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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20 미국 고등학교 매점에서 바라본 세상 6

오늘은 지난 토요일에 자원봉사로 저희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 매점에서 일하면서 느낀 소소한 몇가지를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시골이라도 해도 좋을 미국 소도시의 일상에도 관심 가져 주시고 귀하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용기를 내어 잡설에 불과한 이야기를 펼쳐 보겠습니다. ^^

저의 아이는 한국으로 치면 고3이고 미국의 교육제도로는 12학년, 유식하게는 시니어(senior)라고 부르는 고등학생입니다. 다소 널널한 미국의 교육 시스템 덕에 고3 임에도 불구하고 축구부에서 선수로 활동하면서 하루에 2시간 30분씩 연습을, 주말이면 때로는 차로 5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까지 가서 시합을 하고 있습니다. 축구선수라고 하시면 공부로서의 진학은 포기하고 본격적인 운동선수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으시겠으나 실은 운동으로 진학할 맘이 전혀 없는 순수한 대학 입학 지원생입니다. 나중에 다른 글을 통하여 미국에서 축구선수로 산다는 것, 미국의 축구에 대하여 그 부분은 본격적으로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의 학교 운동부들 역시 심각한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데 거의 모든 재정을 부스터 클럽(Booster Club) 이라고 하는 학부모들이 운영하는 지원회에서 마련해서 운동부를 꾸려 나갑니다.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재정 조달 방법 중의 하나가 운동경기때마다 매점 (Concession Stand 라고 합니다. 극장의 매점도 컨세션 스탠드라고 합니다) 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학부모들이 약간의 돈을 기부해서 재료들과 물품을 사서 경기때마다 파는 것이지요. 그래서 운동 선수를 둔 부모들은 예외없이 교대로 여기 매점에서 물건을 팔아야 합니다. 보통 한학기에 두번을 하는데 저 한번, 아내 한번 하고나면 한학기가 갑니다. 파는 물품들은 M&M 이나 스니커즈 같은 쵸콜렛 종류, 캬라멜이나 각종 작은 단위로 포장된 칩들, 그리고 음료수, 직접 만든 햄버거, 핫도그들 각종 주전부리입니다. 때에 따라서 도너츠같은 것도 추가가 되기도 합니다.

질 낮은 핸드폰 사진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하여 몇장 첨부해 봅니다. 아래의 사진은 제가 일하는 매점 안쪽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작은 공간에 각종 쵸콜렛, 카라멜, 칩들이 구석에 전시된게 보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저 조그마한 창을 통하여 손님을 맞습니다.


의외로 인기있는 품목이 직접 만들어 파는 햄버거나 핫도그입니다. 한쪽에서 전담 학부형 한분이 그릴로 햄버거 패티나 핫도그 소세지를 신나게 굽습니다. 연기 자욱한 것 보이시죠? 참고로 햄버거 하나의 가격은 2500원 정도 하고 핫도그는 1500 원 정도 합니다. 캔 콜라 같은 경우는 1000원 정도 받고 플라스틱 병에 든 게토레이는 1500원을 받습니다 (일하면서 알게된게 게토레이를 노랑색, 파란색, 오렌지색을 파는데 파란색의 판매비율이 80%가 넘을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 그런데 캔 콜라의 경우 세일을 이용해 대량 구입하면 한 캔에 250원 정도면 구입이 가능하니 마진이 무려 750원이나 된답니다. ^^;; 다른 것도 이 정도 마진이겠죠? 



그리고 햄버거와 핫도그 못지 않게 팔리는게 워킹타코(Walking Taco) 라고 하는데 한국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당한 칩 (여기서는 프리토스(Fritos)라고 하는 옥수수칩을 씁니다) 을 뜯은 후에 그 안에 따끈한 칠리소스와 야채, 치즈를 넣고 포크를 하나 꽂아 줍니다. 그럼 봉지채 손에 들고 포크로 칩과 칠리소스, 야채, 치즈를 버무려서 비빔밥 (아니 그 뭐죠? 군대에서 봉지채 끓이는 라면) 처럼 먹습니다. 제법 맛납니다. 


대체로 4명 정도 한팀이 되어 매점을 꾸려나가는데 한분은 햄버거 패티와 핫도그 소시지를 굽고 한분은 워킹 타코를 만들고 또 한분은 냉장고와 만들어진 핫도그를 보관하고 꺼내주는 일을 하고 마지막 한명이 손님을 맞이하며 판매하는 일을 합니다. 저는 매대에서 손님을 만나는게 좋아서 언제나 직접 파는 일을 합니다. 밖에서 본 매점은 대충 이렇게 생겼습니다.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낌없이 사먹습니다. 별로 재밋거리가 없는 미국 생활인지라 이렇게 동네 고등학교팀 축구를 보면서 이것 저것 사먹는게 나름 빅재미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물론 우리 아이들도 축구 경기 같은 곳에 가서 손에 천원짜리 (사실은 딸라 ^^) 한장 쥐어주면 엄청 좋아하면서 뭘 사먹을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나름 귀엽습니다. 참고로 밖에서는 이런 식으로 축구경기가 신나게 펼쳐집니다. 언제나 한팀은 원정팀이므로 작게는 1시간 때로는 몇시간 떨어진 곳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미국 생활이라는게 회식도 없고 야근도 별로 없고 주말이면 딱히 할일이 많지 않아 학부형들이 이러한 일들을 기획하고 꾸리는데 제법 시간과 돈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아낌없이 다들 열심히 합니다. 저야 그렇게 다른 학부형처럼 부스터 클럽 회의에 나가거나 임원진으로 열심히 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강제적인(^^) 자원봉사를 할 때면 다른 학부형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나누고 손님을 맞이하면서 얼굴도 익히고 나름 재미나게 합니다. 봉사시간도 평균 3시간 정도이니 그렇게 과하지도 않구요.

평소에 불친절한 사람들을 진저리나게 싫어하는 성격이라 매점에서 물건을 팔 때면 정말 이보다 더 친절한 사람 이 세상에서 못봤지 라는 각오로 과잉친절을 베풉니다. 사실 저 같은 사람은 미국에 오래 살아서 뻔뻔해서 그렇지 미국에 막 온 한국 학부모들은 이런 일을 무척 부담스러워 합니다. 학부모로써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고 영어로 사람을 상대하는게 생각보다 꽤 스트레스가 됩니다. ^^;;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은 2 달러 정도 쥐고 와서 그 몇개 안되는 메뉴임에도 불구하고 뭘 사먹을까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를 정도로 고민하는 꼬마 아이의 모습을 보는 일입니다. ^^;; 얼굴에 다 써있습니다. 햄버거를 먹자니 돈이 좀 모자라고 음료수랑 칩을 사자니 쵸콜렛 바도 먹고 싶고 뭐 이런 모습 말입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커플이 다가옵니다. 얼굴이나 몸을 움직이는게 불편한데다가 많이 마르신 것을 보니 뇌성마비가 있으신 분들 같습니다. 잠깐 사족을 붙이자면 미국에 와서 제일 흐뭇했던 것이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섞여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참 잘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을 뿐더러 행여 아이들이 실수라도 하면 (예를 들어 저 아저씨는 왜 팔이 없어? 라고 묻는 경우라든지) 부모들이 정중히 사과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잘 설명을 하고 받아들이는 장애인 분들도 충분히 납득하는 그런 모습이 보기 나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예전에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저희 집 근처에 뇌성마비 자녀를 둔 분이 자녀들을 데리고 외출을 잘 못하는 경우를 보았던 적이 있었거든요.

어쨌든 남매인지 커플인지 아리송한 커플이 옵니다. 먼저 여자분께서 힘겹게 말을 떼십니다. 알아듣기가 참 힘이 듭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자연스럽습니다. 왜냐구요? 아직도 영어를 어차피 완벽하게 알아듣지 못하는 처지거든요. ^^ 그렇기에 조금도 거리낌 없이 excuse me 를 최대한 공손하게 하면서 한단어 한단어 들어봅니다. 다행히 매점에서 해야할 단어들이 그리 많지 않은지라 오랜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알아들었습니다 (자꾸 다시 묻는게 너무나 죄송하거든요). 남성분께서는 뒤에서 줄 서있는 분이 부담스러운지 안절부절 못하십니다. 이분도 장애가 있으셔서요. 뒤에 서계신 분들도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계신지라 이 남성분께서 먼저 주문하시라고 힘겹게 꼬여있는 손을 들어 제스쳐를 취하니 그제서야 공손히 제가 먼저 주문해도 되겠습니까 라고 두번 여쭙고 (첫번째는 장애가 있으신 분 반응이 명확치 않았거든요) 먼저 주문을 하십니다. 바라보고 있는 저도 참 흐뭇합니다.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결국 안절부절하시던 장애가 있으신 분도 주문을 무사히 마치고 기쁘게 핫도그를 들고 가시는데 두 다리 전체에 보조장치가 되어 있어서 힘겹게 걸어가시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아까 그 여성분이 계시던 곳으로 기뻐 걸아가시는 모습에 잠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고등학교의 운동팀은 보통 1군인 발시티 팀 (Varsity Team) 과 2군인 쥬니어 발시티 팀 (Junior Varsity Team) 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미국의 모든 학교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고교 대표 운동 선수이다라는 것을 발시티 팀 선수다라고 얘기합니다. 아무래도 고등학교 팀의 경우 발시티 팀은 고3 위주로, 쥬니어 발시티 팀은 1-2학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론 1학년이지만 잘하는 선수는 바로 발시티 팀에 편성이 되고 이는 운동선수에게 큰 영예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등에서 혹시 우리 아이는 신입생(Freshman)인데 발시티 팀에서 뛴다라는 대사를 듣게 되시거든 이제 바로 이해가 되실 겁니다. ^^

그래서 언제나 같은 종목의 경기가 두번 있습니다. 각 학교의 쥬니어 발시티 팀끼리 한번, 그 다음에 발시티 팀끼리 붙습니다. 저는 아이가 발시티 팀에 소속이 되어 있어 먼저 경기를 하는 쥬니어 발시티 게임에서 이렇게 자원봉사를 하고 발시티 경기가 있을 때는 쥬니어 발시티 학부형들이 매점에서 일하는 교대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교대를 해주어야할 오후 팀 부모님들이 무슨 일이 있는지 한분도 오시지 않습니다. 연락이 잘 안되었는지... 오전부터 계속 일하던 부모님들이 그냥 계속 일합니다. 뭐 불만 이런 것 없습니다. 주말 오후에 딱히 할일들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 다만 아이들이 경기를 하게 되므로 적당히 들락날락하면서 자기 아이 경기를 봅니다. 교대로 선수들이 들락날락하니 자기 아이가 뛸 때는 좀 나와서 보다가 안할 때는 들어가서 일좀 돕다 이런 식입니다. 저는 아들 녀석이 좀 길게 뛰는 바람에 농땡이를 좀 더 많이 깠네요. ^^

오전 10시 45분에 와서 두 팀의 경기가 끝나고 정리하고 하니 오후 3시가 되네요. 이렇게 토요일 하루가 저물었네요. 한국에 있었다면 주변 친척들의 결혼식이나 아이들 돌잔치 혹은 전날 밤새 술마신 피로 때문에 뻗어 있을 시간에 그래도 해 보면서 광합성도 하고 다른 부모님들이랑 이빨도 까고 자원봉사도 하고 그리 후회스럽지 않은 시간을 보냈네요. 실수로 사이다 캔을 떨어뜨려서 터지는 바람에 그것 팔 수 없어 제가 공짜로 하나 홀라당 주워 먹었네요. 사이다 캔이 떨어지자마자 같이 일하는 학부모 한분이 농담을 진하게 하시네요.

"You're Fired! (넌 해고야 !)"

모두 함께 ㅋㅋㅋ 웃습니다. 이렇게 미국의 고등학교 학부형의 토요일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Posted by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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