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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05 아들 녀석에게 인생의 첫차를 사주었습니다 2

저를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들이라면 혹시 기억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렸을 적 꿈을 이루겠다고 늦은 나이에 미국에 유학을 와서 40대 중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탓에 모아둔 돈도 딱히 없는데다가 그동안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지원하느라 넉넉하지 않은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대학을 졸업한 아들 녀석에게 새 차를 한대 사주기로 했습니다.  


애초에 차를 마련해 주겠다는 특별한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당신은 대학을 졸업하는 4학년 때 아버지가 사주신 자신의 차가 있었는데 당신도 똑같이 아들 녀석에게 최소한 차 한대 정도는 도와주어야 공평하지 않겠느냐' 라는 말에 마땅히 반박할 여지가 없었는데다가 '이제 아들도 자기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 우리가 도와줄 일도 없어서 특별히 더 이상 지원해 줄 일도 없는데 마지막 선물로 차 한대는 마련해 주자' 라고까지 얘기하는 탓에 그냥 그러자고 했습니다.  아내에게 순종하는 삶이 행복한 겁니다. 암요.. 흑흑흑.. ㅠ.ㅠ


모든 일에 깊숙히 관여하시는 한국에 계시는 저의 아버지(아들 녀석의 할아버지)는 현대 차를 사주라고 권유를 하셨지만 그래도 아들 녀석이 가지고 싶어하는 차를 사주는게 낫겠다 싶어 그가 원하는 차로 결정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고장 안 나기로 유명한 만년 베스트 셀러 혼다의 Civic (시빅).


얼마전에 깜짝 놀랄 사고(이 역시 조만간 자세히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로 새 차를 갑자기 마련하면서 이미 이 동네 딜러에게 저 놈 독한 놈이다 소리를 들은지라 이번 가격 흥정은 좀 쉽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가격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참고로 저번에 저에게 차를 판 딜러는 아내에게 '니 남편 정말 두손 두발 다 든 지독한 협상가야 (He is a heck of a negotiator)' 라고 얘기한 것은 개인적으로 최근에 들은 최고의 칭찬으로 삼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데이타와 관련된 일이라 나름 월급루팡 노릇을 하면서 미국의 각 유명한 자동차 포럼에서 실제 아들이 원하는 차를 구매한 가격들을 모조리 수집해서 모은 후에 목표 가격을 정하고 딜러들과 소위 말하는 네고에 들어갔습니다.  반경 200 킬로 이내의 딜러 중에 가격이 가장 좋은 곳 4곳을 선정해서 이메일로 흥정에 들어갔습니다.  지난번 구입한 딜러에 가서 또 살 예정인지라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될 수 되겠지만 그들에게 최소한 다른데에서는 이렇게 준다는 정확한 근거를 보여줘야 되었기에 이 작업은 필수적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의 딜러는 규모가 작은지라 엄청나게 큰 딜러에서 제시하는 가격을 처음부터 제시하지 않는 탓에 이 과정을 해야만 합니다.  참고로 아들 녀석이 원하는 차를 저희 동네 딜러는 4대를 가지고 있고 대도시의 딜러는 무려 160대를 가지고 있더군요.  가격 차이가 상상이 되실 겁니다.


사실 저희 동네에서는 좋은 가격을 위해 대도시로 2-3시간을 운전해 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저의 목표는 오로지 우리 동네에서 전국 최고의 가격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승부욕이 없는 아주 무르기 짝이 없는 게으른 중년 아저씨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는 당신 같은 승부욕은 본 적이 없다고 가끔 얘기를 하곤 해서 반신반의 했었는데 딜러들과 마지막 20 만원을 더 쳐내기 위해 이메일로, 전화로, 또 얼굴을 맞대고 안되는 영어로 논쟁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보면 어쩌면 아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어쨌거나 지루하고 나름 피를 말리는 흥정 끝에 원하는 가격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딜러와 직접 대면을 하고 결국 그 위의 매니저를 끌어드리고 (딜러 선에서 협상이 끝나면 제가 진 겁니다 ^^) 매니저와의 담판을 위해 이 동네 딜러와 제일 라이벌인 40분 거리에 있는 대형 딜러의 가격을 운운해 가면서 심리 작전까지 하면서 이루어낸 쾌거입니다.  참고로 딜러나 매니저나 이 분야에 도가 튼 사람들이라 절대 대화를 길게 가져가면 안됩니다. ^^  심지어 이 동네 사람이 딴 데 가서 사면 되겠느냐 이 동네 지역 발전에도 기여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에 "뭔 기차 바퀴 펑크나는 소리냐, 나 이기적인 사람이다. 30만원 깍아주면 3시간 거리도 간다" 라고 되치기까지 했습니다. ^^


정말 피곤합니다. 이 흥정 과정이... 하지만 미국 최고의 가격을 이 조그마한 시골 딜러에게서 만들어 냈을 때의 쾌감은 정말 대단합니다. ^^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 (그러나 업무에서는 별 존재감이 없는 저를 돌이켜 보면 일을 좀 이렇게 근성있게 하지 라는 반성도 들긴 합니다 ㅠ.ㅠ)


흥정이 되면 오거라 연락해 두었던 아들을 전화로 부르고 (아들과 공동명의라 아들이 있어야 매매가 성립하기도 하지만 니네가 좋은 가격을 안주면 살 생각이 없다는 심리전으로 아들을 일부러 집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 흥정이 끝나고 나서야 차를 처음 둘러보는데 (차를 보지도 않고 흥정부터 시작했습니다 ^^)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아들 녀석에게는 제일 낮은 옵션인 깡통차가 당연히 제격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단계 위의 옵션이 크게 가격 차이가 안나는데 옵션 차이가 어마어마한 겁니다.  구경이 훨씬 큰 타이어에 스포티한 알루미늄 휠, 그리고 전동 선루프에 스마트 키에 원격 시동에 결정타로 요즘 제가 폭 빠져있는 자동차의 최고 혁신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애플 카플레이/안드로이드 오토 동시 지원까지... 이건 정말 한 옵션 낮은 것을 사주는게 바보같은 상황이 되버린 겁니다.


내가 탈 것도 아니고 아들 줄건데 첫 차는 검소하게 시작해야지 암 하고 마음을 굳게 다지고 있었는데 마음이 흔들려 버린 것입니다.  더구나 평소에 차량 옵션은 제일 낮은 것만 선택하자는 아내조차도 이건 정말 너무 차이가 난다 하는 바람에 가격을 다 결정해 놓고 한 옵션을 높은 것을 보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져 버렸습니다.  다행히 매니저가 한 옵션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좋은 가격 (이 역시 미국 최고 싼 가격 ^^)을 제시한 것을 다시 그 자리에서 6 만원을 깍았음에도 매니저가 예상치 않게 수용을 해버리는 바람에 결국 한 옵션을 높여버렸습니다 (6만원 안 깍아줬으면 도로 옵션을 낮추려고 했었거든요 ^^).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아들 녀석이 한 없이 부러워졌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모델에 자기가 원하는 색, 거기다가 온갖 화려한 옵션...  요즘 나오는 차는 스마트 키의 버튼을 두번 누르면 차 유리창 4개와 선루프가 동시에 일제히 내려가서 뜨거워진 차를 빨리 환기시킬 수 있는 기능도 있더군요.  인생의 첫 차를 이렇게 좋은 차로 시작하다니... 그리고 이 모든 차 가격은 제가 연이율 3.34%로 융자를 받았기에 제가 고스란히 4년을 갚아야 하는 빚이 되어 버렸지만 말입니다.  짜식... 나도 이런 아버지 진짜 두고 싶다, 이 녀석아!!



6시간 떨어진 곳에 사는 아들이 한번에 오는 대중교통이 없어 갈아타느라 총 10-12 시간 걸려서 오거나 4시간 정도 걸려서 시카고로 오면 우리 부부가 픽업하러 가는 일은 더 이상 없어도 되겠습니다만 당장 자동차 보험부터 일년에 85만원이 올라버리니 출혈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난 첫 차가 중고차였다구!! 이 녀석 차는 이게 뭐야!!" 하고 볼멘 소리를 아내에게 해대니 "그 시대에 차를 모는 대학 갓 졸업한 사람이 몇명이냐 있었냐고??  같은 상황에서 비교를 해야지!!" 라고 반격하는 아내에게 더 이상 찍 소리도 못했습니다.


정작 이 세상에서 젤 무뚝뚝한 아들 녀석에게는 'Thanks!' 한마디 들은게 전부 다이지만 원래 이 녀석이 그런 녀석이라 속으로는 엄청 감사하겠지 하고 혼자 자위하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정말 애비 노릇 하기 힘듭니다.  바로 차량을 보험에 등록하고 집까지 차를 몰고 온 아들 녀석에게 차키를 받아서 딸 아이랑 함께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나가면서 슬쩍 제가 차를 몰아보니 눈물나게 좋습니다.  요즘 차는 왜 이리 멋지게 나오는 겁니까!  ㅠ.ㅠ


졸지에 엄청난 선물을 받은 아들을 한없이 부러워 하는 속좁은 아버지가 되어버렸습니다만 가족 여행 가본 적도 거의 없이 고등학교까지 자기 방도 갖지 못하고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한 삶 속에서 조용히 숨죽여 살아야 했던 아들 녀석에게 제대로 된 첫번째 선물을 줄 수 있는 형편이라는게 (비록 빚으로 남아있지만) 감사하기도 합니다.


원래 이렇게 길게 쓰려고 했던게 아닌게 제가 그렇습니다. ^^  짜식 진짜 좋겠다...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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