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생활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 분이시라면 네이버에서 만든 밴드라는 새로운 SNS 서비스를 알고 계실 겁니다. 저는 최근에 인기 있었던 '꽃보다 누나' 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이게 예전 열풍이었던 '알럽스쿨' 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족, 친구, 동창 이런 단어들은 한국에 계신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미 연락을 하고 지내는 몇명의 골수 초등 동창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딴 친구들은 어찌 사나 궁금했습니다. 예전 알럽스쿨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해서 더욱 그랬었나 봅니다. 몇명 만나지 못한 채 그냥 흐지부지 되어버렸었거든요.
그런데 이 네이버 밴드라는 엡이 미국에서도 다운이 가능한 엡이기는 하지만 미국 IP 주소로는 학교를 찾는 메뉴가 나오지를 않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한 끝에 스마트폰의 기본 언어를 한국어로 바꾸면 학교 찾기 기능이 활성화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드디어 제가 졸업한 초/중/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남자들만 다녔던 중/고와는 달리 역시 남녀공학이었던 초등학교 (저는 국민학교 세대입니다만) 가 가장 활발합니다. 이미 50여명이 넘는 친구가 들어와 있습니다. 제가 연식이 있어 이 정도면 많은 편입니다. ^^ 초등학교를 다닐 때 좀 떠들석하게 다닌 탓인지 친구들이 제법 많이 알아봐 주고 가입하자마 환영도 많이 해줍니다. 왜 여러분 초등학교 다닐 때 '요란하게 학교 다니고 좀 재수 없었던 놈' 한명 쯤은 꼭 있었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저입니다. ^^;;
34년만에 보는 친구들.. 신기하게도 제가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이메일 주고 받았던 국민학교 친구들과는 전혀 겹치지가 않습니다. 즉 만나는 모든 친구들이 새로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웠던게 저는 친구들이 어찌 사나 궁금해서 참여하게 된 것인데 온통 올라오는 글들은 여기저기 넷상에서 많이 떠도는 감동적인 이야기 모음이거나 동영상들이 많습니다. 그 속에서 댓글로 초등 친구들은 나름 본문과 상관없는 친목을 나누고 있는게 이채로웠습니다. 그러나 제가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은 이거였습니다.
'얘들아, 나는 카네기가 어떤 말을 했는지, 퇴근 길에 사다 준 귤 한봉다리로 부부관계에 눈물의 반전을 가져왔다는 이미 14번을 본 얘기보다 너희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규~~~~'
그래서 제가 먼저 개인적인 사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소소한 얘기들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친구들의 첫번째 반응은 '글이 길다..' 였습니다. ㅠ.ㅠ 이곳에서도 글을 길게 쓰는 편이지만 나름 짧게 썼다고 생각했는데도 짧은 글에 너무 익숙한 50이 얼마 안남은 친구들은 그것도 긴가 봅니다.
그래도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의 댓글 속에는 아무래도 본문의 영향이 있어서 사는 이야기들이 살짝 오고 가게 됩니다. 그속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외국에 산다는 것의 맘 아픔, 부모님들께 하는 불효.. 특히나 이미 암 투병중이셨으나 최근에 컨디션이 좋아지신 아버지가 저희들에게 이야기 하시지도 않고 오랫동안 당신을 괴롭혀 왔던 어 깨 수술을 하고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병실에 누워계시면서 저와 나눈 전화통화에서 하루 종일 약국을 혼자서 4일간 보신 어머니 때문에 걱정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뭐라 할 수 없었던 저의 마음도 조금 털어놓았습니다.
연로하신 아버지, 어머니 두분만이 하루를 둘로 나누어 밤늦게까지 하는 약국을 지키고 계시니 수술을 하게 되신 아버지는 병구완하는 사람 없이 병원에 홀로 누워계시고 아침 일찍 열어 아주 늦은 저녁까지 하는 약국을 12시간 넘게 홀로 지키시는 어머니는 4일 넘게 지쳐 계신게 너무나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 사연을 들은 친구들이 댓글로 많이 격려를 하고 응원을 해주어서 참 감사하긴 했지만 부모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은 어찌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초등 동창 게시판에 놀라운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어깨 수술로 팔걸이를 하시고 머리를 못 다듬으셨는지 모자를 쓰신 아버지와 사진을 찍으실 때면 언제나 특유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시는 어머니 바로 두분의 사진이 여러장 올라온 것입니다. 이건 뭐지? 순간 아뜩해졌습니다. 사연인즉 저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잠깐 약국에 들렸다는 것을 전화로 알게 된 동창 친구 한명이 연락을 해서 시간이 되는 친구를 모아 3명이서 귀한 선물을 들고 저희 약국에 들러 저희 부모님께 안부를 여쭙고 병문안을 드리고 사진을 찍어서 올린 것입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친구들이 방문해 주었다는 것에 우선해서 1년 반전에 '이제는 더 못 뵐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에 한번도 뵙지 못한 부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음에 일단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자신의 부모도 아닌 친구의 부모를 자식이 단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대신 방문해서 인사 드리고 저의 마음을 대신 전달해 준 친구들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고마웠습니다.
행여 제가 아쉬워 하지 않도록 사진도 많이 찍어주었더군요. 제가 요구했으면 하지 못하셨을 어머니, 아버지가 다정하게 감싸안고 웃으며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은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최근의 모습으로는 못가졌을 수도 있는 사진이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진을 보고난 감동으로 바로 글을 쓴게 이겁니다. 초등 동창 친구들도 여러 댓글들을 꼬리를 물어 쓰면서 감동을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타국에 있는 친구를 대신해서 아들/딸 노릇을 해준, 직접 저희 집을 찾아간 친구들에 대한 대견함 (남자 2, 여자 1명이 찾아갔더군요), 그리고 친구들의 방문에 감격하셨는지 적지 않은 돈을 금일봉으로 동창 발전 기금으로 증정해 주신 저의 부모님에 대한 감사, 훈훈한 이야기들로 동창방에 댓글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지금 저는 컴퓨터 화면에 떠있는 친구들이 보내온 부모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34년을 만나지 못한 동창 녀석들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오래 잊지 못할 최고의 깜짝 이벤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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