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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27 추억속의 우상, 그녀를 만나다 8


저에게는 존경하는 분이 있습니다. 롤모델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분이십니다.  누구에게나 존경하는 분이 있겠지만 저에게는 존경하는 분은 반드시 생존해 계셔야 한다는 그런 우스광스러운 철칙이 있었습니다.  같은 공간과 시대를 지나며 배움을 가질 수 있어야만 한다는 어설픈 이유에서이죠.  사실 존경하는 분은 총 4분인데 한분이 2년전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철칙도 깨져버렸습니다만은..  ^^;;

그 존경하는 분이 한 여성 가수를 참 좋아하셨더랩니다.  여러분들도 어쩜 아실 수 있는 그 이름 가수 이지연씨입니다.  오래전 어느날 이 분이 가수 이지연씨의 근황을 저에게 물어보셨었습니다.  그리 심각하게 물어보신 것은 아니셨었는데 아마 이지연씨가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러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우찌 알겠습니까, 이 큰 미국 땅덩어리에서.. ^^  저라면 알거다라고 생각을 하셨었던거라고 믿고 있습니다만.. ^^;;

존경하는 그 분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 저는 결국 이지연씨의 팬카페까지 가입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뿔싸 등업을 해야지만 근황 사진을 볼 수가 있더군요. 가입인사와 시덥잖은 댓글 몇개로 힘겹게 등업을 받고 드디어 그녀의 몇년전의 미국에서의 일상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그 분께 보내드리면서 홀로 뿌듯했던 것도 벌써 몇년이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아틀란타라는 도시에 사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에게 미국의 죠지아주 아틀란타라는 도시는 언제나 그 가수가 사는 도시로 제일 먼저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제가 회사에서 아틀란타로 출장을 갈 일이 생겼습니다.  출장이 결정되자마자 제 머릿속에는 오랫동안 혼자 생각해왔던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존경하는 그 분에게 그 분이 좋아하는 가수에게 직접 동영상 메시지를 받아서 선물로 드리자!! 이거였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짓을 저지른 경험이 있습니다.  LPGA 골프선수 박지은을 열렬히 좋아하는 캐나다인 친구에게 박지은 선수를 만나서 그녀가 직접 보내는 메시지를 동영상으로 따다가 준 적이 있었거든요 (이곳에 글로 소개를 한적도 있습니다.  나의 부탁을 들어준 스포츠 스타라는 글입니다) 그때 감격해 하던 그 친구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원래 저의 출장 스케쥴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입니다.  거리가 있는 만큼 비행기를 타고 가야합니다.  회사측에 얘기해서 월요일 새벽 대신에 토요일 새벽에 떠나겠다고 양해를 구합니다.  물론 5년 정도 방문하지 못했던 아틀란타의 지인들을 주말 이틀에 걸쳐 만나보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지만 역시 메인 이벤트는 이거였습니다. ^^;;

모든 일이 순조로이 진행되어 토요일 새벽에 아틀란타 공항에 도착을 했고 지인 한분께서 공항에 나와 픽업을 해주시고 오랜만에 뵙는 분들과 하는 점심은 정말 꿀맛같았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틀란타는 현재 제2의 골드러시라고 불릴만큼 LA 에 이어 미국에서 한국인들이 집중되는 지역인만큼 한국 사람들이 살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환경이 갖추어져 있고 아틀란타에서 먹는 한식은 한인들에게 미국 제3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시카고의 그것보다도 훨씬 훌륭했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자고 즉시 준비했던 프로젝트의 수행에 착수를 했습니다.  다행히 저의 설명을 들으신 아틀란타의 지인분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기로 했습니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연예인 만나보겠다고 하는 일이 참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의 이런 엉뚱한 면을 잘 이해해 주신 덕분에 토요일 오후를 그녀를 만나는 일에 투자하기로 합니다.  다행히 이미 인터넷을 통하여 오랫동안 호텔 요리사로 일하고 있던 그녀가 개인적으로 식당을 개업해서 나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고 그 식당의 주소도 이미 손에 넣고 있었습니다.  한가지 참 뿌듯했던 것은 미국에서 식당의 평에 관한 한 가장 정보가 많고 일반인들의 평이 제대로라고 알려져있는 Yelp.com 에서도 그녀의 식당은 엄청나게 좋은 평가를 얻고 있었습니다.

막상 찾아가기로 결심을 하고 나니 한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과연 그녀는 내가 가는 시간에 일하고 있을까? 왜냐하면 한국의 경우를 보면 유명인이 경영하는 식당의 경우 유명인의 이름을 걸어놓을 뿐이지 그 사람을 보기란 쉽지 않기 떄문이어서 그렇습니다.  또한 있다고 한들 만나볼 수나 있을까?  주방에 있을텐데...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오... 그녀가 있답니다... 그런데 몹시 바쁘답니다.  온다고 해도 만난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답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있다는 사실에 안도를 하고 그래도 비교적 한가하리라 짐작되는 3시 30분경을 전후해 도착하기로 합니다.  차편을 제공해 주시고 운전까지 해주시는 지인은 예전에 그녀의 전남편과 같이 일해본 적이 있다고 혹시라도 개인적인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 이리저리 연락하는 수고를 해주시기도 하여서 참 감사했습니다.  이 지인 분도 오랫동안 온라인으로 알고 지내다가 실제로는 처음 뵙는 분이고 저보다 연배도 높으신 분인데 저의 발이 되어주시고 자택까지 숙소로 제공해 주시는 데다가 이런 엉뚱한 일까지 함께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식당은 일반적인 한인들이 많은 곳도 아니고 식당가들이 몰려있기로 유명한 곳도 아닌 전혀 동떨어진데 있었습니다.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 찾아가는데 토요일 낮의 교통체증을 뚫고 한참 달려간 곳은 부동산 업을 하셨던 지인조차 참 뜬금없다고 하는 그런 곳에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지나치기도 했었습니다.  네비로 찾지를 못해 좀더 정확한 지도를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의 구글 지도를 이용하여 드디어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식당은 예상보다는 크기가 작았고 참 멋져 보이는 아파트들 사이에 살짝 숨어 있었습니다.

내가 기획하였던 일을 성공할 수 있을까 깊게 한숨을 쉬고 들어서자 서빙을 보는 분이 "지연을 보러 왔느냐?" 라고 먼저 물어보아서 놀랐습니다.  제가 했던 전화를 기억하거나 나처럼 찾아오는 한국 사람이 또 있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것입니다만 차마 물어볼 마음의 여유가 그때는 없었습니다.

오..오..오..

뻥뚫린 아주 커보이지는 않는 주방안에는 3명의 요리사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혼자서 하얀 옷을 입은 그녀가 요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바베큐 전문 식당인데 맛있게 고기를 재우기 위하여 열심히 국물을 내고 이를 저으며 고기를 재우는 일을 하는 그녀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얼굴마담이 아닌 진짜 요리사였습니다.  그야말로 제대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빤히 바라보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를 하고 다시 일에 열중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용 요리를 준비하는 모양입니다.  그날이 토요일이었으니 무척 바쁜 저녁을 준비하는 것이겠지요.

이를 어쩌지..

일단 음료를 하나 가져다 테이블에 놓고 홀짝 홀짝 지인분과 나누어 마시며 그녀가 한가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전 국민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지금의 소녀시대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던 그녀가 이제는 중년이 되어 늙수구레한 자태를 자랑하는, 그녀를 보겠다고 주책없이 찾아 온 아저씨 앞에서 열심히 저녁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다행히도 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서빙을 보는 친절한 흑인 아가씨에게 전달받은 그녀가 손을 쓱쓱 훔치며 나옵니다.  오...  나름 유명인을 많이 만나봐서 별로 감흥이 없을거라는 제 예상과는 달리 이곳에 온 목적을 설명하는 저는 살짝 떨고 있었습니다.   훗...

"제가 존경하는 분이 있습니다.  저보다 열살 위이신데 부족한 것이 없는 분입니다.  그런 그 분에게 그 분이 좋아하는 당신의 메시지가 담긴 동영상을 담고 싶어서 이렇게 일리노이주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라고 또박 또박 설명을 했습니다.  그녀는 다행히도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지만 아쉽게도 비디오만은 곤란하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몇번 간곡히 부탁을 했지만 그녀는 참으로 정중하게 난색을 표했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연예계를 비공식적으로 은퇴한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간간이 주목을 받는 그녀이기에 그럴수 있다고 이해가 가더군요.  그 대신에 그녀가 먼저 제안을 합니다.  그 분께 가는 메시지를 적어주겠다고.. 사실 개인적으로 연예인의 싸인을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만 (시간 지나고 나면 어디 갔는지도 모르게 되는게 싸인이더군요 ^^) 그래도 빈손으로 갈 수는 없기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존경하는 분의 성함을 말씀드렸더니 멋지게 싸인을 하여 주었습니다.

마침 그녀도 휴식시간이었는지 주방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고 그녀와 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습니다.  걷어올린 그녀의 팔뚝에는 여기 저기 데인 자국이 눈에 띕니다.  바베큐 식당에서 큰 팟이나 들통을 다루다 보면 충분히 생길 수 있겠다 생각이 드는 요리사의 훈장입니다.  이제 그녀에게서는 다른 연예인에게 볼 수 있는 후광은 없었지만 아이라인 하나와 살짝 립스틱이 바른 것외에 아무 화장도 안한 그녀는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거기다가 상냥하고 격의없이 얘기해 주시는 모습은 브라운관에서의 모습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식당에 서서 나누던 이야기가 식당 밖에 나가서 하는 이야기로 이어졌고 같이 간 지인분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저는 안으로 들어와서 같이 일하는 종업원 두분에게 그녀가 얼마나 한국에서 인기있는 가수였나를 침이 튀도록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나에게 그녀의 상냥한 인간성을 열을 내어 칭찬하는 것을 들으면서 참 흐뭇했었습니다.

이렇게 얼굴만 보고 갈 수 없어 그녀에게 직접 추천을 받아 그 식당에서 가장 맛있다는 조합으로 돼지 바베큐를 take out 을 했습니다.  마침 하룻밤을 신세를 지는 지인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 가지 않았던 터라 이렇게 저녁이라도 대접하고 싶었거든요.  조곤 조곤 음식에 대해 설명하는 그녀에게서는 왕년의 스타가 가질 수 있는 회한의 향기 따위는 전혀 없었으며 진솔하게 자기 식당의 음식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여 설명하던 그녀에게서 자신의 음식에 대한 프로의 애정이 느껴져서 정말 좋았습니다.

인기 가수에서 요리사로 변신해 성공적인 길을 가는 그녀에게 어줍짢게도 저는 저도 그렇게 인생의 전환을 가져봐서 얼마나 힘든지 안다는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주제넘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면서 대화를 해주었던 그녀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나중에 지인 분의 집에 돌아와 먹어본 그녀가 직접 만든 돼지 바베큐와 고구마 샐러드, 그리고 Brunswick 이라고 명명된 수프는 정말로 최고였습니다. 그녀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라 제가 미국에 와서 먹어본 돼지 바베큐 중 테네시주의 채터누가시에서 먹었던, 미국 대통령이 즐겨 찾는다는 Sticky Fingers 의 그것보다도 월등히 훌륭했습니다.  나중에 Yelp 의 일반 회원 리뷰를 꼼꼼히 읽어보니 아틀란타에서 가장 유명한 Fat Matt 이라는 식당의 음식보다, 혹은 텍사스 주에서나 맛볼 수 있는 바베큐보다도 훌륭하다는 평까지 있어서 저를 즐겁게 했습니다.

이렇게 맛이 있고 인터넷 평이 호평 일색인 식당이니 분명 식당은 대박일 것이고 그녀의 요리사로서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바쁜 토요일 오후의 자투리 시간에 그녀를 보겠다고 달려와서 무리한 부탁을 했던 한 팬에게 대해주었던 그녀의 따뜻한 마음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녀의 건투를 빕니다.

P.S. : 이러한 종류의 글은 역시 인증샷이 없으면 의미가 없겠죠? 그녀를 단독으로 찍은 사진이 있지만 아쉽게도 잘 나오지가 않아서 같이 간 지인이 찍어준 저와 함께 한 사진을 올립니다.  본의아니게 저도 같이 인증하게 되었는데요, 모자이크를 하자니 그것도 이상하여 그냥 올립니다.  양해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P.S. 2 : 아래 사진은 제가 한참 이지연씨와 담소를 나눌 무렵 지인이 찍어주신 사진입니다.  제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던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어 보고 있으면 참 감사하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그런 사진입니다.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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