어간 재료, 준비하시느라 걸린 시간, 격조있던 데코레이션, 그리고 깊고 수준있었던 이 날의 요리들을 생각해 보면 이분의 사랑이 느껴져 제가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아도 되나 싶습니다 (제가 아니라 아내 때문이었다면 골룸 ^^).  앞으로 어찌 갚을지가 두려울 따름입니다.  ^^;;  매우 인상적인 저녁이었습니다.  

<웹포토 출처>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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