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이 단조롭고 반복적인 편이라 이렇다하게 재미있는 일이 생기기 힘들지만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는 에피소드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아마도 미국의 플레이보이 (Playboy) 라는 잡지를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긴장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얘기 아닙니다 ^^).  토끼 심볼로 대변되는 미국을 대표하는 성인 잡지 중의 하나죠.  미국에 오기전까지 저와 플레이보이 잡지와의 인연이라면 음 하나 떠오르는게 있긴 합니다.  먼저 그 얘기 하나 하고 가겠습니다 (오늘도 얘기 길어질 것 같습니다).  ^^;;


예전에 한/글/사랑회라고 대한민국에서 HWP (아래아한글) 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HWP 를 잘 쓰는 사람들이 한글과컴퓨터사의 협찬으로 모이게 된 것인데 주로 하는 일은 서로간의 HWP 사용팁을 교환하는 것은 물론 아래아한글을 개발하는 한글과컴퓨터사의 개발자들에게 조언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원고지 몇자 이내로 원고를 제출해달라는 데가 많으니 HWP 안에서 그걸 계산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개발자들에게 요구를 한다든지 아래아한글 신버젼이 나오면 베타 테스트를 한다든지 하는 일이었습니다.  

일체의 돈을 받지않는 자원봉사적인 성격이 강한 모임이었는데 (비 정기적으로 모여서 세미나도 하고 유성같은 곳에서 1박 2일로 모임을 갖기도 하고 회원님의 열의로 해남 땅끝마을에서 집담회를 갖는 등 무척 진취적인 모임이었습니다) 여기서 참 많은 HWP 고수들을 만났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HWP 만을 이용해서 코렐 드로우에서나 이용 가능한 그림을 그려내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HWP 고수들이 컴퓨터 고수는 아니었는지 태백의 한 공고에 근무하는 회원님으로부터 어느날 인터넷에 대하여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제가 받게 됩니다 (어째 말투가 김태원 같은.. ^^).  그때가 막 인터넷의 World Wide Web 개념이 정립되고 Netscape (지금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해당하는 웹 브라우져) 와 Winsock 그리고 전화선을 이용해서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웹싸이트를 이용하던 때라 공고 선생님들에게 인터넷과 World Wide Web 에 대하여 짧은 강좌를 해달라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뭐 당연히 인터넷의 기원이라든지 아르파넷이라든지 밀넷이라든지 이런 이론적 얘기를 하게 되면 선생님들이 지루해할 것이 뻔한 바 제가 좀 엉뚱한 기획을 했습니다.  그때 당시 막 거의 성인 잡지 사이트로는 처음 문을 연 플레이보이사를 소개하는 걸로 강연을 이끌어 나가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태백까지 먼 길을 간 후 초청해 주신 분 댁에 여장을 풀자마자 즉시 전화선을 이용해서 플레이보이 사이트를 캐슁 (미리 담아놓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다음날 강연 현장에서 소개하기에는 너무 느릴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밤새 전화선으로 필요한 페이지들을 다운받아 놓고 넷스케이프를 미리 저장된 이미지를 가져오도록 셋팅을 한 후에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공고답게 많은 선생님들이 인터넷 강좌에 관심을 가졌고 선생님들을 앞에 놓고 강연하는 저는 참 뭐랄까 기분이 좋았었습니다 (제가 사람들 모아놓고 떠드는 것을 좋아라 합니다 ^^).  그러나 불과 20분도 안되어 꾸벅 꾸벅 졸기 시작하는 분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식사 직후의 강연이었고 지루한 인터넷의 역사와 원리에 대하여 얘기를 하면서 Winsock 접속법에 대하여 설명을 하니 뭐가 뭔지 몰랐던 선생님들이 슬슬 무거운 눈꺼풀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넷스케이프 웹 브라우져


자, 이제 깜짝쇼 시간입니다..  '자 그럼 실제로 월드와이드웹 써핑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가열차게 외쳐도 선생님들의 무거운 고개는 올라올 줄 몰랐습니다.  아무말도 않고 넷스케이프 웹 브라우져를 켜고 저장되었던 플레이보이 홈페이지를 불러오기 시작했습니다.  데모용 컴퓨터의 화면에 플레이보이 홈페이지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헉 소리가 시간차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헉, 헉 소리에 뭔일인지 놀란 다른 선생님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게 여러분들 혹시 아실지 모르는 플레이보이라고 하는 미국 성인 잡지의 웹싸이트입니다.  월드 와이드 웹을 이용하면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잡지도 볼 수 있고 더구나 한국에서는 나오지 않는 미국의 성인잡지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정말 국경이 없는 정보의 무차별적 교류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 전날 이미 제법 건전한 (^^) 그림들만 골라 놓았었음에도 수영복을 입은 미국 처자들의 사진과 금기시되었던, 학생들에게서 찢어진 페이지로만 보았던 그 플레이보이 잡지가 모니터에 아주 선명하게 나오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선생님들의 눈빛은 모니터를 뚫을 듯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신문물에 대한 진취적인 강좌였기에 참석했던 여선생님들도 다행히 항의를 하지 않았고 그날 인터넷 강연은 아주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다만 강연이 끝나고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할 수 있느냐고 여쭈어 보시던 주임 선생님들의 성화가 대단하긴 했었습니다만...  ^^;;

이게 제가 플레이보이 잡지와 가진 유일한 한국에서의 추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오고나서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로 제가 살고 있는 도시에 있는 대학교가 바로 플레이보이의 창립자이자 회장, 플레이보이 맨션으로 유명한 휴 헤프너 (Hugh Hefner) 가 졸업한 학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은 시카고에서 플레이보이 사업을 시작해서 발전시켜 가다가 현재는 캘리포니아의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매주 호화로운 파티를 열고 계시죠.  

플레이보이 창립자/회장 휴 헤프너


한가지 우스운 것은 미국의 대학교에는 건물을 기증받았을 시 그 기증자의 이름을 따서 건물 이름을 짓는데 저희 학교의 심리학과 건물은 기증자의 이름을 따서 휴 헤프너라고 하지를 못했습니다.  보수적인 학교 관계자들이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휴 헤프너는 거액을 기부해서 근사한 심리학과 건물을 짓고도 끝내 이름을 부치지는 못했습니다 (미국이 때로는 이렇게 보수적입니다). 결국 심리학과 건물은 지금도 그냥 심리학과 건물로 이름이 남아있습니다 (이 동네에 사는 분들도 대부분 이 스토리를 모릅니다 ^^).

어쩄거나 이렇게 저와는 사실 아무 관계도 없는 플레이보이 잡지였지만 갑자기 이 플레이보이 잡지 떄문에 웃기는 일이 하나 생기게 됩니다.  헉, 죄송합니다.  아직까지 서론이었네요.

미국와서 하루 하루를 정신없이 살던 어느날, 하루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데 우편함에 꽂혀있는 검은 비닐에 쌓인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집에 들어오면서 아내에게 '저 왔어요' 라고 얘기함과 동시에 검은 비닐을 북 찢자 바닥에 떨어지는 책은 바로 '허거덕!' 플레이보이 잡지였습니다.  당시 방이 2개 밖에 없는 작은 집에 살아서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가 있는 부엌옆으로 붙어있는 거실에서는 아들 녀석이 천진난만하게 돌아다닐 때였습니다.  후다다닥 잽싸게 책을 집어서 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뭐야' 

이상한 영화를 보다가 들킨 학생처럼 가슴이 조금 뛰더군요.  사실 플레이보이 잡지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주 아주 하드코어한 잡지도 아니고 사진 약간에 기사들이 대부분인 뭐랄까 소프트한 약간의 적게 입은 여성들이 나오는 잡지이긴 해도 예상치 않은 상황에서 맞이한 성인 잡지는 참 거시기하더구만요.

참고로 아래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미국의 모든 성인잡지들은 서점에서 전시할 때도 그렇고 우편으로 배달될 때도 검은 비닐로 쌓여서 배달이 됩니다.  물론 어느 편지함에 검은 비닐로 쌓인 잡지가 박혀 있으면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만...

성인 잡지 배달 포장


책상 밑에 후다닥 던져두고 아내랑 밥을 먹고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절대 플레이보이 잡지를 한장 한장 찬찬히 들여다 본다거나 플레이보이 잡지도 새로운 쿨한 전자기기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거나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쿨럭..).  다음날 아내에게 아주 쉬크하게 '글쎄 플레이보이 잡지가 실수로 나에게 배달이 되었네? 하하하하' 하고 잡지를 구겨서 휴지통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나 부억 식탁 밑에서 돌아다니던 검정 포장 비닐에 제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던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했으며 아내가 다음과 같이 얘기했을때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좀 덜컹하더군요..

"자기, 이거 실수가 아닌가봐, 자기 이름이 써 있는데?"

-.-;;

곰곰 생각해 보니 당시는 인터넷 쇼핑이 많이 활성화 되지 않은 때였고 여러 쇼핑 사이트에서 공짜 잡지나 이런 것들을 프로모션으로 돌릴 떄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더욱 더 쉬크한 모습으로,

 '아마도 광고용으로 돌리는 건가봐.  난 이런 것 진짜 안 좋아하는데.. 내 주소야 쇼핑 사이트에서 얻었겠지.. 허허허..' 

이렇게 웃음으로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달에도, 그 다음달에도 어김없이 저의 우편함에는 검은 비닐로 쌓인 잡지가 꽂혀 있었습니다.  미국의 방 두개짜리 아파트에 살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편함이 매우 좁아서 언제나 잡지는 아주 아주 티가 나게 꼽혀 있었고 제 착한 이웃들은 그걸 가져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간 저는 동료들에게 신기하다는듯이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은 성인 잡지도 프로모션으로 많이 돌리나봐요.  몇달째 플레이보이가 오던데 다들 경험 있지요?"

미국인 동료들이나 한국인 친구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습니다.

"No way, man" (절대 없었는데?)
"형, 정말예요? 저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와 땡 잡았네요."

-.-;;

저의 아내는 무척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고 저도 아내 못지않게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매달 우편함에 꽂혀 있던 플레이보이 잡지는 비닐도 뜯지 않은채 휴지통으로 직행을 하였습니다.  거룩함도 거룩함이지만 코딱지만한 집이라 어디 숨길데도 없는 집에서 아이의 눈에 성인 잡지가 눈에 띄어 아버지의 존엄함이 손상되는 불상사도 원치 않았고 아내에게 남편이 얼마나 훌륭한(^^) 남성인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던 저는 우편함에서 꺼내온 비닐도 뜯지 않은 플레이보이 잡지를 아내 눈앞에서 휴지통에 퐁당 빠뜨리는 퍼포먼스를 매달 한번씩 해야만 했습니다.

"이번달에도 왔네?" (퐁당) "참 얘네들 꾸준해" (퐁당)

누구는 샘물이 퍼져서 건너편에 있는 누나의 손길까지 닿으라고 돌을 퐁당거리는데 저는 굴지의 성인잡지를 매달 목적도 없이 퐁당 퐁당거려야 했습니다.

플레이보이 회사에 한번 연락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무려 일년이 넘게 무료로 배달이 된 후였습니다.  3개월이면 대충 중단될줄 알았던 잡지가 (미국에서 무료 프로모션은 대개 3개월입니다. 미국에서 맥을 구입하면 맥월드가 3달간 무료로 옵니다) 일년이 넘고 나자 (유료 정기구독은 일년 단위로 진행됩니다) 뭔가 착오가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물론 그동안에 무료로 플레이보이 잡지를 받는다는게 제 주변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우리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은 괜히 실없이 집안을 뚤레 뚤레 살펴댔었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아파트 건물 앞의 대형 쓰레기통(dumpster)에 고개까지 집어 넣어 한번씩 살펴보고 가곤 했었습니다.  노골적으로 잡지를 원하는 친구들에게는 '줄서, 줄서, 니가 대기자 번호 148번째야' 라는 실없는 이야기를 건네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당시 금요일 저녁이면 청년들에게 '거룩하게 살자' 라고 얘기했던 제가 도색잡지를 나누어 준다더라 하는 소문을 들어서는 안되었기에 공짜로 받는 잡지지만 절대로 누구에게 선물로 줄 수는 없었습니다.  거룩한 사람 이미지는 이렇게 저를 사정없이 옭아매고 있었습니다.  ㅠ.ㅠ

일년이 지나고 나서야 플레이보이사에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이메일 주소 찾기도 쉽지 않더군요.  아마도 그들이 별로 받아 본적이 없었을 "제발 나에게 무료로 잡지를 보내는 것을 중단해 달라" 라는 내용의 아주 간곡한 이메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매달 저의 우편함에는 잡지가 보란듯이 꽂혀 있었고 앞집 사는 사람좋고 덩치 좋은 흑인 친구 제이슨은 "왓쓰 업 브로~~" 하면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잡지를 보내지 말라고 하는 일도 귀찮은 일이어서 플레이보이사에 이제는 전화를 걸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2년이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어렵게 그들의 소비자 지원센터 전화번호를 찾아 상담원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나 지금 2년 넘게 플레이보이지가 무료로 오는데 제발 좀 그만 보내라"

상담원은 제 주소도 체크하고 어쩌고 성의를 보이는 듯 하더니 알았다고 처리하겠다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정말 눈물어린 호소를 했습니다.  아내가 옆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당시 살던 아파트에는 결국 물난리가 나고 정화조가 넘쳐서 집안이 그야말로 X물로 뒤덮여서 할 수 없이 이사를 할때까지 근 5년동안 매달 꼬박 꼬박 단 한달도 거르지 않고 플레이보이 잡지가 배달이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떠나간 후 그 집에는 계속 그 잡지가 배달이 되었을테고 그 집에 살게된 사람은 그걸 어떻게 처리해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잡지는 일급 우편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사를 가도 자동으로 새로 이사된 주소로 배달이 되지 않습니다).  보통 한국사람이 살던 아파트에는 다음 입주자도 한국 사람으로 배정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누군가는 제 이름을 감사하게 기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사를 하고난 후 저는 더 이상 매달 우편함에 꽂혀 있는 검정 비닐에 쌓인 잡지를 아내 앞에서 쉬크하게 휴지통에 집어 넣는 퐁당 퍼포먼스를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것도 5년 넘게 하던 일이라 가끔씩은 허전하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왜 플레이보이사에서 저에게 그토록 오랜 기간동안 잡지를 무료로 보냈는지는 알길이 없습니다.  주변 사람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토록 오랫동안 잡지를 공짜로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잡지들은 일년마다 돈 내라고 청구서가 날아오는데 5년 동안 청구서 한장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 독특했던 경험이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경험인지라 한번 나누어 보고 싶었습니다.  너무 내용이 없는 에피소드라 짧을까봐 한국에서 있었던 일까지 얘기하였었는데 이렇게 길어졌네요.  ^^;;

그냥 외국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는 것.
오늘 얘기 끝!!

P.S. : 저는 과연 그 5년동안 첫번째 배달되어서 모르고 뜯은 것을 제외하고 단 한번도 검정 비닐을 뜯지 않았을까요?  이 기회를 빌어 솔직히 고백하자면 딱 두번 뜯어 보았었습니다.  한번은 미국에서 역사상 가장 섹시한 여성 100인의 누드 특집이었을 때 한번 (1등이 마릴린 먼로더군요 ^^), 또 한번은 제가 정말 좋아하던 피겨 스케이터인 카타리나 비트의 누드가 실렸을 때 한번 이렇게였습니다.  5년 넘게 배달되는 동안 두번이라는 횟수는 수학으로 얘기하자면 0 에 수렴하는 횟수이니 저는 거의 한번도 안 뜯어보았다고 해도 되는 거죠?  ^^;;  그 내용이 실린 것은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은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흐흐흐...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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