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한국을 떠나온지 제법 되어서 한국의 초중고생들이 여름방학을 지금 맞이하고 있는지조차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곳 미국에서는 5월말에 초중고 및 대학교까지 방학을 하여 무려 석달이나 되는 방학기간을 맞이하고 있으며 대학 도시인 제가 살고 있는 이 곳은 덕분에 엄청 한산합니다.
미국은 보통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4년이 고등학생 기간이며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독특하게도 8학년부터 12학년까지 5년제로 되어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9월에 학기가 시작되면 11학년(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딸아이는 본격적으로 대학갈 준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보통 미국에서는 11학년이 끝나기전에 입시를 모두 마치고 한국의 고3이라고 할 수 있는 12학년에는 입시를 준비하기보다는 학교에 직접 응시를 하고 대학을 결정하는 1년간을 거치게 됩니다.
한국처럼 입시준비를 위해 가능한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 분위기가 아닌지라 딸아이는 긴긴 여름방학동안 뭘할까 하다가 이제 고1에 불과하지만 동네의 한국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알바와 병원에서 의료 자원 봉사를 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식당 서빙이야 정해진 시간에 가서 손님들 주문받고 상 치우고 주방 스텝들 돕는 일들이고 만 16살임에도 운전을 시작한 탓에 혼자 차를 몰고 가서 돈도 벌면서 노동의 고달픔을 몸소 배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가끔씩 식당 스텝들과 함께 하루일을 정리한 저녁이면 한국의 설빙 스타일로 만들어 팔고 있는 빙수를 나누어 먹다가 못내 아쉬운지 저희 부부에게 전화를 해서 멀지 않은 식당으로 현찰을 들고 가서 정식으로 다시 주문을 해서 함께 빙수를 나누어 먹는 일은 저희 가족의 새로운 여흥거리가 되었고 이렇게 먹는 빙수는 정말 맛있습니다 (얼음이 아주 자그마한 바늘 스타일로 떨어지는 방식인데 설빙 스타일 이렇게 부르기는 하지만 전 설빙 빙수를 먹어본 적이 없어 직접 비교가 안됩니다. 다만 한국에서 들여온 정말 엄청 고가라는 그 빙수 기계를 집에다 사다 놓고 싶을만큼 맛납니다 ^^).
또 다른 일인 의료 자원 봉사는 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이 동네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에서 허드렛 일을 하는 것이고 병원 일이어서 그런지 초반 요구사항이 많았습니다. 특히 딸 아이는 어렸을 때 수두를 앓아서 수두에 관한 접종 증명을 할 필요가 없는데 병원에서 기록을 찾을 수가 없는데다가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건강 증명 테스트가 몇개 있어서 무려 저희 돈을 25만원이나 들여서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물론 병원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요구 사항이 있음을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자원봉사 하면서 내 돈을 엄청 들여야 하는 상황이 좀 웃음이 나기는 했습니다. ^^
하지만 병원 이름이 떡 박힌 목에 걸고 다니는 포토 ID 를 매고 깔끔한 남방과 단정한 바지를 입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딸 아이를 내려다 줄 때면 뭔가 대견해 보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딸을 키워보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하이틴으로 불리우는 딸아이가 집 안에서 꼴보기 싫은 순간도 사실 많거든요. ^^
그러다 예기치 않은 사건이 터진 것은 바로 오늘 아침이었습니다.
이제 오늘만 버티면 이틀 노는구나 하고 어떻게든 하루를 때워야지 하는 금요일 오전 딸아이로부터 카톡이 옵니다.
"아빠 혹시 엄마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
미국에 살고 있지만 항상 카톡만은 한글로 하는 가족간의 불문률을 잘 지키는 딸아이의 메세지였습니다. 아마도 엄마에게 뭔가 물어볼게 생긴 모양입니다.
"모르겠는데?" (속마음이야 '얘야 아빠는 회사에 있는데 그걸 어찌 알겠니?" 였지만 말이죠 ^^)
딸 아이의 답변이 바로 이어집니다
"음, 알겠어"
"그래도"
이후 "Thank You" 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귀여운 춤추는 이모티콘이 아래에 찍혀있습니다. 이때만 해도 '그래도'는 그냥 오타였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20년을 배운 유창한 영어로 딸아이에게 한마디 합니다.
"You are welcome"
그렇게 다시 시간아 어서가라 아몰랑 모드로 얼릉 돌아갑니다. 그런데 1시간도 지나지 않았을까 또 카톡이 또 울립니다. 별로 카톡을 받을 일이 없는 중년의 인기없는 사내에게 카톡은 그리 빈번히 울리는 물건이 아닙니다만 이번에는 아내였습니다. 더구나 딸아이랑 아내가 평일 점심도 되기 전에 카톡이 바리바리 오는 경우 또한 흔치 않긴 합니다.
여러줄로 보내진 아내의 카톡은 딸아이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와 있다는 겁니다. 잠시 머리가 멍했습니다. 병원 안에 있는 아이가 응급실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이 전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도저히 카톡만으로 이야기를 나눌 상황이 아니라 전화로 연결을 하였고 나중에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상황을 재구성해 보면 이렇습니다.
사실 병원에서 평범한 고등학교 여학생의 자원봉사란게 대개는 환자 떠난 침대를 정리하거나 서류 복사 혹은 청소 등으로 매우 허드렛일이며 이런 점 때문에 이름은 근사하지만 막상 하고난 학생들이 불평이 많다는 얘기를 딸아이에게 진작에 듣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부서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있어 소화내과를 선택해서 간 딸아이는 마침 지금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선배님이신 의사를 만나서 매우 기본적인 일 이외에도 진료를 하거나 처치를 하는 병실에 함께 들어가서 친절하신 선배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가며 많은 것을 보고 배우는 뜻밖의 호사를 누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전에는 위내시경을 하는 환자방에 함께 들어갔는데 일반적인 주기적인 건강진단으로서의 위내시경이 아닌 듯 했습니다 (사실 미국에서는 내가 한번 점검해 보고 싶다고 위 내시경을 할 수 없습니다. 의료 보험 회사에서 먼저 사전허락(pre-approval) 이 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혼자 돈을 모두 부담하겠다고 하면 할수는 있는데 이때 비용은 우리 동네의 경우 350만원 정도 합니다. 35만원 아닙니다. 아내가 한번 한 적이 있을 때 물어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 환자 관련 내용이야 딸아이나 저도 모르지만 마취가 잘 먹지 않는 상황에서 내시경을 꽂아 놓은 구강에서 계속해서 피가 솟구치는 조금은 아찔한 상황이었나 봅니다. 딸아이의 얘기를 빌자면 속이 메슥거리면서 몸이 떨려오더랍니다.
의사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병실 밖으로 나와 잠시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는 순간 깜박 조는 느낌이었는데 눈을 떠보니 자기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있더랍니다. 그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신이 인지가 되고 사람들은 모여 있는게 아니고 자기를 내려보고 있더랍니다. 즉시 응급실(ER)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살짝 정신이 든 딸아이가 저에게 카톡을 보냈던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에도 아빠는 일해야 하니까 생각이 들어서 엄마를 찾았던 모양입니다.
응급실로 옮겨진 딸아이는 즉시 채혈검사 및 엑스레이와 심전도(EKG) 검사까지 행해진 모양입니다. 마침 저희 집 근처의 산책코스로 핸드폰도 놓고 걷기 운동을 나갔던 아내는 뒤늦게야 전화 연락을 받고 부랴 부랴 응급실로 와보니 딸아이는 손가락에 심장박동수를 점검하는 센서를 꼽고 기절하며 쓰러질 때의 충격으로 빨갛게 부어 올라 멍이 든 이마를 한채로 누워있더랍니다.
예전에 토네이도를 쫓아 다녔던 Storm Chaser 였다는 간호보조원 할머니는 행여라도 미래에 의사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를 어린 소녀에게 의사가 얼마나 멋진 직업인지 다정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고 간간이 들리던 응급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의대 해부학 시간에도 이런 일은 흔하고 몸이 떨렸던 것은 발작(seizure)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떨림(shaking)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이 일이 계속 자원봉사를 하거나 나중에라도 의사가 되는 것에 전혀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몇번이나 안심을 시키고 가더랍니다. 그 밖에도 간호사 분들이 참 따뜻하게 이야기를 해주더랩니다 (그러나 미국생활 20년차인 저희는 이 친절함이 나중에 어마어마한 청구서로 돌아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
다행히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으로 나왔고 지금은 집에 와서 편안히 누워서 멍이 든 얼굴 부위를 얼음 주머니로 문지르고 있는 중입니다. 아내의 말로는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병원비가 많이 나올테니 자기가 반을 내겠다고 얘기하는 딸 아이가 무척이나 안스러웠다고 얘기하더군요.
가끔은 사춘기 특유의 반항기로 얄밉기도 했던 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저도 참 안스럽고 우습게도 그 어느때보다도 사랑스럽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몸이 닿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딸인지라 따뜻하게 안아주지는 못했지만 나름 최근에 모아놓은 모든 사랑을 주섬주섬 모아모아 아주 아주 따뜻하게 얘기를 건네주었습니다.
사실 딸아이는 의사를 꿈꾸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오늘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아니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집에 물난리가 난 이후 길게 쏟아지는 비가 트라우마가 되어 지금도 비가 많이 오거나 천둥이 치면 안절부절 못하는 딸아이인지라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 이번주만이라도 평소의 툴툴대는 아빠가 아닌 딸아이를 세심하게 보듬어 주는 아빠가 한번 되어보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바램은 다시 병원 출입증을 당당하게 목에 걸고 병원문을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싶기는 하지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 아내 이야기로는 같이 일하던 사람들 앞에서 쓰러졌던 자기 모습이 쑥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축구장과 농구코트를 누비면서 선수생활을 했던 딸 아이는 잘 이겨내리라고 믿습니다.
적지 않게 놀란 하루이지만 이렇게 돌이켜 보면서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갈 수 있는 지금이 사실 무척 감사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끊임 없는 놀라움의 연속임에 틀림 없습니다. ^^
P. S. : 지금 다시 보게 된 딸아이의 카톡 메세지는 아무래도 오타가 아닌 "그래도 (아빠 혹시 여기로 좀 와줄 수 있겠어?)" 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왜 엄마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는데?" 라고 묻지 않았던 비정한 아빠인 듯 하여 참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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