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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1.05 FBI 가 27년을 추적한 사나이 (6)


여러분들 중에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문구를 들어보시거나 알고 계신 분들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위키피디아의 정의에 따르면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 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스톡홀름 증후군을 대표하는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사건은 1974년의 언론재벌 허스트의 딸 유괴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 언론재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막대한 부를 소유한 윌리엄 허스트의 손녀이자 상속녀로서 남부러울게 없는 패티 허스트양이 급진 좌익 게릴라 단체인 공생해방군 (共生解放軍, Symbionese Liberation Army) 에 유괴된 후 2개월 후에 엉뚱하게도 그들의 일원으로서 샌프란시스코의 한 은행을 터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전세계에 충격을 안겨준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소년중앙' 이라는 어린이 잡지의 열렬한 독자였던 저는 한국의 한 지방 도청 소재지에서 이 이야기를 읽으며 전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언론재벌인 허스트는 지금도 그의 집이었던 허스트 캐슬이 관광지로 유명하고 (DP 회원님들 중 미국 여행을 다녀보신 분중에 분명히 그곳에 가보셨던 분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의 저택이 정문과 본체가 우편번호가 다르며 집안으로 기차가 다닌다는 전설이 열렬히 회자되던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했던 부자 일가이기도 했었으니 이 충격은 정말 그 해에 일어난 해외토픽 중 가장 유명한 것중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CC 카메라에 잡힌 패티 허스트의 총을 든 은행강도 모습 - 출처: 위키피디아]

 원래 공생해방군 단체가 패티 허스트를 유괴한 것은 그들 동료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75년 4월에 벌어진 또 다른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시의 은행강도 사건에서는 민간인이 한명 사망하게 되면서 그야말로 공생해방군이라는 단체는 FBI 의 엄청난 추적을 받게 됩니다.  패티 허스트는 이 사건에서 자기는 도주용 차량을 운전하고 있었다고 진술하였으며 그해 9월에 체포되어 수감되게 됩니다.  3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결국 79년에 지미 카터 대통령이 감형을 해줌으로써 79년에 석방이 되었고 2001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그의 임기중 마지막 일의 하나로서 그녀에게 사면을 해줌으로써 완전한 민간인으로써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그녀는 이 사건과 관련된 인터뷰를 한다든지 가끔 영화에 출연한다든지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허스트를 유괴하고 같이 은행강도를 했던 공생해방군의 일원중에 당시에 유일하게 붙잡히지 않은 사람 중에 제임스 킬고어(James Kilgore) 라고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패티 허스트가 연관된 은행강도 사건들 (녜, 한번이 아닙니다) 이후에 이 사건에 가담된 대부분의 가담원들이 바로 체포가 되었으나 그만은 도주를 하여 2002년에 FBI 에 의하여 체포가 되기까지 무려 27년을 도망자로 지내게 됩니다.  

그가 체포된 곳은 바로 남아공 (South Africa) 의 케이프 타운.  아프리카로 건너가 짐바브웨등을 건쳐 남아공의 케이프타운 대학에 일하면서 27년간을 FBI 의 추적에서 벗어나 있었던 그가 그의 집을 방문한 설문조사에 나선 현지 아프리카인으로 보이는 두명에게 '어떤 와인병 모양이 예쁘나 한번 쥐어봐라' 라는 권유에 따라 와인병을 만지게 되고 이에서 채취한 지문으로 신분을 확인한 FBI 요원들에게 바로 다음날 전격 체포되어 미국으로 압송되게 됩니다.  그가 잡힘으로 해서 당시 사건과 관련된 공생해방군의 모든 멤버가 체포되게 되어 이 사건은 마무리가 됩니다.

제임스 킬고어[2002년 남아공에서 체포된 후 청문회를 나서는 제임스 킬고어 - 사진출처 : Reuters 2002]

그는 공생해방군과 함께했던 1975년의 새크라멘토 은행 강도 사건에서 가담원의 실수로 발포되어 목숨을 잃었던 민간인 한명에 대한 2급 살인죄로 6년, 불법 폭약 소지 및 공문서(여권) 위조로 4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그 길었던 27년의 도망자로서의 삶속에서 그는 짐바브웨와 남아공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기 위하여 공부하면서 지역 대학교등에서 강의를 하는 교육자와 행동가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교도소 재소자의 교화 프로젝트에 관여하기도 했으며 수화를 배우기도 하고 노조에서 일을 하기도 했으며 남아프리카의 교육정책 및 사회전반에 관한 활동에 깊숙히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는 처음 도망자가 되면서부터는 원래의 이름이 아닌 John Pape 라는 가명을 썼으며 (그의 증언에 따르면 일찍 사망한 아이의 신원을 이용해서 위조여권과 신분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었다고) 아프리카에서 만난 미국인 박사 과정 학생과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 두 아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감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우린 모두 짐바브웨인인걸 (We Are All Zimbabweans Now)' 라는 책을 써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이 책은 베를린 필름 영화제에서 '영화로 만들기에 제일 좋은 책 10권' 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27년간의 도망자 생활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지는 6년반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가석방되는 사람들이 차는 팔찌를 팔목에 두른 채 2008년 꿈에도 그리던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은 먼 이국에서 꿈을 찾아 날아와서 소시민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중년의 한국 남자와 매주 한, 두번씩 자식들이 운동하고 있는 축구장에서 만나 그들의 자식이 만드는 골이 나올때마다 혹은 극적인 승리를 거둘때마다 함께 껴안고 기쁨에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의 지극히 평화로운 삶을 지내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권유로 좌익 단체에 가입하여 급진적인 일에 연루되어 세상을 떠들석하게 하고 그로 인하여 무려 27년을 가명으로 도망자의 몸으로 지구의 정반대쪽에서 아프리카인들을 가르치며 세상을 바꾸어 가는데 일조하던 그가 이제는 편안한 안식과 가족의 사랑을 만끽하며 몇년이 지나도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미국 중부의 소도시에서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의 인상을 처음 본 누구도 그가 그렇게 오랜 세월을 FBI 와 숨바꼭질을 하며 한때는 대부호의 손녀를 납치하고 은행 무장 강도단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일주일에 한두번 얼굴을 마주하는 동방에서 날아온 소시민에게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최고의 친구이며 그들의 아들끼리는 축구라는 운동속에서 둘도 없는 소울 메이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월은 급진 좌파 행동가의 이력을 지닌 미국 사내에게도 그져 꿈을 쫒아 멀리 날아와서 무기력해 보이는 월급쟁이의 삶을 사는 한 아시아인에게도 그렇게 똑같이 드리워져만 갑니다.



후기:

제가 아들녀석의 축구팀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친구인 라니(Lonnie)의 아버지가 책을 쓴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들 녀석이 라니와 친하고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였습니다.  라니는 드물게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성을 딴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대개 이럴 경우 이혼하고 재혼한 경우였으나 라니의 부모님은 이혼한 적이 없습니다) 라니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린다는 점에서 좀 특이하구나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아버지가 책을 쓴 작가라는 것을 아들을 통해서 알게되었고 그로 인해 알게 된 내 친구 제임스의 이력은 매우 흥미로웠으며 그의 뒷이야기에 상당히 많이 매료가 되었었습니다.

내 친구 제임스는 제가 이 도시에 온지 16년동안 만난 미국 남성중에 가장 따뜻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백인들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월함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제가 항상 제 직장 퇴근 시간보다 먼저 시작하는 아들 녀석의 축구 홈 경기에 늦게 가서 두리번 거리고 있으면 언제나 내 곁으로 먼저 와서 저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항상 제 얘기를 잘 들어주는 최고의 친구입니다.  그의 아내역시 백인의 아내로서는 드문 흑인이지만 남편 못지않게 따뜻한 사람이어서 언제나 아들녀석들의 축구 경기가 극적인 승리를 거두면 그라운드에서 함께 껴안고 펄쩍 펄쩍 뛰는 사람은 저와 제임스 그리고 제임스의 아내입니다.  심지어 제 아내도 뒤에서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데 말이죠.

제임스는 제가 제임스의 과거를 알고 있는 줄 모릅니다.  또 저도 제임스에게 내색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이 문제에 대하여 편안할지 어떨지 절대로 모르기 때문이며 우리는 라니 아빠, 마이클 아빠로 만났으니까요.  그리고 어쩌면 저는 그 티를 전혀 내지 않고 계속 갈 겁니다.  다만 그의 책을 사게 되는 날 그에게 싸인해달라고 하고 싶은 욕구를 어찌 숨길지가 걱정입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이 그의 더 자세한 스토리를 알게되실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문에 의하면 제임스가 그의 책과 스토리를 현재 영화 극본으로 집필 중에 있으니까요.

이렇게 또 다른 극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제 친구 제임스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후기 2 :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27년을 추적하여 결국 범인(^^)을 검거하고 만 FBI 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영화는 어쩌면 FBI 쪽의 입장에서도 나올 수 있을 듯합니다.  ^^  마지막으로 제가 사는 도시에서 가장 축구를 잘한다고 하는 제임스의 아들 라니의 동영상 하나 첨부합니다.  우리 도시 및 인근 몇개 도시의 챔피언을 꼽는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아들 녀석의 학교는 라니의 결승골로 우승을 하게 됩니다.  이게 겨우 몇달 전 일이군요.  캠코더를 가져갔던 저는 용량이 부족하여 불과 10분 정도만 동영상을 찍었는데 우연히 그의 골장면을 담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경기 후 유튜브에 업로드하여 제임스에게 보여주니 정말 기뻐하고 좋아하더군요.  아래 비디오의 골장면 직후에 뒷모습만 보이지만 두손을 허공에 가로지르며 펄쩍 펄쩍 뛰면서 좋아하는 이가 바로 제임스입니다.  제가 비디오를 안찍었다면 저 자리에서 그와 부둥켜 안고 함께 뛰고 있었을 것입니다. ^^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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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darren 2012.01.05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facebook 때문에 덜미가잡혔다던 그분이군요. 이제마음편히 지내실수있겠군요. 재밌게 자라봤습니다

  2. 테테 2012.01.05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습니다.

  3. BlogIcon 인생엔조이 2012.02.23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마지막에 반전이네여.

    내가 그사람 친구다.

    아 돋아.......

    식스센스..

    유주얼서스펙트.....

    그대는 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